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라는 게 있을까? 신 같이 초월적인 존재가 ‘너네 둘이 행복하게 짝짝꿍하렴’하고 정해준 운명. 혹은 ‘너는 평생 이걸 하면서 먹고살아야 한단다’하고 정해준 운명. 신도 운명도 딱히 믿는 건 아니지만 살다 보니 혹시 이게 내 운명인가? 싶은 순간을 마주할 때는 있다. 예를 들면 가끔 나의 동거인과 내가 운명의 짝인 건 아닐까 생각한다.
비혼이라는 개념조차 몰랐던 17살, 엄마에게 비혼을 선언했다.
“엄마. 나 결혼 안 할래.”
“그래, 하지 마. 안 해도 돼.”
나의 선언에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 이후로 10년이 넘도록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나의 동거인은 나보다 한 살 많은 여성으로 일찍이 비혼을 결심하고 혼자 살아가던 중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갈 곳 없어진 나를 불러 몇 달 동안 잠시 지내게 해 주었는데 그게 이어져 아예 함께 살게 되었다. 함께 사는 동안 이렇다 할 싸움도 한 적이 없다. 집안일 분담이나 서로 달랐던 생활습관은 몇 년을 같이 산 사이처럼 쉽게 어우러졌다. 거실에 누워있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 평생 이토록 평화로운 적이 있었나?’
본가에 살 땐 가족들과 자주 다투었다. 친구들과 함께 자취를 한 적도 있는데 크게 싸우고 지금은 사이가 완전히 멀어졌다. 한때는 내 성격이 너무 모나서 누군가와 같이 살 수 없는 사람인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때때로 평화를 실감하면 신기한 마음이 든다. 이렇게 마음 맞는 사람이 있다니! 이렇게 누군가와 같이 사는 삶이 평온할 수 있다니! 우리는 같이 살 운명의 짝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동거인과 나는 모두 술을 좋아한다. 사실 원래 취향까지 비슷한 것은 아니었다. 동거인은 소주와 하이볼을 즐겼고, 나는 강경하게 맥주만을 즐겼다. 동거인은 회를 좋아했고, 나는 주로 고기나 과자, 마른안주를 먹었다. 함께 살며 서서히 취향이 물들었다. 동거인은 나에게 스며들어 소주보다 맥주를 더 즐기게 되었다. 나는 동거인에게 스며들어 계절마다 제철회를 찾아 먹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살며 술 취향도 안주 취향도 비슷한 운명의 짝이 되어가고 있었다. 행복한 운명의 음주생활을 1년째 이어오던 중 나 혼자 운명에서 쏙 빠져 금주를 시작하기 전까진. 원래 소주파였던 사람을 맥주맛에 길들여놓고, 매일 저녁 맥주가 생각나게 만들어놓고 나 혼자 금주를 시작했다. 이상하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동거인이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는 나를 재미없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나는 오랜 시간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을 곧 재미없는 사람으로 여겼다. 솔직히 지금도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낯을 오래 가리는 성격이라 애초에 술을 마시지 않고는 친해지기가 어렵다. 왁자지껄하게 술을 마시고, 적당히 취하고, 음식도 맛있고, 기분이 좋고, 볼이 좀 발그레해지고… 그래야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열리고 사람이 편해진다. 친한 사이가 되기 전까진 만남에 술이 필수다. 아직도 낯선 사람과 술 없이 만나야 한다면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생각만 해도 어색하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과는 줄일 수 없는 거리감이 있다.
가끔 같이 술을 즐길 거라고 기대한 자리에서 술을 안 마시는 사람에게는 서운하기까지 하다. 한 번은 친구 B와 오랜만에 단둘이 보기로 했다. 며칠 전부터 잡은 약속이었다. 치맥을 먹기로 했었다. 치킨집에 앉아 메뉴를 고르고 술을 고를 차례가 되자 B가 말했다.
“나 술은 안 마실래.”
분명하게 말하지만 같이 치'맥'을 먹자는 약속이었다.
“왜? 몸이 안 좋아?”
“어제 너무 많이 마셔서 숙취가 아직도 있어.”
어제 너무 과음을 해서 힘들다는 것이 이유였다. 치킨과 맥주를 함께 먹자고 약속해 놓고 맥주는 쏙 빼겠다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부터 밥을 먹자고 했다면 이런 마음이 들진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차라리 오늘은 너무 힘드니 다음에 보자고 했어도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내가 기대한 것은 정확히 친구와 치킨과 맥주였다. 심지어 그 이유가 어제 다른 친구들과 신나게 놀아서라니 질투심과 소외감, 그리고 서운함이 섞였다. 이런 마음을 B에게는 전하지는 못했다. 치킨을 시켜놓고 물만 먹는 B 앞에서 멋쩍게 생맥주를 한잔 비웠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B에게 오랜만에 보자는 연락이 오면 너무 기대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자기 방어가 먼저 고개를 들었다. 기대감이 크면 실망감이 커지는 법이다. 가끔은 별다른 일정이 없는데도 바쁘다고 약속을 거절한 적도 있다. B와의 거리가 멀어졌다.
이렇게 술을 못 마시거나 안 마시는 사람을 곧 재미없는 사람으로 여기며 10년을 살았다. 그리고 10년 만에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다행인 것은 두 달이라는 기한이 있다는 것이다. 두 달간의 금주로 잠깐 재미없는 사람이 된다 해도 두 달 동안만 만나지 않으면 내가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비밀을 들키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같이 사는 동거인이다. 동거인에게만큼은 금주 사실을 비밀로 할 수 없었다.
금주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일찍 퇴근하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마침 동거인도 일찍 퇴근하는 날이었다.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동거인이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저녁 메뉴에 대한 회의가 시작됐다.
“오늘 저녁은 집에서 해 먹을까? 나가서 먹을까?”
하루의 노고를 씻어줄 메뉴로 어떤 음식이 완벽할지 토론을 이어가던 중 동거인이 물었다.
“혹시 오늘 내가 맥주 먹자고 꼬시면 넘어올 거야?”
동거인은 내가 진짜로 금주를 할 거라고는 조금도 믿지 않았다. 지나간 수차례의 금주 시도 내내 동거인이 먼저 맥주를 마시자고 말해주길 오매불망 기다리다가 마침내 동거인이 음주를 제안하면 어쩔 수 없는 척 넘어갔던 탓이다. 이번에도 동거인은 지난 금주 시도처럼 적당히 하루 이틀쯤 기다렸다가 나의 금주를 적당히 끝내줄 생각으로 물었다. 오늘 저녁 맥주 파티가 당연히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음. 나는 탄산수 마실게.”
거절했다. 동거인은 예상치 못한 나의 대답에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그럼 나도 안 마실래.”
상대가 음주 제안을 거절하면 김 빠지는 그 기분을 안다. 함께 즐기고 싶은데 혼자 마시려니 의욕이 나지 않는 마음도 안다. 음주의 특성상 옆에 있는 사람을 꾹 참고 있는데 혼자 마시면 유독 나만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기분이 드는 것까지 모두 안다. 과거의 내가 여러 번 느꼈던 감정이다. 동거인이 나의 금주 때문에 괜히 느끼지 않아도 됐을 감정을 느끼게 된 것 같아 미안했다. 이런 마음도 금주의 고비임을 알지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나 진짜 괜찮아. 그냥 마셔! 냉장고에 있는 거 꺼내줄까? 안주 하나 해줄까?”
동거인이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게 하여 노력했지만 그날 동거인은 끝내 맥주 한 캔을 참아냈다. 요즘도 동거인은 종종 나의 금주가 지속되고 있는지 묻는다. 나의 금주 선언이 이렇게 오래갈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함께 술을 즐기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일주일에 한두 번 동거인과 tv로 배구 경기나 유튜브를 보며 회를 시켜 먹는다. 동거인은 배달음식을 매번 시키기 전에 묻는다.
“너 금주하는데 옆에서 맥주 마시면 나 너무 쓰레기야?”
“아아아아무 상관없어! 나 이제 진짜 맥주 참는 거 안 힘들어. 바로 옆에서 먹어도 아무렇지도 않아!”
내가 금주를 시작한 이후로 동거인은 집에서 술을 먹을 때마다 내 눈치를 본다. 내가 호들갑을 떨며 대답하면 그제서야 안심한 표정으로 냉장고에서 맥주를 챙겨 온다.
이렇게 적으니 동거인이 나의 금주를 방해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나의 금주에는 동거인의 기여가 가장 크다. 동거인은 비록 나의 금주 결심을 믿지는 않았지만 존중해 주었다. 같이 마시자고 조르지도 않았고, 참으라며 압박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 때문에 같이 꾹 참으며 힘들어했다면 죄책감이 더 들었을 텐데 가끔 내 옆에서 맥주를 즐겨주면 함께 술을 즐기는 기분이 나서 좋다. 맥주를 너무 마시고 싶을 때를 대비해 무알콜 맥주와 탄산수를 박스째 사다주기도 했다. 금주를 시작하고 나서 피부가 좋아진 것 같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다며 나의 의욕이 식지 않게 응원해주고 있기도 하다. (이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다시 적어보겠다.) 금주가 끝나면 첫 맥주를 어디서 마셔야 가장 맛있는 결실을 얻을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해 주는 것도 동거인이다.
배달음식을 먹을 때 동거인과 나는 맥주와 탄산수로 건배를 한다. 매일 깔깔거리며 음주와 음료를 즐기고 있는 걸 보니 다행히 아직은 나를 재미없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나에게 이런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몇 달 전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 나의 두려움을 실체화했다. 책에는 여자 하나가 자기 몸 만한 와인병을 들고 있는 그림이 표지로 그려져 있었다. 그 아래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알콜 중독자의 맨 정신 체험기’
절주 중인 알콜 중독자를 끌어당기는 문구였다. 당시 나는 올해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절주 중이었다.
‘이건 내 이야기잖아! 당장 읽어봐야 해.’
다시 보니 이 문구는 책의 부제목이었다. 진짜 제목은 ‘금주 다이어리’였다. 다이어리라는 제목답게 책은 작가의 금주 1일 차부터 시작해 1년이 넘게 일기가 이어진다. 맥주에 중독된 나와 달리 작가는 와인에 중독되어 있었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매일 밤 남편과 함께, 혹은 혼자 와인을 즐기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와인을 끊기로 결심하고 이후 와인을 끊기 위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하루하루의 일들이 적혀있었다. 그중 인상 깊었던 문장을 소개하려고 한다.
“내가 술을 끊어서 신경 쓰여? 술친구가 그리워?” (67p)
내가 이제 ‘같이 한잔 마시지’ 않는 것을 사람들이 알면 버려질까 봐 아직도 두렵다. (84p)
작가는 남편 존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더 이상 술을 즐기지 않는 자신을 재미없게 생각할까 봐 두려워했다. 내가 금주를 할 때마다 느끼던 묘하게 불편한 감정이 작가의 두려움과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심지어 이상형의 조건에도 술이 필수였다. 종종 술자리에 가면 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꽃피곤 한다. 남의 연애 이야기가 그렇게 재밌다. 누군가는 자신의 지나간 연애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지금 연애의 힘든 점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가끔은 진부하지만 이상형이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이 나오기도 한다. 누군가가 이상형 이야기를 꺼내면 내가 꼭 이어서 꺼내는 질문이 있다.
“이상형 말고, 반대로 ‘이런 사람은 절대 못 만난다’ 하는 거 있어요?”
이 질문의 전제 조건은 음주 운전이나 마약, 도박 같은 불법적인 문제이나 누가 봐도 안 되는 문제는 빼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마다 이런저런 의견을 내놓는데 의견이 갈리는 게 재밌다. 내 사촌 동생은 담배 냄새가 너무 싫어서 담배 피는 사람과는 절대로 사귈 수 없다고 했다. (내년에 흡연자인 남자친구와 결혼할 예정이다.) 누구는 연락이 잘 안 되는 사람은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은 반대로 매일매일 얼굴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과는 연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특정 맞춤법에 예민했고, 누군가는 젓가락질에 예민했다. 집이 더러우면 확 깬다는 사람도 있었고, 운전할 때 노래를 크게 트는 사람이 싫다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상식을 모르는 건 괜찮지만 역사를 잘 모르는 건 무식해 보여서 싫어.”
나의 대답은 언제가 같았다.
“나는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이랑은 연애 못해.”
정확히는 ‘맥주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맥주 한 잔 하는 게 나의 큰 행복 중 하나인데 그 행복을 사랑하는 사람과는 즐길 수 없다니! 이건 단순히 행복 하나를 잃는 수준이 아니다. 게다가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은 술의 양과 빈도에 대한 감이 턱없이 부족한 면이 있다.
예전에 어느 신혼부부 연예인의 관찰 예능을 본 적이 있다. 남자는 술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한 주당이었으나 여자는 술을 입에 대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여자는 남자가 술을 마시는 게 너무 싫어서 아예 안 마시길 바랐다. 남자가 소주를 한잔하고 싶다고 말하면 ‘몸에도 안 좋은 걸 뭐 하러 마시냐.’며 일축했다. 여자는 남자가 술을 마신 날을 달력 어플에 기록했다. 마신 술의 종류와 빈도, 양을 체크하며 남자의 음주를 통제했다. 그래도 여자는 나름대로 남자를 존중하여 많이 양보했다. 여자가 허락한 빈도는 일주일에 딱 하루. 양으로는 맥주 3000ml였다. 친구들까지 초대해서 함께 즐기는 집들이에서도 3000ml라는 한도는 동일하게 적용됐다. 3000ml는 친구들에게 알콜 쓰레기라고 놀림받는 나에게나 적절한 양이다. 그 남자 연예인처럼 주량이 센 사람에게는 보리차를 한병 마신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주 1회라니.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게 얼마나 아쉬울 양과 빈도인지 알고 있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 여자는 그게 왜 부족한지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내 주변에도 이런 커플이 여럿 있다. 한 명은 술도 좋아하고 술자리도 좋아하는데 상대는 술도 술자리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경우 상대측은 건강 어쩌구를 주장하며 강력하게 통제한다. 사실 건강 문제를 들고 오면 술을 즐기는 쪽은 반박하기 어렵다. 한쪽이 다른 쪽을 통제하는 연애는 싸움이 잦다. 그래서 나는 애초에 술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다. 적어도 술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사람을 찾는다. 기왕이면 술 취향이 나와 비슷한 사람이면 더 좋다. 술을 좋아하지만 내향적인 성향이 있어서 술자리보다 집에서 마시는 걸 좋아하는 사람. 가끔 많이 마시기보다 자주 조금씩 마시는 걸 좋아하는 사람. 맥주가 배부르다고 생각하기보다 청량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상형의 조건에 맥주가 있을 정도로 맥주를 중요하게 생각하던 내가 금주를 시작해 버렸다. 재미없는 인간이 된 것이다. 지인이었다면 크게 친해지지 못했을 사람, 소개팅 상대였다면 만나기도 전에 거절했을 사람이 되어버렸다. 다행히 나에겐 약속된 소개팅이 없고, 친구를 자주 만나지 않는다. 두 달 동안 잠시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다가 금주가 끝나는 날, 이제 다시 재미있는 사람이 되는 날에 나는 운명의 짝과 함께 운명의 맥주를 찾아 떠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