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만나지 못한 너에게.
나는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몇 번이나 너를 생각했다.
내가 어떤 부모가 될지보다
내가 무엇을 반복할지 먼저 떠올렸다.
나는 기준이 있는 사람이다.
말을 삼키기보다 꺼내는 사람이고,
피하기보다 마주해 온 사람이다.
그게 나를 지켜준 방식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혹시 그 누군가가 너일까 봐
나는 조금 두렵다.
그래서 약속 하나를 남겨둔다.
나는 너를
나의 증명으로 키우지 않겠다.
네가 잘되면
내 선택이 옳았다는 증거로 삼지 않겠다.
네가 흔들리면
내 실패의 흔적으로 붙잡지 않겠다.
너는
내 자존심이 아니라
하나의 사람이다.
나는 네가 강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더 먼저 바라는 건
네가 약해도 괜찮다는 걸 아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이다.
세상은
속도를 묻고
결과를 묻고
끊임없이 증명을 요구할 것이다.
적어도 집에서는
네가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물론 나는 완벽하지 않다.
내가 옳다고 믿는 구조를
너에게 씌우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그때 네가 말해주면 좋겠다.
“엄마, 그건 나한테 무거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방어하지 않겠다.
설명으로 이기지 않겠다.
네 표정을 먼저 보겠다.
나는 네가 성공하길 바라지만
너를 잃으면서 얻는 성공은 바라지 않는다.
네가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너를 줄이는 아이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너를 사랑하되 소유하지 않겠다.
너를 걱정하되 묶지 않겠다.
너를 보호하되 대신 살지 않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네가 다치는 날이 오면
나는 아마 또 흔들릴 것이다.
괜찮은 척하다가
밤에 혼자 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그 흔들림을
너에게 덮어씌우지 않겠다.
혹시 네가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면
나는 잠시 당황할 것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선택을 하고
내가 불안해지는 길을 고를 수도 있겠지.
그때 나는
네 선택을 고치기보다
내 두려움을 먼저 다루려 한다.
나는
너를 이기고 싶은 부모가 아니라
너를 이해하려는 부모가 되고 싶다.
혹시 네가
나를 실망시키는 날이 온다면
나는 그 밤에 오래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네가
나를 두려워하며 사는 아이가 되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덜 무섭다.
나는 네가
나를 존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나를 피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네가 내 품을 떠날 때
나는 붙잡지 않겠다.
붙잡는 건 사랑이 아니라
불안이니까.
나는 네가
내 품을 벗어나도
스스로를 선택하는 사람으로
서 있기를 바란다.
그때 나는
“잘 키웠다”라고 말하기보다
“잘 놓았다”라고 말하고 싶다.
아직 만나지 못한 너에게.
나는 완벽한 부모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비겁하지는 않겠다.
내 상처를 네 위에 얹지 않고,
내 기대를 네 인생의 설계도로 삼지 않고,
내 불안을 네 탓으로 돌리지 않겠다.
너는
나의 증명이 아니라
너 자신의 증거다.
사랑은
붙잡는 힘이 아니라
지켜보는 힘이라는 걸
나는 이제 배우는 중이다.
그래도 혹시
내가 또 불안해지면
그때는
너보다 먼저
나를 돌아보겠다.
나는 네가
나를 실망시킬 자유를 허락한다.
그리고 나는
네 인생의 감독이 아니라
관객으로 남겠다.
구원이 아니라
동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