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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재앙 속, 행동의 경계에 서다

by 대건

국가 전산망을 집어삼킨 화마(火魔)로 인해 수많은 정보가 유실되었다. 우리 계약기사들의 배송 데이터 역시 온전치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 나 역시 기묘한 안도감 뒤로 숨었다. '우리는 주체가 아니니 책임도 없다.' 실수는 그들이 했고, 잘못된다면 모든 책임은 시스템 관리자들에게 있다고 선을 그었다.


긴급 공지와 차가운 외면

묵묵히 내 일만 하던 중, 오후 9시 반경 밴드에 긴급 공지가 올라왔다. "현재 PDA에 있는 자료를 즉각 본부로 전송할 것. 기한은 오늘 자정까지." 유실된 특정 일자 자료 복구를 위해 아직 개인 PDA에 남아있는 데이터를 수집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공지 시간이었다. 모두가 잠들 무렵이었고, 무심히 무시하기 좋은 시간대였다. 결정적으로 전체 밴드에만 올라왔기에, 많은 이들이 이 중요 공지를 보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정말 긴급한 사안이라면 비상 연락망을 통해 각 지부에 직접 통보했어야 마땅했다.


나는 공지를 확인하자마자 자료를 전송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많은 동료가 이 사실을 놓쳐 나중에 수수료 정산에서 피해를 볼 것이 분명했다. 나는 곧장 카카오톡 단체방과 타 팀 팀장들에게 내용을 공유했다.


예상과 달리 팀장단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들은 전산 복구는 우리와 관련 없는 일이며, 문제가 생겨도 본부에서 알아서 처리할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나는 "그래도 일단 사람들에게 알려서 본인들이 판단하게 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지만, 팀장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 팀장 자신은 자료를 전송했다고 했다. 이 알 수 없는 이중적인 태도에 의아했지만, 내가 더 관여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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