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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에 나이는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고상하고 싶은 자아vs그렇지 못한 무의식

정녕 나이 때문에 소화능력이 떨어진 건가? 한 끼 밥양은 정말 남부럽지 않았는데, 연휴전날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았음에도  체하고 말았다. 덕분에 한글날을 낀 3일 연휴 동안 내내 소화제도 듣지 않는 이상한 체기에 끙끙대며 집안을 굴러다녔다.

체기를 달래보고자 드러누워 넷플릭스를 뒤지다  <환혼>이라는 드라마를 드문드문 발췌하여 본다. 본래 무협소설에 취미가 없거니와 슝슝 날아다니는 비현실적인 CG엔 나도 모르게 콧방귀를 날리는, 나름 냉정한 현실지향적인 취향임에도 내가 이 드라마를 보게 된 것은 순전히 남주를 맡은 배우 때문이었다.

언젠가 이 배우를 다른 드라마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밝고 가벼운 드라마에서 혼자 진지한데도 묘하게 자연스러워서 자꾸 눈이 갔었다. 그 드라마에 조각 같은 남자 주연 배우가 같이 나왔는데도 말이다. 여튼 다시 만난 이배우는 여전히 멋졌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내 눈이 쫄랑쫄랑 따라다녔다.


초록창을 켜본다. 이름이 이재욱이구나.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에도 나온다고? 언제 함 봐야겠군. 엥! 98년생? 너무 어린데. 그럼 뭐야 나랑 스무 살이나 차이가 나네. 이럼 덕질하기가 곤란한데.


고민이 생겼다. 덕질이라면 그녀밖에 물을 데가 없다. 성시경만이 인생의 낙인 그녀.


있잖아. 내가 카톡 보낸 거 봤어?

누군데?

이재욱이라고. 배운데..

요즘 관심이가?

응. 멀쩡하지 않아? 굉장히 매력있지?

응. 근데?

근데 너무 어려.

그래서?

너무 어려서 덕질하기 그래.


그녀가 기절할 것처럼 웃어댄다.


나이 많은 아줌마가 좋아하는 거 알면 싫을꺼 같아.

아니, 걔는 어차피 모른다고. 니가 나이가 많던 적던 걔는 모른다고.

넌 내 맘 몰라. 성시경은 오빠잖아. 오빠는 고맙지 동생이 좋아해 주면. 동생들은 나이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고 하면 징그러울 거 같아.  삼촌부대들이 걸그룹 좋다고 그러는 거  보기 그렇 않아?




어릴 땐 마흔이 넘고 쉰이 다되어 가는 나를 상상하기가 어려웠지만, 그래도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나이 들어가는 외모에 맞게 성숙한 마음을 가졌을 꺼라 기대했었다. 나는 지금쯤 어른스럽고 너그럽고 고상한 취향을 가졌어야 했다.


놀랍게도 마흔 중반의 나는 나이에 맞는 외모에 어릴 때와 다름없는 정신세계를 갖췄다. 여전히 불안하며 여전히 옹졸한.  왜 나는 어른스러운 어른이 되지 못한 것인가.


한참 어린 배 좋아한다는 것은 어쩌면 나이에 걸맞은 취향과 소양을 갖추지 못한 나의 철없음에 대한 증처럼 느껴졌다. 밖으로 드러내는 것은 더 안될 말이다. 내가 미성숙한 인간임을 드러내는 것이니까.


철학책을 읽고 사유하고 싶은데 그보단 가벼운 소설을 훨씬 좋아하는 내가 싫고, 다큐멘터리보단 <나 혼자 산다>를 더 좋아하는 내가 기가 찬다. 성시경  '오빠'를 좋아하는 양호하지만 20살 어린 이재욱은 안된다고. 마흔의 나는  이런 사람이어선 안되는데, 실은 이런 철없고 가벼운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인정하기 싫.


가만. 나이에 걸맞은 취향이라니. 나의 이런 고지식함 편견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  스스로를 가두는, 절대 따라잡지 못할 요상한 틀을 두고는 덕질마저 마음대로 못하는 내가 갑자기 불쌍해졌다. 이렇게 나의 덕질욕구를 누르다 누르다 보면 결국 엉뚱한 데서 빵 터지는 것은 아닐까? 압은 모든 신경증의 시작이라 하지 않던가. * 어쩜 걸그룹을 쫓아다니는 삼촌부대가  나보다 훨씬 건강한 사람들일수도 있겠어.


고상하고픈 자아와 20대 남자배우의 덕질을 해야겠는 무의식의 오랜 대치 끝에,

인스타그램을 켠다.

이재욱을 검색한다.

팔로잉을 꾹 누른다.

이 배우 느낌 있어. 내 취향 고상스럽네~뭘~큭!


무의식이 이겨버렸다.

*억압은 불안에 대한 1차적 방어기제이다. 가장 흔히 쓰는 방어기제로 의식에서 용납하기 힘든 생각, 욕망, 충돌들을 무의식으로 눌러 넣어버리는 것이다.
특히 죄의식, 창피 또는 자존심의 손상을 일으키는 경험들은 고통스러운 불안을 일으키므로 특히 억압의 대상이 된다. 억압에는 정신 에너지가 사용된다. 억압으로 불안을 방어하려고 하다가 실패하면 투사 상징화 등 다른 방어기제가 동원되며, 그 결과 신경증이나 정신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억압이 많을수록 편견이나 선입견이 많아지는데 , 그 이유는 억눌린 생각들이 풀려 나오지 못하고 억눌려 있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에로의 초대> 이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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