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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이어리 Mar 06. 2024

여자들끼리 커피먹고 치킨 먹어요

여커치독 #1

한 달에 2번 일요일 2시가 되면 가방을 바리바리 싸서 집을 나선다. 가방에 꼭 넣는 물건은 무선 이어폰, 보조배터리, 필통과 책 한 권, 그리고 공책 한 권이다. 목적지는 가산디지털단지역이나 구로역, 요즘은 주로 신도림이다.


보통 내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온다. 낯이 익은 사람도 있지만 초면인 사람들도 한 둘은 꼭 껴있다. 그런 사람들은 쭈뼛거리며 ‘혹시 독서모임…?’하고 묻는다. 여커치독의 새 멤버가 들어오는 순간이다.


여커치독.

여자들끼리 커피먹고 치킨먹는 독서모임.

내가 지은 이름이다. 3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질리지 않는다. 가끔 새로운 멤버가 이름이 마음에 든다고 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내 친구이기도 한 모임장 지영은 ‘그런 말 해주면 쟤 또 기세등등해진다’며 타박하지만 뿌듯함을 감출 수는 없다.


모임 이름을 이렇게 길고 요상하게 지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독서모임을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지금 여커치독의 부모임장을 맡고 있지만 원래 나서는 성격도 아니고 이렇게 직접 모임을 운영할 계획은 전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둔 독서모임에 발만 걸치고 싶었다. 막상 여성 독서모임을 찾아보니 너무 본격적이라 겁이 났다. 어떤 여성 독서모임은 읽는 책이 너무 어려워 보였고, 어떤 여성 독서모임은 북카페 사장님이 운영하고 있었다. 심지어 작가님을 모셔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도 있었다. 너무 똑똑하고 통찰력 있는 사람들만 모여있을 것 같아서 한 달에 한 권 책 읽는 것도 버거운 독서 초보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모임일 것 같았다.


여자들끼리 편하게 그리고 조금은 가볍게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모임은 없을까. 오랜 검색 끝에 모임을 찾기는 포기하고 지영과 함께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기대하는 사람들 말고 나 같은 독서 초보자들이 많이 모이길 바랐다. 그래서 우리는 여커치독의 운영진이 되었다.


처음에는 행사 플랫폼으로, 다음에는 인스타그램으로 그리고 지금은 소모임 어플로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1년 넘게 쉬던 기간을 포함해 약 3년 정도 되었다. 그래도 여성 독서모임의 운영진이라는 말은 아직도 너무 거창하게 느껴진다. 아주 많은 책을 아주 열정적으로 읽는 여성이어야 할 것 같다. 책에 대한 지식도 풍부하고 책에 대한 통찰력도 뛰어나야 할 것 같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지라 그런 이미지로 비치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는 그냥 여성 독서모임에 다닌다고만 한다.


그렇게 말하면 보통 ‘왜 하필 여성 독서모임에 나가느냐?’는 질문이 돌아온다.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나도 나와 다른 사람보다는 비슷한 사람을 선호한다. 어릴 때부터 여자친구들이 편했고, 오랜 시간 여자인 친구들이랑만 어울렸다. 생전 처음 나갔던 독서모임도 여성 독서모임이었고, 지금도 남사친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은 없다. 여성 독서모임을 찾은 것이 나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왜냐고 물어보면 마땅히 대답하기가 어렵다. ‘그냥 그게 편해서’가 전부다.


이렇게 말하면 나를 한 번도 연애한 적이 없거나 오랜 기간 연애를 하지 않은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특히 '여성' 독서모임이라고 하면 남성을 싫어하는 여성들의 모임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는 것 같다.


오해를 바로잡자면 우선 나는 연애경험이 나름 있는 사람이다. 여성 독서모임에는 오히려 연애 중이어서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혼성 독서모임에 나가면 아무래도 커플 싸움의 원인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혼성 모임에 나간다고 꼭 그런 일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혼성 모임에서 과한 추파(?)를 겪고 부담스러워 여커치독을 찾은 분도 있었다. 독서모임 운영진으로서 연애에 대한 입장을 추가하자면 누군가의 연애로 모임이 빠갈나느니 동성 독서모임을 운영하는 게 낫다. 물론 동성 모임 안에서도 연애가 있을 수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동성연애라면 그렇게 모두가 알도록 시끌벅적하게 하지는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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