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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종교에 기대고 싶어.

절에 가고 싶진 않지만, '도'를 좀 닦고 싶네.

불교와의 첫 만남은 고등학교 때였다. 뺑뺑이라 하던가. 주소지로 학교를 지정받던 시스템에서 우리 집 주소지로 입학이 예상되는 학교는 약 3군데였다. 그  제발 저기만 피해라. 하던 곳이 있었으니, 바로 나의 모교였다. 그 곳은 불교재단학교였는데, 학습분위기가 별로라고 소문이 자자한데다 무엇보다 최악은 교복이었다. 교복이라면 응당 블랙, 그레이, 네이비 등 무난한 컬러들로 구성되어야 했는데, 우리 학교 교복은 자주색이었다. 지금도 메이크업을 완벽하게 해도 소화할까 말까 한 컬러, 이 오묘한 컬러를 우린 여드름 자국 가득한 맨얼굴에 초췌한 모습으로 걸쳐야 했다. 길 건너편, 작고하신 앙드레김선생님이 디좌인 했다는 세련된 교복에 대비되어 더 구려 보였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학교배정에 불만이 가득한, 상큼함이라곤 1도 없는 똥 씹은 표정의 신입생 시절, 반장과 학급임원을 뽑는 시간이 있었다. 아웃사이더에 가까웠던 나는 반장을 욕심낼 처지는 아니었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쓰잘데기 없는 권력욕이 있었는지 선생님이 '불교부장'을 권했을 때 마다 하지 않았다. 반장처럼 뭘 주도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오전에 하는 명상의 시간에 앞에 나와서 학생들이 눈을 감고 엉댕이를 들썩들썩하지 않도록 지겨보며 불상처럼 서 있는 역할이 다였다. 적당한 임무에 감투라니 꽤 괜찮은 자리였다.


이 선택이 그리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나름 독실한 기독교 신자의 자녀였으며, 교회부설유치원을 다니며  어릴 때부터 세뇌의 시간을 지나왔고, 초등학교시절 주일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찬송으로 가창을 뽐내는 걸을 꽤 좋아하는 어린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교부장의 감투에 주저하지 않은 걸 보면 기본적으로 신에 대한 믿음박약한 인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의 '불신' 사상에 불을 지핀이는 다름아닌 '산타할아버지'였다

7살 크리스마스 예배 때, 일을 하다 급히 뛰어온 엄마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유치원에 가던 길에 문방구에 들다. 급히 색연필세트를 샀다. 산타클로스를 만났다. 친구들에게는 엄청나게 큰 선물을 나눠주던 산타클로스는 엄마말씀을 잘 듣는 착한 어린이가 되라며 내게 색연필을 주었다. 난 미미인형을 달라고 했는데. 이상하다. 혼자 얼른 밖으로 나가봤다. 루돌프와 썰매가 없었다. 가짜야. 다 거짓말이야.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럴수가 없지.


불교수업이 있었다.  4월 무렵 재미없는 교리시간이 공작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부처님 오신 날에 사용될  연등을 만드는데 조직적으로 동원되었으나 그 누구도 불만이 없었다. 교리보다는 훨씬 재미있으니까. 손가락 두 개 정도 크기의 자주색, 꽃분홍색의 얇은 꽃잎지의 한쪽 끝을 꼬아 다른 면에 풀을 바른 후 6 각형 모형의 연등에 하나씩 붙이며 알게 되었다. 우리 교복의 자주색은 연꽃잎색을 딴 것이었다. 그럼 또 다른 불교재단 남고의 똥색 교복은 뭘 의미하는 건가. 대체 불교의 심오함은 알래야 알 수가 없다. 똥색교복의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연등 만들기는 단순 노동이 왜 필요한지 알려주었다. 무념무상. 텅 빔. 깔깔대고 떠들어 대면서 일을 했지만 순간. 찰나에 나는 그 텅 빔을 느꼈던 것 같다.

108배를 할 때에도 그 순간. 그 순서를 기억하고 놓치지 않으려 했던 그 시간을 지났을 때도 그랬다. 멍하니 절을 기계처럼 하던 순간.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찰나.


사촌오빠가 물려준 위인전세트 중 석가모니에 대한 책이 있었다. 불교가 민간에 퍼지며, 부처님을 비롯해 많은 보살이 생기고 다신교처럼 그들에게 복을 비는 종교가 되어버렸지만 불교는 사실 자기를 닦는 수련이자 도인 것 같다. 석가모니는 왕자이고 죽음과 고통이 무서웠던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 모든 감정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는 수련을 거듭해 '열반'에 오른 상태가 된 것이다.


절에 가서 복을 달라고 빌며 종교활동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열반이라고 명명되는 해탈의 경지 언저리, 그 어드메에 가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에 한번 휩싸이면 혼자 상상에 상상을 더해서 감정이 점점 증폭되는 감정과잉 상태. 요즘 내가 그렇다. 단톡방에서 허공에 대고 얘기하는 느낌을 받는 아주 사소한 일에서도 내 감정은 몽글몽글 불어난다. 흥하고 삐져도 되는데 혼자 꺼이꺼이 오열하는 모양새.  


유일신을 믿는 종교인들은 나랑 같은 상황에도 좀 다르지 않나? 흘깃 본다. 특유의 차분함이 있다. 그래도 신은 나를 사랑하셔.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신 이유가 있겠지. 나도 이런 확신에 차서 절대 전능한 신에게 의존해서 흔들리지 않고 살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다. 사실은 부럽다.


그러나 나의 신앙생활은 이미 7살 때 산타클로스가 망쳐버렸다. 이젠 나를 편안함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나는 내 어깨에 기대어 울 수밖에 없다. *


그러니 몸부림을 쳐본다. 헬스장에서 운동도 해보고, 커피도 먹어보고, 산책도 해보고 글도 끄적여 본다.  

그러나 이미 찰싹 달라붙은 몽글몽글 감정 떨궈내기가 어디 쉬운가. 속세의 수련법으로는 어림없다. 결국 내가 후들거리는 무릎으로 108배를 해야 하는 거냐고. 그 시절 불교교리시간, 그 어렴풋한 기억 속에 있는' 텅 빔'의 틈들을 만들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켜본다. '아 귀찮고 괴로워' 감정이 또 찰싹 달라붙는다.


* 카를 융은 종교가 우리에게 "확신과 힘을 주어서 우리가 우주의 괴물들에게 압도당하지 않게 해주는 "것이라고 보았다. 불교는 그런 괴물들을 피해 도망칠 피난처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신학적으로 말해서 기대어 울 수 있는 어깨를 전혀 제공해 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우리는 각자의 어깨에 기대어 울 수밖에 없다.
-에릭와이너 <누구에게나 신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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