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을 생각하다 부모교육의 길을 찾다
미술관 나들이를 종종 즐기지만, 작품 감상보다 미술사나 미술 철학에 더 재미를 느끼는 비전공자로서 한 번씩 자문하게 된다.
현대미술은 근대미술과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동시대 미술과 혼용되어 쓰이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19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미술을 말한다. 그러나 현대미술의 특징을 무엇으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기간과 정의는 다소 유동적일 수 있다. 그건 그렇고 '현대미술' 하면 서구의 현대미술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설마 나만 그런 것인가?
제국주의와 20세기 후반에 이룬 경제 성장을 발판으로 서구의 일부 국가들은 체제와 시스템, 사상뿐 아니라 그들의 문화를 세계 곳곳에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영화, 음악, 미술, 패션과 대중문화를 선도하며 서구의 가치관과 관점을 널리 확산, 자기들 작품을 주류로 자리 잡게 한다. 결국 거대 자본을 기반으로 한 서구 중심의 사고와 세계질서는 현대미술에도 영향을 미쳤고 이제 서구문화의 영향력은 단순히 영향을 주고받는 단계를 넘어 일종의 문화권력이 되었다.
문제는, 모든 권력은 지배 논리와 규범을 형성하는 주체가 될 뿐 아니라 세계를 설명하고 해석하는 방식(=언어)을 독점한다는 데 있다. 문화, 예술, 현대미술에서는 다를까? 작은 규모의 갤러리 전시를 즐겨 찾다 보면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갖게 된다. 흥미진진하게 감상하다가도 문득 일부 작품들에서 서구의 것이 변형 없이 답습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비전문가 관람자의 소심한 우려이길 바라면서도, 서구의 관점과 미술 언어가 여전히 적잖게 소비되는 우리의 현대미술과 미술시장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마르틴 하이데거)’이라고 했던가? 언어는 인간이 세상과 관계 맺고 의미를 부여하는 근본 방식으로, 인간의 존재 방식은 언어에 의해 규정된다. 그리고 서구 미술의 존재 방식은 그들의 미술 언어에 의해 규정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 미술에서도 이제는 서구문화 권력자들의 언어가 아닌 우리만의, 우리 고유의 생각과 입장, 틀이 견고해지길 바란다.
한류열풍과 함께 ‘우리의 시간’이 펼쳐진 지금 창조적 에너지, 빛나는 개성과 남다른 해석 능력을 지닌 우리 작가들의 작품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 절대가치, 단 하나의 진리, 유일한 최고…. 뭐 이런 것들은 이미 쇠퇴기를 맞았고 ‘내 것을 만들기에 너무 좋은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비단 예술 분야만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기 것을 만들기에 참 좋은 세상이 됐다. 세상이 바꿨지만 학부모들을 만나면 이 같은 변화를 실감하기가 어려운 것은 왜일까? 반면, 학부모들의 명문대에 대한 가슴 깊은 애정과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맹목적 사랑은 세월이 흘러도 탈색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학부모 탓만으로 돌릴 순 없다. 변화를 빠르게 반영하지 못하는 획일적 교육도 문제고 사회의 구조적 문제도 크다. 그렇다고 이를 핑계 삼아 이대로 정체돼 있을 수만은 없다. 사랑하는 내 아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시대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거나 지배권력의 언어에 갇혀있는 한 고통은 고스란히 아이들 몫이 된다. 때문에 부모교육강사로서 양육철학과 양육태도의 변화가 매우 더딘 학부모들을 돕기 위한 참신한 무엇이 절실했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학부모 대상 미술사 수업을 시작했다. 전공자도 아닌 내가 머리 싸매고 공부해 가며 굳이 미술사 수업을 연 것은 예술의 기능과 가치가 자녀 교육의 목적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예술 활동은 집중력, 기억력, 사고력, 탐구력 등의 인지능력과 창의력, 표현력, 문제해결력, 협업과 소통 능력 그리고 끈기와 근성을 키우기에 적합하다. 재능개발은 덤이다. 이 모두가 자녀 교육을 통해 얻고 싶은 것들이 아닌가. 또 미술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세상과 인간, 또 인간 삶에 대한 이해가 생긴다. 따라서 함께 미술사를 공부하며 자녀 교육의 목표와 태도를 점검해 보자는 의도에서 마련한 수업이었다. 미술에 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고 미술 전시를 즐기는 수도 점점 늘어가는 지금, 미술은 학부모 교육의 소재로 활용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쇄신에 더디기만 하다. 정부와 학교도 문제지만 많은 부모들이 사회 지배권력의 언어를 그대로 학습, 모방하고 있다. 이들은 권위주의적 양육 태도를 고수하며 비판 의식 없이 줄 세우기 교육에 앞장선다. 자녀의 개성과 흥미에 대한 존중과 이해 없이 부모의 욕망을 관철하며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부모 스스로가 자녀와의 갈등을 자초하며 필요하다면 자녀의 인권을 침해하기도 한다.
여전히 자녀 교육의 성공모델을 찾고 있는가? 자녀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의사, 변호사, 성공한 기업가…. 대체 누구를 꿈꾸는가? 모델, 보편, 절대성은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멋진 유일한 나’로 살아갈 기회가 왔다. 적어도 우리가 변화의 바람을 타고 아이들에게 찾아온 기회를 훼방 놓는 부모는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