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서울 교육대학교 영재원에 다녔었다.
엄마들이 처음 모이는 날 나도 설렘으로 엄마들의 모임에 참석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모인 아이들이니 만큼 각 가정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각 가정의 양육 방법이 궁금했다.
영재 아이들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 공감을 해주는지 아이들의 꿈은 무엇이고 그것을 지지해 주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알고 싶었다.
우리는 커피숍 한 곳에 앉아서 오시는 엄마들을 기다렸다.
어느 정도 인원이 모였을 때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우리 아이는 어디 살고 어느 초등학교에 다니는지 각자의 소개가 이어졌다.
정말 신기하게도 아이들 대부분 강남 서초 반포에 살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역시 지역차이가 있구나 하며 넘어갔다.
그런데 대화의 흐름이 내 아이가 얼마큼 선행을 하는지에 따른 주제로 넘어갔다.
자기의 아이는 어디까지 선행을 했는데 모자라다. 다들 어디까지 선행을 나가셨냐....
어떤 엄마는 자신의 큰아이가 고등 과정 진도를 모두 끝낼 만큼 선행을 하고 있다.
어디 학원을 가니깐 아이들이 이만큼 선행을 하고 새벽까지 달리고 있더라.
다른 나머지 엄마들은 선행을 많이 시킨 큰아이를 둔 엄마를 우러러보기 시작했다.
대화의 중심이 선행이 되면서 그분은 놀라운 능력자로 치부되었다.
나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왜 같이 수업 듣는 아이도 아니고 그 아이의 형의 공부 수준까지 들어야 하며 능력자로 인정을 해줘야 하는가..... 그것도 어디 학원을 다녀서 그렇게 된 것을 내가 이 시간에 듣고 있어야 하나.......
그런데 그 상황을 나만 이해할 수 없었나 보다.
순간 나는 여기 대화의 주제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가족에 대해 자랑할 부분을 이야기 하나 보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 차례가 다가왔을 때
"나는 우리 아이는 전혀 선행을 하지 않는다."
라고 이야기 했다.
순간 분위기는 싸해졌다.
나는 분위기 파악을 더욱더 하지 않았다.
"우리 남편은 연하예요. 어릴 때 아이를 낳아서 그런지 아이들과 너무 잘 지내고 잘 놀아줘서 아이의 정서가 단단한 거 같아요. 그래서 주변에서 친구들이 선행을 해도 불안해하지 않고 자신은 중학교 때 가서 하겠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러라고 했어요."
분명 장점을 이야기했는데 분위기는 어이없다는 웃음과 함께 왜 지금의 논점을 흐리냐는 눈빛이었다.
여기 우리 아이들은 당당히 시험 보고 교수님들한테 인정받고 들어온 아이들이다.
왜 여기서 사교육을 많이 하고 선행을 많이 한 한 아이의 엄마가 우리의 귀한 아이들을 서열 짓고 평가하려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교수님 조차도 입학식날 분명히 말씀하셨다.
"여기 들어온 아이들은 영재인 아이들입니다. 이미 시험에서 증명이 되었습니다. 어머님들 다른 곳에서 허튼짓하지 마시고 아이를 믿고 잘 지도하시길 바랍니다."라고 까지 말씀하셨다.
그 허튼짓이라는 말이 괜한 테스트로 아이를 지치게 하지 말고 각자의 재능을 잘 키워 주라는 말씀으로 들렸는데 내가 한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그런 자랑은 집에서 본인 가족과 나누 시길 바래요. 어느 것도 공식적으로 테스트를 받아서 인정할 수 있는 결과를 보여 주신 것은 아니잖아요. 여기 아이들이 그 집의 아이만큼 못해도 이 아이들이 수준이 낮은 것은 아니랍니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생각이야 어찌 됐건 나는 그곳에서 물 흐리는 이상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신경 쓰지 말자라고 생각하며 당당히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모든 엄마들이 나가고 나의 가방만 덩그러니 카페에 남아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들은 나를 무시하고 싶었나 보다.
아니면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나......
어쨌든 내가 뭐 그런 걸로 상처받을 사람은 아니었다.
나에게 상처를 줘도 내가 안 받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당당히 내 가방을 챙기고 문 앞에 가는데 한 엄마가 무리를 따라가지 않고 문 앞에서 나를 기다려 주고 있었다. 고마웠다.
그분과 돌아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자신이 큰아이를 키워 보니 지금부터 선행을 해도 늦은 것은 아니에요."
"아 그런가요? 다른 분들이 하도 늦었다고 하시길래요. 우리 아이에게 물어보니 선행은 중학교 들어가고부터 하고 싶다고 해서 저는 그러라고 했어요."
"네. 지금부터 해도 충분히 잘하실 수 있을 거예요."
"참 이상하죠. 세계적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때 늦었다고 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밖에 없을 거예요.
그리고 왜 전문가도 아닌 엄마들이 다른 아이들을 늦었다고 판단하는 건가요. 그걸 가만히 듣고 있는 다른 엄마들도 이해할 수 없네요."
그분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나 또한 더는 묻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니 몇몇 분들은 나에게 다가와 이런저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 아이도 선행을 안 했는데 큰일 난 건가 봐요."
아마도 그분들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아이가 선행을 하지 않았다는 말을 밖으로 꺼낼 용기가 없으셨던 거 같다.
"각자의 생각대로 사는 거죠. 내가 생각하는 큰일은 아이가 자신의 생각과 소신도 없이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게 큰일 같네요."
내 아이가 현행을 하는 게 왜 부끄러운 세상인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 아이가 테스트를 본 날 신기해하면서 나에게 한 이야기가 있다.
"엄마 애들이 오늘 무슨 시험을 보러 왔는지 스스로 몰라."
"그게 무슨 말이야?"
"애들이 수험표를 안 가져와서 감독관 선생님이 수리논술시험을 보러 온 건지, 과학영역을 보러 온 건지, 정보를 보러 온 건지, 선생님이 오늘 무슨 시험을 보러 왔냐고 물으니깐 대답 못하는 애들이 너무 많았어. 참 신기해."
"엄마들이 애들한테 물어보지 않고 이 학원 다니라고 등록하고, 테스트보고, 공부하는 게 일상이 돼서 그럴 거야."
"엄마 우리나라는 어릴 때부터 선행 한 애들이 그렇게 많고 그렇게 오랜 시간 공부하는데 왜 노벨상을 못 타는 걸까?"
"그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