brunch

"조용한 불신, 묵묵한 책임"

by 대건

옆자리 동료가 출산휴가로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 인근에 있는 우리들이 그의 구역을 하나씩 나눠 맡기로 했고, 휴가 전날에는 어느 정도의 분담 계획도 세웠다. 그 당시만 해도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냥 하면 되겠지, 다들 그런 생각이었다.


그의 배송 구역이 실제로 어떤지, 아파트가 많은지 번지가 많은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서 우리는 그의 설명을 흘려들었다. 정확히 나눌 생각보단 대충 어림잡아 정리한 수준이었고, 첫날은 그렇게 출발했다. 누구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고, 별다른 문제 없이 하루가 지나간 것처럼 보였다. 겉으로는 그랬다.


다음 날 아침, 그 구역을 맡았던 동료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전날 퇴근하고 집에 가서, 괜히 아이들한테 짜증을 냈다고 했다. 밥 먹으라고 부르는 아내 목소리에 짜증이 치밀고, 말 한마디에도 날이 서 있더라고. 자기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밤새 후회가 밀려왔다고 털어놨다. 말은 짧았지만, 표정은 그 말을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내가 괜히 맡은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그의 말끝은 힘없이 흘러내렸고, 그 말에 모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첫날은 아무 일 없었던 게 아니었다.
그저,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둘째 날, 그의 구역 물량 분배가 다시 시작됐다. 그런데 전날보다 훨씬 많은 물건이 쏟아졌고, 현장은 금세 술렁였다. 물량이 적을 줄 알고 구역을 맡았던 그는 짐칸 앞에 서 있다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물건을 받기도 전에, 이미 감당이 안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표정이었다.


“그분들이 도와주실 리가 없어요. 그냥 제가 다 하겠습니다. 어쩔 수 없잖아요.”
그의 말은 짧고 단단했다. 반복되며 더 단단해졌다.


그가 팀장에게 입도 떼지 않고 혼자 감당하려는 걸 보며, 나는 결국 내가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님들한테 말이라도 해보자. 안 도와줄 사람들 아니잖아요.”


물론 약속이 있거나 사정이 있다면 어쩔 수 없지만,


처음부터 단정 지어버리고 말도 꺼내지 않은 채 포기하는 건 옳지 않았다.
그가 말하지 않으려는 눈치였기에, 내가 대신 팀장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팀장은 바로 인근 형님들과 연락을 주고받았고, 그의 구역은 두 명에게 나눠 맡겨졌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대건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무엇이든 자주 생각하고 곱씹으면, 그것이 마음의 성향이 될것이다"

545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6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40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23화「그가 자리를 채워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