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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기 Aug 17. 2024

세상이 당신을 비혼 결심하게 한다

이런 세상이 아니었으면 생각해 봤을 텐데요

청년 5명 중 4명이 결혼을 안 했다고요?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청년인구 중 81.5%가 미혼이라고 한다(KOSTAT 통계플러스, 2024년 여름호). 주변을 둘러보면 통계적으로 5명 중 4명이 미혼, 1명만이 기혼이라는 소리다. 청년인구의 기준이 만 19세부터 34세까지이고 이 통계의 기준연도가 2020년이니, 지금으로 치면 05년생부터 90년생까지다.


특히 '결혼 적령기'라고 불리는 만 30세부터 만 34세까지의 미혼률은 56.3%인데, 지금으로 치면 90년생부터 94년생까지는 2명 중 1명만 결혼했다는 뜻이다. 20년 전, 2000년의 미혼률이 불과 18.7%로 5명 중 4명이 결혼한 것과는 확연히 비교되는 수치다.


통계를 보다 보니 궁금해져서 내 주변의 90~94년생들을 세어봤다(나이를 아는 사람만 셀 수 있었지만). 직장 동료 A, 베프 B, 친한 언니 C, 스터디원 D 등등.. 놀랍게도 내 주변의 결혼적령기 미혼인구는 11명 중 8명, 대략 73%였다. 이거 원.. 내 주변도르는 통계보다 높잖아?


그럼 이들이 결혼 안 한 이유는 무엇일까. 떠올려보면 제각기 다르다. 누구는 결혼은 하고 싶은데 적당한 사람이 없다고 하고, 누구는 남자친구가 있고 언젠가 결혼을 하겠지만 지금은 딱히 생각이 없다고 한다. 또 누구는 남자친구가 있어도 확고한 비혼이라고 하고, 또 누구는 결혼할 남자친구가 있는데 아직 식은 올리지 않은 '예비신부' 상태다.


이렇듯 제각기 이유가 다른 가운데, '어느 누굴 데려와도 나는 비혼이다'라고 선언한 건 딱 1명이다. 나머지 7명은 결혼에 대한 의사가 명확하기도 하고 흐리기도 했지만, 어쨌건 명확한 '비혼'까지는 아닌 상태였다. 리커트식 척도로 세워보자면, 내 주변 사람들은 비혼에 대해서 '매우 확고하다', '어느 정도 확고하다', '별로 확고하지 않다'의 스펙트럼 선상 어드메에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결혼 적령기'인 청년들의 미혼률이 56%가 넘는다는 것은, 과거의 미혼률이 20%도 안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분명 놀라운 일이다.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청년 미혼 비율이 2배 넘게 상승한 이유가 단지 개인의 선택 때문일까?


미혼 남녀의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통계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통계청, 2022년 사회조사).


남자: 결혼 자금 부족(35.4%), 필요성을 못 느껴서(15.2%), 고용 상태 불안정(13.4%), 상대를 못 만나서(11.3%), 출산·양육 부담(9.3%), 자유를 포기하지 못해서(8.4%)


여자: 필요성을 못 느껴서(23.3%), 결혼 자금 부족(22.0%), 출산·양육 부담(12.5%), 상대를 못 만나서(11.9%), 자유를 포기하지 못해서(11.2%), 일·결혼 병행 어려워서(9.1%)


여기서 주목되는 건 미혼 여성의 결혼하지 않는 이유 1순위, '필요성을 못 느껴서'이다. 우리나라의 미혼 여성은 왜 결혼의 필요성을 못 느낄까? 단지 과거의 여성보다 현재의 여성 개개인이 우연찮게 그 선택을 많이 한 것일까? 20년 전과 비교해 30% p 넘게 차이나는 미혼률을 보자면, 그건 정답이 아니다.


결혼하기에 너무 위험한 한국 사회
세상이 당신을 결혼하지 못하게 막는다면

연일 쏟아지는 교제살인, 이별살인, 미성년자 성착취, 불법촬영물 유포, 협박, 갈취, 감금, 스토킹 사건... 몇 개인지 세기도 힘들 정도다. 포털 검색 사이트에 '여성 살인'이라고 검색하기만 해도 기사가 수두룩 빽빽한데, 심지어 매일매일 그 내용이 바뀐다는 점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에겐 그다지 놀랍지 않은 사실일 것이다.


'Disappointed but not surpurised.' 어느 유명한 외국 TV쇼 캡쳐가 말하는 것처럼, 너무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사회. 그것이 여성에게 한국 사회가 제공하는 느낌이 아닐까.


그러나 한국의 남성들은 여성의 위험 지각에 그다지 공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의 치안이 세계 최고인데 여자들은 밤길이 무섭다고?' 옛날에 모 여성 아이돌이 밤길 무섭다고 한 마디 했다가 남성들의 테러 대상이 지 않았던가(심지어 현재까지도 악플이 달리더라).


같은 한국 사회에 살아가더라도 서로 다른 두 성별이 경험하는 세상은 다를 수 있을진대, 기묘하게도 한국 남성들은 그들의 주관적 경험이 여성들의 그것과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기 힘들어 보인다. 아니, 힘든 것을 넘어서 거의 화를 내기까지 하지 않는가?


당신이 힘든 일이 있어서 누군가에게 그것을 토로했을 때, 당신은 공감적 위로를 기대하지 훈계나 비난을 길 기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러이러한 점이 힘들어'라고 하면 '아 그래? 힘들겠다. 그럼 저러저러하게 하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식의 대답을 기대하지, 어느 누가 '네가 힘든 건 힘든 게 아니야! 나도 이런 게 힘들어!'라는 대답을 바라겠는가.


하지만 인터넷 세상 속 남성들이 여성에게 쏟아내는 것은 원색적인 조롱, 비난, 비아냥뿐이다. 간혹 여성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댓글이 달리면, 그 내용에 대한 진지한 논의보다는 '너 페미지?' 라거나 '스윗한남이네' 라는 비웃음만이 따라붙는다.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꼰대들의 말에는 격하게 짜증 내다가도, 같은 세대의 여성들에게는 '자고로 여자는 페미 하면 안 돼!'라고 호통치는 그들의 이중성을 어쩌면 좋을까?


지난 10여 년 간 우리나라 강력범죄 여성 피해자 비율은 86.7%였다고 한다(경찰청범죄통계, 2011~2020년 강력범죄 피해자 중 남성이 13.3%, 여성이 86.7%). 연령별로 비교해 보면 20세 이하, 30세 이하 여성 피해자의 비율은 90% 이상이며 60대 이상이 되면 그 비율이 훨씬 낮게 나타난다(한국형사정책연구원, 범죄동향 이슈통계). 경찰청의 강력범죄 접수 건수를 봐도 연령이 높아질수록 피해자 중 여성 비율이 줄어들고, 61세 이상 연령대에서 여성 피해자 비율이 가장 낮다고 한다. 반면 강력범죄 피의자의 남성 비율은 95.45%에 달한다(경찰청).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 느끼는 사회적 위협은 강력할 수밖에 없다. 치안 좋고 밤길 걷는 게 안전한 한국이라고 하지만,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느낄까?


그들은 말한다. '모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보지 마. 그런 사람은 소수일 뿐이야!' 하지만 여자가 남자 마음을 투사경으로 투시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갖춘 존재도 아니고, 액면가만 보고 이 남자와 저 남자 중 살인범을 고르는 능력이 있을 리가 있나?


인터넷에 공개된 여성 대상 강력범죄자의 얼굴을 뜯어보라. 당신은 그 얼굴에서 어떤 특이점을 찾아낼 수 있? 유명한 여성 살해자 중에선 오히려 서글서글 잘 웃고 호남형인 사람도 있다. 그들의 얼굴에서 과연 '이 사람은 여자를 죽일 거예요'라는 특징을 당최 어떻게 찾아내겠는가?


성들에게는 여성을 잠재적으로 가해할 가능성이 있는 남자들과 그렇지 않은 남자들을 구분할 능력 없으니,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모든 남자를 경계하는 것.


이건 구전설화처럼 내려오는 모든 엄마아빠의 익숙한 잔소리 레퍼토리가 아닌가? 남자 조심해라. 남자 잘못 만나면 인생 종 친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들이 남자들과 같이 살지 않겠다는 '비혼' 결심을 하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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