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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슬기 Oct 21. 2023

너를 응원하는 모임

모두가 눈부신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내게 후져버린 글은 누군가의 한마디로 많이 소중한 글이 되어버린다.







 쏟아지는 나른함을 달래던 어느 겨울날 아침, 늘 그랬듯이 쓰기 위해 자판을 두들긴다. 겪었던 시절을 그대로 쓰려다 지나버린 기억들이 선명하지 않아 쓰기에 실패할 위기에 놓이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발코니 창을 열고 창틈 사이로 들어오는 한기에 어깨를 내어 주었다. 찬바람에 혈류가 촉진되는 듯 정신이 트였다. 이 고마운 자극을 그냥 보내지 않고 다시 쓰기에 열중했다.



 글을 쓰다 보면 나를 살리는 글이 써지기도 하는 반면에 나를 죽이는 글이 써지기도 한다. 여기서 나를 죽이는 글이란 무엇인가. 남은 수명을 소비하며 열심히 쓴 소중한 글이 너무 보잘것없는 바람에 결국 미워하게 된 글일까? 그렇게 생각된 글은 문서함 구석으로 내몰리고 영영 꺼내지 않을지도 모를 낡거나 잃어버린 기억이 되어버린다.



 일주일 동안 썼던 글 중 내 눈에 최대한 낡지 않은 글을 챙겨 강남으로 향했다. 강남역 11번 출구를 향해 가는 지하보도에는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어디론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개찰구에 찍히는 카드 소리도 멈출 새가 없다. 투명한 아크릴의 캐릭터 키링을 주렁주렁 단 새카만 책가방 소녀가 새카만 롱패딩을 든든하게 여민 체 나를 앞서 갔다. 소녀는 기운찬 걸음으로 지상을 향해 계단을 오른다. 곱슬한 양털 카라가 실한 무스탕의 젊은 남자가 은은하게 반짝이는 앵클부츠와 바람을 받아 나부끼는 와이드 펜츠로 시선을 가로챈다. 맵시 있는 자주색 넥타이 매듭과 단정한 포마드 머리가 멋들어진 백발 할아버지까지 지나치자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다.







 무려 지하 2층부터 지상 4층까지 나뉜 대형 카페다. 지하는 늘 사람이 붐벼 시끌벅적하다. 나는 3층으로 올랐다. 계단에서 마주친 거울에 잠시 멈춰 서서 옷매무세를 가다듬는다. 조금 흐트러진 머리도 툭툭 건드려 본다. 적지 않은 계단을 올라 3층에 다다르니 칸막이가 설치 돼 비밀스러워 보이는 커플석과 커다란 책상이 놓인 단체 회의룸이 보인다. "큼큼!" 목청을 가다듬고 회의룸 미닫이 문을 조심스럽게 당겼다.



 "준태님, 어서 와요."

가장 먼저 해맑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너를 응원하는 모임의 설립자인 작가이자 투자가인 영지다.

 "네 안녕하세요. 모임장님."

 이어서 다른 이들과도 인사를 주고받는다. 생김새도 말투도 각양각색인 데다 저마다 유구한 시절을 겪어 왔을 이들이 글쓰기를 두고 한데 모였다. 단 한 명의 작은 기적으로부터 탄생한 크고 작은 인연들, 이 고마운 시절이 내게 흐르고 있었다.



 너를 응원하는 모임의 본질은 글쓰기다. 하지만 모임의 절반이 넘는 시간이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평범하며 가장 보통의 사람이기 때문에 나눌 수 있는 이야기였다. 이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간절함이 되고 활력이 되며 용기가 됐다. 그래서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우리가 글을 쓰고자 모인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아마 하고 싶은 말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각양각색의 이야기 소용돌이가 그치고 나면 작가의 정체성을 갖고 모인 우리가 각자 준비해 온 글들을 차례로 꺼낸다. 모두 만만치 않은 일주일을 보내며 게으름을 이겨내고 쓴 글일 것이다.



 우리는 가져온 글을 나누며 읽는 이는 감상평을, 글쓴이는 글의 의도에 대해 설명한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이 자신이 갖춘 시선과 마음을 타인들에게 드러내기 시작한다. 나는 정성을 담아 열렬히 타인의 세계에 빠져보려 하지만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내 차례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글쓴이의 입장과 내 입장을 번갈아 가며 조심스럽게 가늠해 보다가 이내 나는 초조하거나 들뜬 마음이 된다. 겉으로는 타인의 글을 읽고 속으로는 내 글을 읽게 될 시간에 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내 차례가 오고 만다.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내 글이 타인에게 읽힐 때 나도 내 글을 다시 읽어본다. 하지만 왜일까. 나름 괜찮다고 생각하던 나의 글은 남 앞에만 서면 후져진다.


 "준태님. 이 글은 어떤 글이에요?"

 모임의 최고 권위자 영지가 묻는다.

 아주 불안했지만 아주 태연한 기색으로 내가 대답했다.

 "제 글이 그럴싸하게 포장된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쉽게 쓰고 쉽게 표현하며 스스로 쓴 글 뒤에 숨기 바빴습니다. 세상의 언어를 빌려 쓰기만 했던 뻔뻔한 제가 오래전 도장가게 할아버지께 들었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이는, ’말하고자 하는 세상의 사정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아주 조심스럽게 세상의 언어를 빌려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게 빌려 쓴 언어에 책임을 싣고 함께 살아가는 일에 성공하고 싶어서 쓰게 된 글입니다.

 

 사방에 퍼져있던 서늘한 공기가 내 어깨 위로 내려앉는 듯했다. 지나치게 오버해 버린 내가 싫어진다.

 내가 가져간 글은 가장 보통의 세계로부터 시작됐다.

 






 <보통으로부터>


 세상이 미세하지 않다고 믿거나

 나로만 빼곡하거나 하던 때

 도장 할아버지가 남긴 말이다

 우리는 세상의 언어를 잠시 빌릴 뿐이라고

 되갚기 위해서는 결코 작은 세상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고

 글을 쓰며 빌려온 언어를 책임지는 일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다만, 내 모든 사건이 작은 것에서부터 이어짐을 알았을 때

 여기저기서 다가오는 보통의 소동들을 사랑하게 됐다




 “생에 꼭 필요한 것들이 가슴을 후벼 판 것처럼 좋아요.”

 생에  필요한 가슴을 후벼 팠다니, 도저히 어디에서도 들어본  없는 말이었다. 내게 후져버린 글은 짧은  한마디에 많이 소중한 글이 되어버린다.








 너를 응원하는 모임의 합평은 옳고 그름도 차이도 교정도 무언가의 깨달음도 가장 중요한 과정이 될 수 없었다. 그저 쓰고 싶은 이가 마음껏 써 볼 수 있도록 마음을 쓸어주는 일이었고 일주일 후에도 하고 싶은 말을 무사히 꺼내 볼 수 있도록 안부를 나누는 일이었으며 모두가 눈부신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일이었다.



 나는 미닫이 문을 당겼다. 한 번 더 쓸 수 있는 내가 되어서, 마음의 체력을 얻은 내가 되어서, 게으르지 않은 내가 되어 기세등등하게 거리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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