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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아이맘 Apr 05. 2024

사랑에 미쳐서 결혼하다

혹독한 신혼 현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부동산 책을 읽고 주식 동영상을 본다.

결혼하기 전에는 돈에 대해서도 모르고 그렇다고 씀씀이가 컸던 것도 아니다.

늘 구두쇠 아버지 덕분에 아껴 쓰는 것이 버릇이어서 크게 돈을 써본 적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내가 돈공부에 열심히인 이유는 그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으로 따지면 우리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다.

남편은 만 23살 나는 만 26살 이렇게 이제 막 취업하고 가진 것 하나도 모으지 못했을 때 철없이 결혼했다.

결혼식장에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어르신들은 우리를 바라보는 걱정스러움으로 혀를 차셨단다.


그 시절 우리는 말 그대로 미쳤었다.

흔히들 말하는 사랑에 빠지면 눈에 보이는 것 없고, 세상에 대해 용감해지고, 지구가 우리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제대로 빠졌었다.

평소에 너무나 이성적이었던 남편은 거의 집착남과 찌질남의 끝을 달려갔고 나는 그런 남편의 모습이 싫을 법도 한데 내 눈은 그 모습조차 사랑스러워 보였으니 분명히 둘 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가진 것 하나 없이 결혼이란 것을 했다.

그런데 현실은 너무나 혹독했다.

우린 집도 없어서 오래된 단독주택 1층 남편이 살던 집에 살았다.

오래된 단독주택은 바퀴벌레와 늘 동거해야 했으며 1층에 햇빛은 사치였다.

집안에 온수가 깔려있지 않아서 온수기 물이 떨어지면 설거지를 하다가 차가운 물로 얼른 헹궈내야 했다.   

창문 밖은 옆집 담벼락이 눈앞에 있었고 그 사이에 고양이들이 새끼 고양이를 낳고 살고 있었다.

환기라도 시키려고 창문을 열면 고양이들의 오줌 냄새로 창문을 열 수가 없었다.

매일 자면서 들리는 바퀴벌레 소리에 우리는 밤마다 불을 켜고 침대를 옮기며 바퀴벌레를 찾았다.

잠결에 화장실을 다녀오면 그 틈에 내 다리 위로 올라오는 새끼 바퀴벌레 때문에 놀란적도 많았다.

그래서 잘못된 태교의 영향인지 우리 첫째는 다 커서도 작은 소리, 작은 벌레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경향이 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결정적으싼 집은 무조건 언덕에 있다.

90도를 육박하는 가파른 언덕을 오를 때면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은 기본이다.

첫아이를 임신해서 이 언덕 때문에 운동은 저절로 되었다. 막상 아이를 낳으러 갔는데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아이가 나와서 의료진들이 다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나는 어릴 때 풍족하게 살지는 못했어도 건축하시는 아버지 때문에 늘 집은 평지에 남향에 따뜻하고 벌레가 없는 집에서는 살았다. 그런데 나의 혹독한 신혼 생활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가치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남편과 둘만 살 때는 이 집에서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었지만 아이가 태어나니 모든 것이 문제였고 나의 우울감은 극도로 심해졌다. 아이를 데리고 나갈 수도 없는 이 언덕, 아이 친구들이 놀러도 올 수 없는 이 집에서 벗어나고자 열심히 공부했다. 그것이 부동산, 재테크, 교육책 등등 이어져서 이제는 독서를 빼고서는 하루도 살아갈 없는 생활이 되었다.

우리는 아이 셋을 낳으면서 결혼생활 15년 동안 이사를 7번이나 했고 전세, 매매, 월세, 분양, 경매 안 해본 것이 없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았어도 아직도 해결해야 할 대출금과 만족할 만한 노후는 보장되지 않았다. 빠르게 올라가는 인플레이션을 따라가려면 숨 쉬듯 재테크를 해야 할 운명인가 보다.  


요즘 우리나라 청년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가 어쩌면 저성장 시대에 당연한 것 같다.

너무 힘들었던 그 시절, 가끔 남편과 힘들었던 그 시절 신혼생활을 이야기한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가진 것 하나 없이 나랑 결혼했을 거냐고,,,,,,"

남편은 그럼 더 일찍 만나서 결혼했을 거라 한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절 자기는 미쳐있었던 거 같다고. 그 시절 나한테 미쳤었다는 그 말 한마디가 너무 좋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이 한마디에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어쩜 이 세상은 때론 사랑에 미쳐야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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