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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이어리 May 20. 2024

만약에 너의 애인이 바람을 폈어.

2024년 3월의 일기

"만약에 너의 애인이 바람을 폈어. 바람난 상대가 너랑 동성인 게 나아? 이성인게 나아?"


나는 만약에 게임을 좋아한다. 여러 난처한 질문들을 던지면 사람들은 괴로워하면서도 고민 끝에 자신의 대답을 내놓는다. 꼭 대답의 이유를 묻는데 이유들이 매번 각기 다를 때도 있고, 비슷한 이유로 상반된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앞의 질문은 내가 제일 자주 묻는 질문들 중 하나이다. 당신도 글을 마저 읽기 전 자신의 대답을 생각해 보길 바란다. 이유도 함께 생각하면 더 좋다. 단, 당신과 다른 성별인 상대와 바람이 난다고 해도 당신을 사랑했던 마음은 진심이었다는 전제다.


만약에 게임이 한창 유행할 때 이 질문을 못해도 50명에게는 물어본 것 같다. 어떤 선택을 하던 이유는 크게 2가지로 갈렸다. 첫 번째 이유는 그래야 상대의 마음을 다시 돌릴 수 있을 것 같아서이고, 두 번째는 그래야 내가 덜 상처받거나 빨리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물론 모든 대답이 두 가지 경우에 해당되는 건 아니다. 때로는 색다른 대답을 듣기도 한다. "여자친구가 여자랑 바람나는 게 나을 것 같아." 어느 이성애자 남성의 대답이었다. "날 두고 바람 폈으니 불행하면 좋겠어서. 동성연애가 행복하긴 쉽지 않잖아." 무슨 마음인지 이해하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동성연애는 이성연애보다 불행한가? 동성애를 반대하는 세력이 있긴 하지만 연애 자체만 보았을 땐 더 불행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많지는 않지만 내가 아는 양성애자들은 모두 이성연애보다는 동성연애를 선호한다. 양쪽을 모두 경험한 사람들의 선택이 동성연애라면 오히려 동성연애의 만족도가 더 높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또 어느 여성은 이렇게 답변하기도 했다. "내 남자친구가 여자랑 바람나는 게 낫지. 나는 동성애는 이해가 안 돼서" 흥미로웠다. 젊은 20대 여성 중에 동성애에 이렇게 적대적인 의견을 내는 경우는 잦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동성애에 반대하는 이유를 물었다. “나 교회 다니거든.” 이유가 너무 심플해서 흥미가 식는 대답이었다.


이 질문을 레즈비언 여성에게 한 적도 있다. "만약에 네 여자친구가 바람이 났어. 그 상대가 남자인 게 나아? 여자인 게 나야?" 당시 여자친구가 있던 그녀는 한참 고민 끝에 대답했다. "여자인 게 나을 것 같아. 남자랑 바람이 나면.. 내가 여자라서 상대가 원하는 걸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 앞서 말한 이유 중 두 번째 이유였다. "네가 여자라서 주지 못하는 게 뭔데?" 그녀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대답했다. "결혼이나 안정감 같은 거. 한국에선 못하잖아."


할 말이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 동성연애는 불행한 것, 이해할 수 없는 것, 그리고 부족한 것으로 여겨진다. 내가 양성애자, 동성애자 지인들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사실 내 주변에는 이성애자가 훨씬 많다.  2022년 스로를 LGPTQ라고 밝힌 미국인은 전체의 7.1%였다고 한다. 단순 계산하여 14명이 모이면 그중에 1명은 LGBTQ인 셈이다. 그리고 남은 13명 중 절반은 그 한 명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는 듯하다.


이 질문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했지만 정작 나는 아직 대답을 정하지 못했다. 어느 날은 이리 설득당하고 어느 날은 저리 설득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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