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의 매력은 무엇일까?
복고 Retro는 옛 유행이 되살아나서 다시 유행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10년대 중후반부터 우리 생활 곳곳에 나타나기 시작한 복고는 현재 하위문화의 한 흐름을 넘어 사회의 메가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단순한 콘셉트 디자인부터, 패션, 인테리어, 영상 매체 등을 포함한 전반적인 대중문화에까지 그 영향을 못 찾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복고의 매력은 대체 무엇이길래 나를 포함한 모두를 사로잡는데 성공한 걸까? 이번 탐구는 여러 복고 문화들을 들여다보며 그러한 매력에 대한 정밀한 이유를 찾는 여정이다. 더 나아가 창작자로서의 길을 걷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해, '좋은 것들' 인사이트를 작성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아날로그, 뉴트로, Y2K, 레트로 퓨처리즘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갈 것이며, 각 주제에서 '좋다고 느낀' 그래픽 이미지, 패션, 영상 등의 요소 하나하나를 파악해 보며 탐구의 질을 높여갈 예정이다.
내가 레트로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매력에 대한 정밀한 이유를 찾아보고, 일반화해 보자
이번 글에서는 본격적인 탐구 이전에 내가 생각하던 복고를 되짚어 본 후 핵심 표제어들과 시사점들을 추출하고자 한다. 과거 레트로를 처음 접했던 때부터 현재 본격적으로 몰입하기까지의 모습들을 정리해 보며 내가 무엇에 매력을 느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돌이켜 볼 것이다. 납득할 수 있는 시선을 내놓으려면, '취향' 탐구라는 대전제에 맞게 내 의식을 들여다보며 생각을 구체화시키는 작업이 우선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뇌피셜과 오피셜을 비교하는 것, 수면 아래 잠들어 있는 사실들을 정리하는 것이 정밀한 탐구를 위한 기반이 될 것이라 믿는다.
'레트로'라는 단어를 처음 마주했던 때가 언제였을까? 엄밀하게 따지자면, 처음으로 레트로에 대해 순수하고 좋다고 느낀 순간 말이다. 기억을 어름어름 되짚어보니 중학교 때 시티 팝을 처음 들었던 때가 기억난다. 호기심에 클릭한 플레이리스트에서 나오는 시티 팝의 낙관적이고 느린 템포의 박자, 디스코와 펑크의 소울이 느껴지는 그루브, 전기기타와 피아노, 드럼의 합주 속 매력적인 전자음 소리는 내 귀를 곧장 사로잡아 버렸다. 노래방에선 발라드가 흘러나오고 쇼미더머니의 인기에 힘입어 랩 열풍이 일어나던 시기, 나에게 시티 팝은 사막 속 오아시스 같았다. 특히 아란 토모코의 <Midnight Pretendrs>를 제일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이때 시티 팝을 좋아한 이유는 음악적 즐거움 이상의 행복감 때문이었다. 한창 대인관계에 대한 고민에 빠져있던 사춘기 소년에게 시티 팝은 상념을 잊게 해주는 존재였다. 지금이야 80년대 일본의 찬란했던 대중문화를 흥미롭게 바라보며 당시의 음악, 패션, 그래픽, 영상, 만화 등을 좋아하고 있다는 이유를 댈 수 있지만, 이때는 아니었다. 나에게 레트로-시티 팝-는 '순수하고 좋다고 느낀 것'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더 나아가 시티 팝에 대한 호감은 자연스레 시티 팝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청량한 색감과 키치한 일러스트, 일본풍의 데포르메 그림체는 너무나 예뻤다. 어쩌면 이때 마주한 일러스트 속의 레트로 요소, 사이버네틱한 배경, 힙한 패션이 나에게 '취향'으로 각인된 걸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관심이 실천 단계까지 이르진 않았는데, 소위 '씹덕'으로 불리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컸던 게 그 요인이었던 듯하다. '이상하다', '특이하다'란 소리를 듣는 것에 너무나 신경 썼던 소심했던 시절이었다.
그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으며, 삐삐 또는 두꺼운 폴더폰을 이용한다.
컴퓨터는 존재하긴 하나 구형이며 픽셀 그래픽이라 매끈한 화면을 기대하긴 어렵다.
유튜브와 SNS도 존재하지 않아 디지털 세상의 놀 거리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주 보는 것이 익숙하다. 모든 행위가 ‘만나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웃과의 관계는 삶을 함께 나아가는 동료에 가깝다. 촌스럽지만 자유분방하며, 투박하지만 정이 넘치는 사회이다. 또한, 미래를 향한 기대는 우상향을 그린다. 우주적, 과학적 상상력이 넘쳐나며 취업은 큰 문제가 아니다. 물밀 듯이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기술과 문화는 신세대의 Funk 문화의 기폭제가 된다. 대중문화는 전성기를 맞는다.
그러던 중 '응답하라 1988'이 등장했다. 드라마에 대해 흥미가 없던 나도 응팔에 대해서는 예외였다. 방 안에서 롤챔스 보는 걸 멈추고 거실의 TV 앞으로 향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과거를 회상하며 시대상에 대해 몇 마디 첨언하시면, 눈을 초롱초롱히 뜨고 듣던 기억이 난다. 나는 왜 유독 응팔을 좋아했을까? 물론 남편 찾기라는 서사가 재밌었다는 부분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유대감'의 복고에 매력을 느꼈던 듯하다.
응답하라 1988의 핵심 메시지는 가족애이다. 90년대의 풋풋하고 순수한 학창-대학생활을 보여주며 1세대
아이돌, 서태지 등이 부각되었던 전작들과는 달리 응팔은 '유대'의 복고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표현은 서툴지만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끈끈한 가족,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내며 속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친구들, 그리고 한 동네 한 식구라는 낭만적인 모습. 90년대를 살아보지도 않았던 나지만 과거를 선망하게 되었다. 가족과도, 친구들과도, 당연히 사회에도 거리감을 느끼며 외로워했던 사춘기 시절, 드라마 속 모습은 너무나도 이상적이었다. 현대인이 가진 유대에 대한 갈망을 정확히 캐치해낸 드라마 작가의 마케팅 전략에 당해버렸던 걸까. 이 정도의 수준이라면 당할만하다는 생각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즐거운 표정으로 그때 그 시절을 얘기해 주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그저 좋았다. 조금은 벗어난 얘기지만, 아버지는 취하시면 항상 옛날 얘기를 늘어놓으셨다. 대구 시내에서 친구들과 한잔했던 이야기, 군대에서 의무병으로 복무하실 때의 재밌는 썰들, 학생회장의 킹 메이커였던 대학 시절까지... 늦은 밤 아버지의 주사에 대응하는 게 피곤하면서도 내심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게 즐거웠다. 나와 눈을 맞추신 채 소리 내어 웃으시며 얘기하시는 모습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평소의 무뚝뚝한 아버지가 그러한 표정을 짓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더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복고'가 가진 유대감의 힘은 아버지의 주정을 들을 때부터, 정말 오래전부터 내 마음에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유대감에 주목했다 해서 과거의 음악과 패션에 대한 흥미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서태지의 <하여가>, 신해철의 <내 마음속 깊은 곳의 너> 등 복고 감성 노래를 즐겨 들었으며, 올드스쿨 스타일의 안경과 풋풋히 레이어드 한 옷들이 예쁘게 느껴졌다. 이때의 생각은 성년이 되고 나서야 실현이 되는데, 와이셔츠에 단정히 스웨터를 입는 패션을 즐겼던 모습에서 영향을 찾을 수 있다. 어머니가 인민군 모자라 혹평했던 빵모자도 생각이 난다. 의식적으로 '복고' 패션을 입은 것은 절대 아니건만, 취향이 자연스레 반영된 결과라 느낀다.
레트로 퓨처리즘만큼 모순적인 단어의 조합은 드물다. 레트로 퓨처리즘(이하 'RF')이란 '60년대 전후의 우주개발 시대에 영향을 받아 성행하였던 미래주의'의 영향을 보여주는 예술 장르를 말한다. 좀 더 풀어 적자면, '과거에서 바라본 미래'를 재조명하여 현재의 예술에 담는 경향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 덕택에 RF는 과거의 복고 감성과 미래의 SF 감성을 함께 가지며 독특한 분위기를 구축하여 큰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RF란 단어를 처음 마주한 순간은 '인테리어 트렌드'로서의 RF를 마주한 때이다. 성수에 있는 <사무엘 스몰즈> 쇼룸을 다녀온 후였다. 쇼룸은 무척 인상적인 분위기였는데, 미니멀하고 기능을 강조한 가구들과 비비드 한 색감의 키치하고 힙한 개성을 가진 조명, 가구들이 자연스레 조화되어 독특한 무드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인더스트리얼, 미드 센추리 모던과는 분명 달랐다. 특히, 공학적, 기계적인 멋을 살리려는 부류와 초현대적인 구조로써 우주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부류가 눈에 띄었다. 마치 <토르 : 라그나로크> 속 사카아르 행성에서 사용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과거의 제품이지만 그 형태와 개성은 현재의 것들 이상으로 트렌디하고 미래적이었다. 이같이 복고적이면서도 묘하게 미래적인 경향에 대해 찾아보며 나는 자연스레 RF의 매력에 입문하게 되었다.
RF 인테리어는 특성상 콘셉트적인 매장, 전시장에 쓰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반적인 실내 공간에서도 충분히 포인트만 살려 RF의 느낌을 낼 수 있다고 느낀다. 비비드 한 색의 전면 거울이라든지, 특이한 구조의 조명 같은 걸로 말이다. 삭막한 모더니즘과 산만한 포스트모더니즘 사이 팝 문화 어딘가에 속한 느낌. 모던하면서도 키치한 감성이 매력적이다. 그러한 개성이 내가 RF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이다.
Ovetto Trash Can (10color) - samuel smalls
Limburg Art Glass Ceiling Lamp -dimming(o) - samuel smalls
현실적인 인테리어 트렌드로서의 RF가 복고 속 미래주의 한 스푼으로 개성을 준 느낌이라면, 창작물 분야에서의 RF는 과거에서 본 미래, 미래에서 본 과거 그 자체이다. RF의 특징은 자유롭고 풍요로운 생활, 그와 상반되는 냉전으로 인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공존하는 8,90년대의 모순된 바이브이다. 그러한 양면성에서 나오는 절묘한 간극은 나에게 너무나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시각적으로도 즐거우며,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철학적 함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타임머신이라는 소재를 통해 상상력 넘치는 미래를 그려낸 <백 투 더퓨처>, 사이버펑크 세계관의 음울한 미래를 그려낸 <AKIRA>가 그러하다. 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들이기도 하다!
RF 분야에 있어 취향을 확고히 하면서부터 내가 진정으로 '레트로'에 몰입하였다고 느끼고 있다. 단순히 받아들이는 걸 넘어서, 무언가 전용하고 싶게 만드는 욕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RF에 심취한 이후 나는 80년대 마이애미의 야자수, 석양, 신스웨이브 분위기와 아케이드적 요소들로 그래픽을 만들고 싶어 하며, 사무엘 스몰즈의 빈티지들처럼 '미래적인 복고'를 담은 디자인을 하고 싶어 한다. 더 나아가 <AKIRA>와 같은 사이버펑크 세계관에 대한 탐구심과 창작 욕구로도 이어지고 있다. RF는 나를 컬트적이게 만든다. '덕후'가 되길 조심했던 내가 기꺼이 덕후가 되길 자청하는 모습이다. 뉴트로에 대한 정의야 사람들마다 나름이겠지만, 이처럼 능동적으로 과거를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이 '뉴트로'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Y2K란 2000년대 전후의 성행했던 문화를 총칭하는 단어이다. 그런 만큼 Y2K는 분야별로, 어떤 것에 영향을 받았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의 양상을 보인다. 이는 2000년대의 문화가 그만큼 다양하고 새로웠다는 뜻과도 같다. 내가 Y2K를 처음으로 마주한 분야는 그래픽으로, 핀터레스트에서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 복고 그래픽 포스터를 본 게 계기였다. 인상 깊게 본 두 부류는 바로 에스파와 뉴진스이다.
먼저 에스파에 대한 창작 그래픽들이다. 역동적인 포즈의 기존 이미지에 메탈릭 레터링 혹은 사이버틱한 네온사인을 주 이미지로 삼는 모습이 눈에 띈다. 노이즈, 픽셀화 등의 효과 그리고 캠코더, 폴더 폰 등의 2000년대 디지털 기기들을 통해 Y2K 복고의 분위기를 한껏 드러내려 했음은 물론이다. 에스파란 그룹이 음악적으로도, 시각적으로도 사이버틱의 영향이 짙다 보니 나타나게 된 모습이라 느낀다. 뮤비와 세계관 설정을 살펴보면 짙은 농도의 RF를 눈치챌 수 있는데, 상단에서 언급했듯 RF 특히 사이버 문화에 컬트적인 나로서는 너무나 취향 저격일 따름이다.
자연스레 에스파의 착장도 눈에 들어온다. 그래픽 속 윈터는 어깨를 드러내는 오프숄더, 배를 보이는 크롭 티 등 Y2K 패션을 기반으로 유광 부츠, 체인 초커 같은 펑크 아이템, 초현실적인 디자인의 액세서리와 개성 넘치는 네일 등을 통해 몽환적이며 고유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 내가 입버릇처럼 내뱉는 ‘시크하다.’라는 표현에 가장 부합하는 패션이다. 이렇게 매력적인 정반합을 내놓다니, 한껏 튜닝한 미래형 외제차를 보는 느낌이다.
뉴진스의 경우, 에스파의 경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좌측 이미지는 뉴진스의 공식 앱 'Phoning'의 화면, 우측 이미지는 핀터레스트에서 발견한 창작 그래픽이다. 두 그래픽에서 눈에 띄는 점은 '자유분방'하다는 점이다. 두 이미지 모두 2000년대의 다꾸, 폰꾸 감성을 기반으로 하여 재치 있게 이미지들을 배치하였다. 그 배치가 완벽하지 않고 조금은 과하더라도 오히려 그 점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픽셀 아트 레터링, 구식 윈도 화면창, 복고적인 2D 그래픽들은 촌스럽긴커녕, 새롭고 위트 있게 느껴진다.
뉴진스의 그래픽은 음, 내 마음속 잠들어있던 '맥시멀리즘'을 일깨웠다고 할까? 인테리어에서 현실적 인상을 이유로 적당한 재미를 추구했다면, 그래픽에서의 나의 취향은 맥시멀 그 자체이다. 단순하지만 강렬한 이미지 깡패로 인상을 주는 것보다는, 보면 볼수록 재미가 '흘러넘치는 그래픽'이 더 마음에 든다. 조금 원론적으로 이유를 적어보자면 '모더니즘에서부터 이어지는 미니멀 경향에 반감을 느꼈다'라 할 수 있겠지만, 글쎄, 그냥 많은 게 더 개성 넘치고 재밌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그래픽 취향에서, Less is More은 한 물 간 듯하다
개인적으로 뉴진스를 처음 보았을 때 든 생각은 '이야, 옷 정말 잘 입는다'이다. 패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도 뉴진스가 보여주는 'Y2K'를 기반으로 펼쳐낸 코디는 다르다고 느꼈다. 스트라이프 티셔츠와 체크무늬, 스커트 등에서는 하이틴 영화의 모습이 보이며, 일상적으로 길거리에서 볼 법한 느낌이 드는 면에선 스트리트 패션의 영향도 느낀다. 그 외에 내가 이름 모르는 수많은 패션 요소가 들어갔겠지만, 불편하지가 않다. 과거 패션의 매력적인 미감은 살리면서도, 적재적소에 현대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수정했기 때문이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란 문장에 딱 들어맞는 모습이다.
'X세대의 신박한 과거 모습', '그 당시 세기말 패션 정말 예쁘다!'라는 기사들을 많이 봤지만, 결국 ‘촌티’가 있기 때문에 그들이 트렌디하다는 생각은 들지가 않았다. 그런데 에스파와 뉴진스는 사뭇 다르다. 과거와 현대의 '정반합'을 통해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패션은 돌고 돈다'가 아닌, '패션은 조금씩 변화하며 돈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모습이다. 에스파가 시크하게 힙하다면, 뉴진스는 청량하게 힙하다. 기본적으로 완성도가 높은데 미래적이거나 순수한 느낌마저 든다면, 레트로 러버로서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래픽 속 패션에 대한 흥미는 자연스레 패션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곳에 Y2K란 요소가 핵심으로 있는 건 물론이다. Pinterest에서 Y2K 패션에 대한 이미지를 찾아보던 나는 묘하게 눈길이 가는 집합을 보았다. 이 패션들, 대체 이름이 뭐야?
What Is Acubi Fashion? An Emerging Aesthetic on Social Media (2022)
몇 차례의 검색 끝에 찾아낸 패션 경향의 이름은 바로 ‘Acubi’ 패션이었다. 아쿠비 패션에 대해 잘 정리해 놓은 한 사이트를 통해 그 정의와 특징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아쿠비 패션은 미니멀리즘과 Y2K, Subversive& Archive 패션의 교집합을 통해 도출해낸 정반합의 패션으로, 그 특징을 적어보자면
1. 미니멀하다. 평범한 티셔츠, 데님 스커트, 단순한 액세서리를 사용한다.
중성적인 색이며 단순한 형태를 유지하는 미니멀한 아이템을 고수한다.
2. 양보다 질을 추구한다.
조합하고 맞추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여 ‘단순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한’ 착장을 만든다.
3. 가지고 있던 옷들을 조합에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수선 등의 업사이클링을 통해 고유한 스타일을 만들 수 있다. Subversive Fashion의 ‘잘라내기’의 경향이 눈에 띈다. 반 기능적-미래적 특징도 보인다.
4. 실루엣을 강조한다. 꼭 중요한 건 아니지만, 야무진 아쿠비 패션의 필요 요소임엔 틀림없다.
5. 그리고 사실, 본인 개성대로 입는 게 아쿠비란 이름 아래에 있는 것뿐이다.
힙스터들의 능동적인 패션 추구가 ‘아쿠비’란 이름으로 있는 거다. 그냥 즐겨라!
내가 좋아하는 에스파와 뉴진스의 패션 또한 넓게는 아쿠비 패션의 범주에 속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디테일한 면에서 파고든 취향이 다를 뿐, 미니멀 + 조합 + Subversive& Archive의 맥락은 같기 때문이다. 실루엣을 강조하는 점도 동일하다.
패션에선 유독 뉴트로 경향이 날 서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적인 편안함과 불편함이 극명하게 나뉘는 분야이기 때문일까, 대중에게 클래식하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그저 옛것일 뿐이다. 모든 디자이너들이 ‘트렌드’ 선도에 목표를 두며 현대의 미감에 과거의 매력을 넣은 ‘정반합’ 원리를 통해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주고자 한다. 복고, 특히 RF를 신봉하는 나로서는 정말 땡큐다. 내 입맛에 맞는 패션 트렌드가 드디어 나타났다�
기억 풀어내기, 생각 끄집어내기 작업이 끝이 났다.
생각 정리 속 핵심 사실들을 간략히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내가 레트로를 좋아하는 이유로 순수함, 행복감, 유대감, 독특함, 미래적, 미적 호감 등이 있다.
2. 그중 순수, 행복, 유대는 미적인 가치가 아니다. 향수를 느끼며 선망하는 가치이다.
3. 나에게 일반적인 복고는 ‘응팔’이다. 유대감을 통해 매력을 느꼈다는 점이 눈여겨볼만하다.
4. 나에게 뉴트로는 미적인 면을 포함하여 능동적으로 복고 문화를 받아들여
이를 재해석, 변용하는 모습이다. 3번의 복고와 구별된다.
5. 뉴트로는 과거와 미래의 ‘정반합’을 통해 트렌드를 선도하는 경향이다.
6. 나는 RF와 Y2K 트렌드에 대단히 컬트적이다.
이는 제품,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그래픽, 패션과 음악 취향 등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들을 한 번 더 정갈히 다듬어본다면, 이러한 문장들을 만들 수 있다.
레트로의 매력은 선망과 향수 그리고 미적 가치이다.
레트로는 낭만으로 시각을 매혹한다.
레트로와 뉴트로는 다르다. 레트로가 두 특성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형태라면,
뉴트로는 미적 측면에 집중하여 재해석하는 모습이다.
즉, 뉴트로는 과거와 미래의 ‘정반합’이다. 그래픽과 패션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자연스레 이들 명제는 시사점이기도 하다. 이 문장들을 팩트 체크하며 보다 일반화된 사실을 도출해 내는 게 다음 목표일 것이다. 이는 더 나아가 사전 조사에 그쳤던 RF, Y2K 등에 대한 더 깊은 탐구로 이어질 예정이다. 큰 맥락의 문장을 확정 지었으니, 점점 좁혀 들어가 보는 단계로 진입할 차례다.
이 글이 독자들에게 수면 아래에 있던 레트로에 대한 생각, 관점을 생각나게 했다면 영광이다. 레트로에 대한 생각을 마음껏 댓글에 적어주면 좋겠다! 탐구에 있어 큰 힘이 될뿐더러,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까지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긴 글을 읽은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다음 글에선 이번에 찾아낸 명제, 시사점들을 주제로 더 디테일하게 찾아오겠다.
이번 글은 과거에 블로그를 통해 기고한 글을 일부 수정한 글입니다. 세이브 원고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현생을 살아가며 정보 조사와 추후 올릴 글들의 초안을 작성 중입니다.
완성도가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첫 글에 적은 것처럼 부담없이 탐구해보려 합니다.
다시 한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