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근데 진짜 매일 혼술 하는 사람이 없다고?

금주는 하기 싫은 알콜 중독자의 절주일기 #04

by 도이어리

가족과 사이가 좋아지는 방법은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이라고 한다.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지금은 엄마와도 돈독하고 남동생과도 사이가 꽤 좋지만 어릴 땐 항상 집을 떠나고 싶어 했다. 다시 생각하면 집을 떠나고 싶기보다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끊임없이 갈망했던 것 같다. 나는 서른 살이 되도록 혼자 자취했던 10개월, 홈스테이를 살았던 6개월을 제외하면 내 방을 가진 적이 없다.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한 내향형 인간에게 조금 가혹한 상황이었다.


우선 본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부모님이 지금 집으로 이사를 온 건 내가 2살 때였다. 그전까지는 전세에 살았는데 바로 옆집에 도둑이 들었었다고 한다. 그것도 한 달 동안 무려 3번이나. 어린 나를 집에서 혼자 돌보던 엄마는 그 집에 계속 사는 게 무서우셨다고 한다. 도둑이 빈 옆집이 아니라 어린 딸과 함께 있던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하니 겁이 났다고 했다. 전세 보증금을 털어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작은 집을 찾았다. 복도에 가까운 거실에 방이 2개 달린 작은 집이었다. 이 집은 얼마나 작은지 28년이 지난 지금도 매매가가 1억을 넘지 못한다. 그래도 나름 수도권인데 말이다.


하여튼 이 집에는 방이 2개 있다. 하나는 안방이고 하나는 내가 자라면 내 방으로 내어주려고 했던 방이다. 내가 6살이 되었을 때 예상치 못하게 동생이 태어났다. 우리가 자매였다면 작은 방을 함께 썼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내 방은 없어도 우리 방은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동생은 남성으로 태어났다. 성별만 나와 반대인 것이 아니라 성향과 취향도 완전히 정반대였다.


안방과 작은 방은 누구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그 주인이 매번 바뀌었다. 아빠가 새벽 일찍 출근하던 시기에는 다른 가족들의 숙면을 위해 아빠 혼자 작은 방에 잤다. 동생이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때는 동생에게 방을 내어주기도 했고, 지금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엄마가 작은 방을 쓰고 있다. 내가 한창 예민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울고불고했던 사춘기 시절에는 잠시동안 내가 그 방을 쓰기도 했다. 누군가가 그 방을 쓴다고 해도 그 방이 그 사람의 소유인 것은 아니었다. 잠을 그 방에서 잔다는 의미였을 뿐, 방에 있는 옷장과 tv 등은 온 가족의 소유여서 잠에서 깨고 낮이 되면 다시 방을 내어주어야 했다.


내 방을 갖고 싶었던 사춘기 고등학생은 성인이 되면 돈을 벌어 집을 떠나겠다고 결심했지만 고등학생 시절 모은 용돈과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아무리 모아도 월세 보증금에 미치지 못했다. 월세 보증금을 모으더라도 문제였다. 주말 내내 아르바이트해서 받을 수 있는 월급은 한 달 월세와 비슷하거나 부족했다. 다시 돌려받을 보증금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매달 사라질 월세가 아까웠다. 독립은 포기하고 왕복 3시간이 넘는 거리를 한 학기 동안 통학했다.


여느 때처럼 사람이 너무 많아서 꽉 끼는 지하철을 타고 등교하고 있었다. 내 옆에 같이 끼어있던 아저씨가 쓰러졌다. 아니 주저앉았다. 아저씨는 의식을 잃었지만 일명 지옥철에는 쓰러질만한 공간이 없었다. 아저씨는 그대로 아래로 푹 꺼졌다. 주저앉은 채로 기절한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나도 아까부터 멀미를 겪고 있었다. 아저씨의 눈에 가득찬 흰자를 보니 이상한 두려움이 밀려오며 멀미가 심해졌다. 운 좋게 자리를 잡고 앉아있던 사람들은 쓰러진 아저씨를 보고 놀라 그제야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었다. 이미 기절한 아저씨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곧 기절할 것 같은 학생 하나가 그들의 앞에 있었다. 곧 의식을 차린 아저씨와 나는 감사하게도 자리를 양보받았다.


1학년 2학기. 지옥철과 멀미에 패배했다. 통학을 포기하고 기숙사에 들어갔다. 4인실에서 한 학기를 보내는 돈이 백만 원쯤 했던 것 같다. 4인실에서 한 학기, 3인실에서 한 학기를 보냈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내가 집을 떠나고 싶어 한다고 믿었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기만 하면 내 마음이 평온해질 줄 알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사실 내가 바란 것은 나 혼자만의 공간이었기에 기숙사 생활은 아주 썩 즐겁지 않았다.


기숙사에서의 유일한 행복은 혼자 몰래 마시는 맥주였다. 함께 방을 쓰는 사람들 중 주말에 본가에 내려가지 않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평일 내내 어색한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다가 비로소 혼자 남게 되면 해방감을 느꼈다. 같이 방을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금요일에는 수업이 없었기에 목요일 저녁이면 본가로 떠났고 목요일밤부터 일요일밤까지 기한이 정해져 있는 자유를 누렸다.


목요일 수업이 끝나면 학교 근처 할인마트에서 컵라면을 잔뜩 샀다. 기숙사에 주류 반입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주말 동안 마실 맥주도 샀다. 컵라면은 당당하게 봉투에 담았고 맥주는 가방에 몰래 숨겨 기숙사로 밀반입했다. 그렇게 들어가면 다음 월요일 수업까지 나오지 않았다. 주말 내내 침대에 누워 과제를 하거나 할 일이 없으면 무한도전을 봤다. 한편에 천 몇백 원이었던 무한도전 다시 보기 영상을 다운로드하고 맥주를 마시며 뒹굴거렸다. 행복했다. 이때부터 나에게 휴식이란 곧 맥주를 마시는 것이 되었다. 알콜 중독의 싹이 트고 있었다.


기숙사 생활은 1년 만에 끝냈다. 휴학을 했다. 내가 없을 때 내 물건을 자기 물건처럼 마음대로 쓰던 룸메이트에 대한 분노가 컸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내 책상에 있던 멀티탭이 너무 당당히 룸메이트의 침대 위에 있는 식이었다. 바닥에는 룸메이트의 양말이 뒹굴었고 화장실 배수구에는 머리카락이 끝없이 쌓였다. 동시에 밤새 공부를 해도 족보를 가진 학생들을 이길 수 없다는 무력감도 크게 다가왔다. 다시 본가로 돌아갔다. 본가로 돌아가니 엄마가 맥주를 사줬다. 몰래 먹을 필요도 없었다. 당당하게 매일 마실 수 있는 공짜(!) 맥주라니! 알콜 중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휴학하고 나니 시간낭비를 하면 안 될 것 같아 알바를 시작했다. 돈이 모이는 즐거움에 취해 10개월 동안 천만 원을 넘게 모았다. 22살에게 큰돈이었다. 부자가 된 것 같았다. 500만원쯤은 써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당시 유럽여행을 가는 친구들이 많았다. 전공이 프랑스어여서 유독 그랬을지도 모른다. 유럽여행 계획을 짜다가 이내 프랑스 한 달 살기 계획으로 바뀌었다. 그때쯤 친구 하나가 차라리 같이 어학연수를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얼결에 친구를 따라 프랑스로 떠났다.


6개월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프랑스에서 살았다. 프랑스로 떠나며 내가 가장 기대했던 것은 맥주였다. 편의점에서 파는 세계맥주가 막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나의 프랑스 집은 루앙이라는 시골동네에 있었다. 파리에서 1시간가량 기차를 타고 서쪽으로 달리면 나오는 지역이다. 크게는 노르망디 지역이고, 유명한 관광지로 말하자면 몽생미셸에 가기 전에 있다.


루앙의 한 3층짜리 전원주택. 꼭대기 다락이 나의 방이었다. 살면서 처음 가져본 내 방은 꽤나 아늑했다. 주황색 빛을 뿜는 작은 등이 어두컴컴한 방을 조금이나마 밝혔다. 창문은 북향으로 나 햇살이 거의 들지 않았다. 그래도 따뜻하고 안락한 느낌을 주는 방이었다. 바닥과 천장이 모두 나무로 되어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24시간 내 전기장판이 침대 위에서 열을 내고 있어서 그랬을 수도 이다. 침대는 돌아눕기도 힘든 작은 사이즈였고, 침대 옆에 있던 책상은 노트북을 하나 펼치면 끝날만큼 작았지만 행복했다.


수업이 끝나면 집에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서 병맥주를 한 팩 샀다. 3백 몇 미리짜리 맥주 6병이었다. 프랑스 슈퍼마켓의 맥주는 대부분 300ml대였다. 그중 이름은 모르지만 뚜껑에 독수리가 그려진 맥주를 제일 좋아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나면 방에 들어와 프랑스어로 디즈니 영화를 보며 맥주를 마셨다. 차가운 맥주는 아니었지만 맛있었다. 내 방에서 혼자 맥주라니. 방이 없었던 나에게는 오랜 시간 꿈꿔온 순간이었다. 맥주와 함께하는 아늑하고 평화로운 저녁이 6개월 내내 지속될 것 같았다.


매일 아침 어학원에 가고 나면 주인아주머니가 내 방에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진 그랬다. 그 방은 내 방이었지만 온전히 내 소유는 아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매일 아침 학생들이 어학원에 가면 집의 모든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아주머니는 며칠 동안 방구석에 놓인 맥주병이 줄다가 다시 늘다가 하는 것을 모두 보고 있었다.


하루는 다 마신 맥주병을 버리러 1층 주방 옆 분리수거장으로 가던 길이었다. 주방에서 아주머니를 마주쳤다. 아주머니가 프랑스어로 뭐라 말씀하셨지만 알아듣지 못했다. 바디 랭귀지가 시작되었다.


“(핸드드립 커피 종이 필터를 들고) 이것이 바로 너의...

“(구글 번역기를 보여주며) 간이야.

네가 만일 맥주를 이렇게 (내 손에 든 빈병을 가리키며) 많이 마시면..

너의 간이 (종이필터를 손가락으로 뚫어버리며) 이렇게 구멍 나게 될 거야.”


살면서 들어본 가장 길고 험악한 걱정이었다.


“하하. 이 정도는 한국인들에게 별 거 아니에요.”


웃으며 대답했지만 아주머니는 진지했다. 정작 본인은 매일 저녁 와인을 마시면서 말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집에서 매일 편하게 맥주를 마시지 못했다. 대신 좀 불편하게 매일 마셨다. 우선 맥주를 사갈 땐 백팩에 넣어 숨겨 들어갔다. 숨겨 들어간 맥주는 옷가지 아래 숨겨뒀다. 다 마신 빈 병은 다시 백팩에 담아 몰래 빠져나왔다. 빈병끼리 부딪혀 소리가 나지 않도록 병 사이에 필통이나 파우치를 넣는 섬세함도 보였다. 들고 나온 빈 병은 학원 가는 길에 있던 빈병 수거함에 버렸다.


프랑스에서 돌아오고 몇 년 뒤에는 혼자서 월세집을 구해 살았다. 그쯤 연예인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관찰 예능이 인기를 끌었다. 그중 저녁에 혼자 마시는 맥주 한 캔이 삶의 유일한 낙이라는 사람이 몇 있었다. 나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이사한 자취방 앞에는 작은 골목이 있는데, 그 골목을 가로지르면 30초 만에 도착할 수 있는 슈퍼가 있었다. 계산하시는 아주머니가 날 기억하실 만큼 매일 들렀다.


생활비가 부담되면 비싸고 맛있는 맥주를 포기하고 싸고 맛없는 맥주를 먹었다. 맥주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맥주의 브랜드를 하향시켜 필라이트를 마시기도 했고, 맥주의 종류를 하향시켜 피쳐(pet병에 담긴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나중에는 브랜드와 종류를 모두 하향시켜 필라이트 피쳐를 마셨다. 이미 맥주의 맛은 중요하지 않았다. 매일 저녁 맥주를 마시는 것 그 자체가 중요했다.


그게 딱히 문제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가 이렇게 사는 것 같았다. 티비에도 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만취할 만큼 먹는 것도 아니고, 밖에서 사고를 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혼자 집에서 조용히 좋아하는 예능프로를 보며 홀짝거리다가 멀쩡히 씻고 푹 잤다. 행복한 삶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론이 바뀌기 시작했다. 가끔 많이 마시는 것보다 조금씩 자주 마시는 게 더 안 좋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믿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아직 사람들이 모이면 술을 마시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던 때였다.


매달 55만 원씩 나가는 월세가 아까워 1년을 조금 안 채우고 본가로 돌아왔다. 성인이 된 이후로 나는 본가에 살았다가 밖에서 살았다가를 반복했다. 밖에서 지내는 동안은 혼자임을 즐기며 맥주를 더 먹었고, 본가에서 살 때는 엄마가 사주는 공짜맥주를 즐겼다. 거처가 바뀔 때마다 조금씩 알콜 중독이 심해졌다.


나의 맥주 중독이 가속화될수록 세상의 분위기도 급변했다. 혼자 먹는 맥주, 집에서 먹는 맥주, 퇴근 후 먹는 맥주를 찬양하던 여론이 돌아섰다. 매일 술을 마시는 게 얼마나 몸에 안 좋은지 연일 외쳐댔다. 술을 마시지 않는 친구들도 늘어났다.


한 번은 그 친구들을 포함해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인 적이 있다. 뒤풀이 장소가 치킨집으로 정해졌다. 치킨과 맥주는 세트니 당연히 맥주 한잔 시켰다. 맥주가 나오고 보니 맥주를 시킨 건 나를 포함해 3명뿐이었다. 치킨집 사장님 보기가 민망했다. 그 자리에는 초면인 사람도 여럿 있었다. 내가 생맥주를 한입 먹고 행복해하자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가 술로 이어졌다. 얼마나 자주 마시냐고 묻길래 거의 매일 맥주를 마신다고 답했다.


“매일 마신다구요?! 매일이요? 진짜 매일? 일주일에 7일?! 365일?!”


화들짝 놀라 여러 번 되묻던 낯선 사람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내가 매일 맥주를 마시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게 물으니 주눅이 들었다. 정말로 내가 알콜중독자가 된 것 같았다. 그 날 이후로 좀 의기소침해져서 맥주를 매일 마신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혼자 저녁에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게 공감받는 이야기였는데, 몇 년 사이 혼자 맥주를 마신다는 것도, 매일 마신다는 것도 알콜 중독자의 증상으로 여겨진다. 남들 다 나처럼 사는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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