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금주를 외치다 (1)

금주는 하기 싫은 알콜 중독자의 절주일기 #05-1

by 도이어리

1. 독서모임에 외치기


한 달에 2번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성인들의 모임이 으레 그렇듯 모임이 끝난 후에는 뒤풀이가 이어진다. 독서모임도 예외는 없다. 모임이 끝나는 시간은 일요일 저녁 6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하러 이동한다. 보통은 치킨집에 간다. 약간의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음주를 하고 싶은 자와 식사만 하고 싶은 자들이 나뉜다. 독서모임의 멤버들은 대부분 술을 마시지 않는다. 음주를 하고 싶은 나 같은 사람은 혼자 마시기 머쓱하니 혹시 나 말고 맥주를 한잔하고 싶은 사람이 없는지 자연스럽게 물어본다.


“맥주 드실 분 계세요?”


사실 이 질문은 보통 내가 한다. 앞서 말한 ‘혼자만 술을 마시기 머쓱해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없는지 묻는 이’가 바로 나다. 가끔 다른 사람이 이 질문을 하더라도 나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한 번도 빼지 않고 언제나 맥주를 마시는 멤버에 포함되었다. 그러면 보통 나를 포함해 둘셋 정도는 맥주를 마시고 나머지는 콜라를 마신다.


금주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 그날은 예외적으로 파티룸을 빌려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당연히 술도 있었다. 소주와 피쳐 맥주, 종이컵으로 된 술잔들이 오갔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소주와 맥주, 혹은 콜라 등을 서로 따라주고 있었다. 나는 배달 음식들을 열어 먹기 좋게 나누고 있었다.


“도연님은 맥주죠?”


음식에 집중한 사이 어느새 내 손엔 종이컵이 들려있고 맥주가 꼴꼴 따라지고 있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대로 맥주를 홀짝 마실 뻔했다.


“아니요! 전 안 마셔요!”


맥주가 종이컵에 가득 따라졌을 때쯤 상황을 깨달았다. 황급히 잔을 다른 사람에게 돌렸다.


“네? 왜요?”


어쩐 일로 맥주를 마다하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이 질문이 나오지 않길 바랐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내 모습과 너무 다른 행동에 당연히 질문은 던져졌고, 어쩔 수 없이 공표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제가 금주를 시작해서요...”

“예에?!”


사람들이 일제히 놀랐다. 그중에서도 그동안 나와 함께 ‘언제나 술을 마시는 쪽’에 포함되었던 멤버가 가장 크게 놀랐다. 그날 처음 온 사람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상황을 살폈다. 잠깐의 정적이 생겼다. 나에게 모든 이목이 집중된 그 정적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두 달 정도 디톡스를 좀 해볼까 해요.”


어색한 정적을 견디지 못하고 말을 더해버렸다. 그렇게 난 공식적으로 꼼짝없이 두 달 동안 금주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솔직히 바로 후회했다. 그냥 적당히 컨디션이 안 좋다거나, 내일 중요한 일정이 있다는 거짓말을 할 걸 그랬다. 혹시라도 내가 금주를 포기하면 은근슬쩍 한 잔 마실 수 있도록 최대한 오래 비밀로 유지하려고 했다.


말은 이미 뱉어버렸고 물릴 수 없게 되었다. 혼자 금주를 결심하는 것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부담감의 정도가 다르다. 금주를 실패한다면 전자는 나 혼자 나를 한심하게 여기고 끝나겠지만, 후자는 온갖 머쓱함과 민망함에 사실은 혼자 몰래 술을 먹으면서 사람들에게는 계속 성공적으로 금주를 하고 있는 체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날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한심한 모습을 세상에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나와 친밀한 사람들은 그나마 내가 금주를 포기하더라도 날 한심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수고했다며 맥주잔을 채워줄지도 모른다. 한 번의 맥주를 참을 때 내가 얼마나 많은 흔들림을 견뎌내는지 알기 때문에 금주 사실을 쉽게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금주 사실을 알리는 것은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가능하면 두 달 동안 비밀을 유지하며 몰래 금주를 끝내려고 했다. 한 달에 한두 번 만나는 독서모임 멤버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알렸지만 앞으로는 꼭 음주를 해야 하는 상황들과 질문들을 요리조리 잘 피해 가며 비밀을 유지하리라 마음먹었다.


그 뒤로는 술 약속을 최대한 잡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친해지는 중이었던 사람 하나가 은근슬쩍 함께 술 한잔 하자는 눈치를 줬지만 모르는 척했다. 약속이 생기면 점심에 만났고, 어쩔 수 없이 술 약속이 생길 것 같으면 컨디션이 안 좋은 척했다.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결심은 너무 쉽게 무너졌다. 하필 금주 시기가 연말쯤이었던 것을 계산하지 못했다. 한 해를 보내며 송년회를 하자는 연락이 이어졌고 결국 여기저기 금주 소식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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