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밥 위에 멸치볶음을 후두두두 부어 먹었다. 숟가락 위에 흰밥과 멸치볶음을 조금씩 담아 한 입, 두 입. 절반 정도 먹고서는 휘휘 섞어 먹었다. 짭짤하고 고소한 맛. 흰밥의 심심한 식감을 바삭바삭한 멸치볶음이 채워준다. 맨 밥에 반찬 한 가지만 대충 먹자면 나에게 소홀한 기분이 들 수도 있지만 도시락통에 흰밥 조금, 멸치볶음 조금 정갈히 담아 먹고 있자면 소풍을 나온 기분이 든다.
어려서 언니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학교를 다녔다. 급식이 시행되기 전이었다. 엄마는 매일 아침 언니의 도시락 반찬을 만드느라 분주하셨다. 잠귀가 밝았던 나는 매일 아침 엄마가 요리하는 소리에 눈을 떴다. 도마에 칼이 부딪히는 소리와 냄비에 국이 끓는 소리, 엄마가 움직이면서 나는 크고 작은 소리들에 자연스럽게 잠이 깨는 게 좋았다. 손이 크신 엄마는 늘 도시락 반찬을 넉넉히 해서 아침 상에도 올려 주셨지만 왜 언니의 도시락통에 담긴 반찬이 더 맛있어 보였는지. 맛살 볶음, 분홍소시지 부침, 비엔나소시지 볶음, 오이장아찌, 마늘종 무침... 어린 시절 먹었던 도시락 반찬들을 떠올려보니 군침이 돈다. 멸치볶음도 도시락에 자주 들어가던 반찬이었다. 멸치볶음은 왠지 내가 하면 맛이 없는 것 같다. 식용유에 달달 볶아 물엿을 넣어 섞으면 끝인데 말이다. 엄마 집에 놀러 가 먹는 멸치볶음이 제일 맛있다.
얼마 전 엄마와 통화를 하며 코로나 얘기를 하다가 엄마가 냉장고 이야기를 꺼내셨다. 아, 마트에 자주 못 가니 음식을 냉장고에 좀 비축해야겠다는 말씀을 하시려나? 했는데 내 생각과는 달리 이제 냉장고에 음식을 많이 해놓지 말아야겠다고 말씀하셨다. 본인이 언제 갑자기 죽을지 모르니 냉장고에 음식을 쌓아놓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셨단다. 냉장고에 마른 멸치, 해조류, 각종 장아찌들을 본인이 아니면 누가 처리하겠느냐며. 나는 냉장고에 음식이 문제냐고 투덜거리고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전화를 끊었다. 사실 속으로는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시더라도 냉장고에 엄마가 해둔 음식이 가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떠나도 냉장고에 음식들은 몇 개월은 더 있을 테니까. 그래도 나는 엄마의 맛이 없어지는 게 아까워 먹지도 못하고 애지중지하다가 썩혀버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