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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죰 Aug 21. 2017

만남과 이별, '만약'은 없다.

괴로워했던 지난날에 대한 해답은 뻔하면서도, 간단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아픈 이별을 억지로 정리하느라 3일 간 부단히도 노력했다.

스마트폰에 남겨져 있는 그와의 채팅, 사진, 비디오를 모두 지웠고, 친구를 만나서 신나게 험담과 이별에 대한 단상을 날 것 그대로 쏟아냈다.

다른 것보다 '나는 노력했는데' 그가 처음과는 너무도 다르게 나의 노력에 상응하는 만큼 성의를 마지막까지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화가 났다. 앞이 보이지 않는 크고 작은 다툼들 사이에서 내가 끝없이 비참한 자기합리화를 해왔다는 사실도. 또 그가 나를 할퀴고, 생채기가 여러 번 생길 때까지 무방비로 그대로 두었다는 사실은 나를 자책하게 했다. 계속해서 내가 갈등 상황에서 어떤 부분을 '교정'해야 이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순간순간을 복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온갖 분풀이와 상대방에 대한 원망, 분노를 얼마큼 쏟아냈을까.


이미 그와의 연결고리와 흔적은 몽땅 끊어진 상태. 설령 있다고 해도 그걸 꺼내어 볼 만큼의 용기가 나질 않았다. 내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반사적으로 열어볼까 봐 원천 차단을 해버렸다.

문득 나의 최근 연애와 생활 반경 히스토리를 모두 꿰고 있는 친구와의 카톡을 열어 무심코 그의 이름을 검색했다. 

그와의 시간이 거슬러 올라간다. 이별을 쏟아낸 순간부터, 크고 작은 다툼의 씨실과 날실이 선명히 올라왔다. 행복했던 그와의 시간을 보내느라 친구에게 성의 없게 답변을 보냈던 순간도 발견했다. 그리고 그의 성격이 얼마나 들쑥날쑥 사람을 힘들게 하는 치명적 단점을 가졌는지도 그와 관계를 지속하기 1년 전 나는 이미 지금보다 또렷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만 풋! 하고 웃음이 터졌다. 이토록 냉정하고 사리분별 있는 과거의 나라니. (너무 격한 워딩이라 차마 브런치 공간에 쓰기엔 어렵다. ㅎㅎ)


그렇게 어두운 이별의 해저에서 첫 만남의 ground zero 수면으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그에 대한 내 감정은 눈부시게 밝고, 흰 도화지마냥 무지해졌다. 그와의 첫 만남을 친구에게 호들갑 떨며 말했던 순간과 그와 대면했던 첫 순간을 보자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



사진의 둘은 뭐가 그리 좋은지 뒷 창문으로 비치는 햇살보다 환히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이별이 가까워진 때 그가 한 말, "너와 Academic 한 주제로 이야기를 깊게 나눌 수 없어. 너와 나의 학문의 깊이와 분야가 달라."는 나를 날카롭게 찔렀다. 내가 학부만 졸업한 학생이라서? 아니면 영어가 부족해서? 나는 내가 문제라고 여겼고, 스스로 위축됐다.

 그런데 최근의 그와는 정반대로 첫 만남에 그는 당시 지금보다 훨씬 더 무지했던 내게 "너는 우리나라에 석사를 넘어 박사를 해야 할 사람이야. 너와 대화해보니,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학문적 깊이를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아 기뻐."라고 내게 말했다. 당시에 나는 짐짓 믿지 못하는 척 친구에게 그의 칭찬이 얼마나 나를 기분 좋게 했는지 넘치는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바뀐 게 없었다. 마지막에 내가 왜 부족한지 자책하고 있었는데, 나는 달라진 게 없었다. 달라진 건 그의 감정과 시선이겠지.


처음 만남에 나는 친구에게 너무도 밝게 웃고 있는 둘의 사진을 전송하며, 연신 그가 얼마나 대단히 멋진 사람이고 나를 첫눈에 반하게 한 사람인지 칭찬하고 있었다. 당시의 채팅을 보자 그의 첫인상이 뇌리에 박힌 그 순간 내 감정과 느낌이 그대로 살아났다. 그때 머리를 뎅- 하고 울리는 깨달음.


나는 지금 그를 만났어도 똑같이 사랑에 빠졌을 것이다.
그리고, 에피소드는 달라도 정확히 똑같은 이유로 헤어졌을 것이다.


더 이상 괴로워할 건 없어졌다. 지나온 연애에 '만약에'라는 단어는 전혀 맞지 않다. 이렇게 끝난 게 허망하고 슬프지만 그렇다고 내가 과거로 돌아가 무엇을 '수 쓸 수도' '바꿀 수도' 없는 것이 연애였다. 내가 나를 바꾸면, 그가 달라지면 나아질 수 있는 연애가 애초부터 아닌 거다.

우린 처음에 서로가 주는 강렬한 인상과 모습에 접점이 닿은 거고, 점점 심연의 본인과 상대방을 마주할수록 만날 수 없는 평행선임을 깨달은거다. '만약에' 우리가 지금 만나게 되었고, 모자란 서로의 모습을 수용하며 만났어도 언젠가는 한계를 마주했을 거다.



그렇게 정리했다. 

지난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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