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산골마을, 하늘은 파랗고 뜨거운 여름을 알리는 매미 소리가 울려 퍼진다. 고랑이 파헤쳐진 감자밭에 어른들은 쭈그려 앉아 감자를 캔다. 목에 둘러놓은 수건이 땀으로 적셔진다. 숙련된 호미질로 지나간 밭고랑 뒤엔 얇은 껍질의 반들반들한 감자가 수북이 쌓여있고 나는 동생, 사촌 오빠들과 대야에 감자를 담아 포대자루로 옮겨 담았다. 그렇게 모인 감자를 경운기에 싣고 할머니댁 마당 한 편의 천막으로 이동한다. 기회는 이때다 하면서 잽싸게 경운기에 올라탄다. "언니 어디가!" 하고 소리치는 동생을 뒤로하고 신이 나게 웃는다. 탈탈거리면서 집으로 향하는 그 시간은 재미있었다. 자갈에 덜컹거리는 경운기의 움직임에 맞춰 몸을 들썩거린다. 손을 뻗어 높이 있는 나뭇가지들도 잡아본다. 왔다가 다시 밭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어린 나는 그렇게 쉬는 시간을 많이 채웠더랬다.
나는 강원도 감자부심이 특별하다. 우리 할머니댁에서 키운 감자가 세계 최고다!라고 생각했다.할머니네 감자는 분이 많고 매우 부드러웠다. 종종 나에게 감자가 아주 팍신하다(보드랍고 포근하다)며 할머니만의 사투리를 들려주셨는데, 그 표현이 항상 기억에 남아있다. 밭에서 감자를 캔 후, 집에 돌아와 큰 냄비에 당원을 넣고 옥수수와 감자를 넣는다. 시간이 흘러 냄비 뚜껑이 펄떡이며 하얀 김을 뿜어낸다. 그동안 어른들은 씻고 엄마와 할머니는 새참상을 준비하신다. 할머니가 다 익은 감자와 옥수수를 그릇에 담아 주시면 나와 동생은 바깥 마루에 자리를 잡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를 젓가락으로 딱 갈라서 호호 불어 설탕에 폭 찍어 한입 베어문다. 뜨거운데 부드럽고 짭조름한데 달콤해서 아, 최고다. 너무 맛있어!라는 감탄 연발이다. 내가 키운 건 아니지만 세상에 이런 감자가 또 있을까. 이 정도라면 밥 대신 감자를 먹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강원도 하면 감자!라는 말을 들을 때 암요, 맞고 말고요. 어깨가 마구 솟아올랐다.
팍신하니 맛있는 감자를 떠올리며 그려보았다.
감자요리는 정말 많다. 그중에서도 찐 감자, 감자조림, 감자전, 감자채, 감자떡, 옹심이 등등 반찬부터 시작해 카레, 국, 전골, 피자등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어린 내가 먹을만한 반찬이 없을 때 할머니는 감자채를 해주셨다. 프라이팬에 얇게 채 썬 감자에 기름을 듬뿍 두르고 푹 익혀준다. 살짝 탄 부분은 바삭한 식감이, 많이 익은 부분은 뭉근히 부서졌다. 나는 신이 났다. 고소한 냄새에 입안에 침이 고였다. 정말 단순한 맛이지만 슈퍼 하나 없는 시골마을에서 맛소금으로 마무리된 감자채는 너무 맛있었다. 감자 반찬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은 뚝딱이었다. 감자전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다. 초등학생이던 내가 감자전을 5~6장을 먹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일상이 바쁘고 피곤해 끼니를 놓치다 보면 그때 그 시절 뽀얀 감자가 떠오른다.세상에 지친 몸과 마음의 허기를 채워 줄 것 같은 달콤 짭짤 감자를 생각하며냄비 위에 물을 올린다.어린 시절 할머니가 사랑하는 손녀에게 줬던 감자. 이제는 내가나에게 대접해 본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뜻이 이것인가 보다. 너무 평범해서 따뜻하게 기억되는 추억을 든든히 먹고 에너지 충전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