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떠나다.

by 수수

결혼생활 33년 동안 남편과 떨어져 지낸 적이 없었다. 결혼 후 여섯 번의 이사로 주거지를 옮겨 다니기는 했지만 늘 남편과 함께였다. 하지만 결혼 생활 30년이 지난 지금 남편과 다른 지역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2018년 9월부터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삶이 시작되었다.


2018년 8월 말 폐암 수술 후, 흡연하는 남편이 있는 매연 가득한 도시를 떠나 자연이 있는 공기 좋은 곳에서 생활할 기회를 얻었다. 수술하고 병원에서 퇴원하여 바로 강릉으로 내려왔다. 강릉에는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기 시작한 아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아들이 지내는 곳은 입암동에 있는 것으로 침대 방 하나와 부엌 거실이 함께 있는 작은 평수의 아파트였다. 아들은 침대방을 나에게 내어 주고 거실에서 잠을 잤다. 아침에 방 창문을 열면 아파트 주변에 있는 작은 산의 푸르른 나무들이 인사를 하는 듯한 풍경이 보였다. 나무 사이사이에서 새들이 앉아 지저귀는 소리도 들렸다. 베란다의 창문으로도 나무들과 새들이 보였다.


강릉 시내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곳은 참 평화롭게 느껴졌다. 서울에서의 삶은 너무도 바쁘고 지친 나날들이었는데 강릉에서의 생활은 평안함이 가득했다. 서울과는 다르게 아파트 주변에 산들이 많고, 바다로 이어지는 넓은 하천도 있고, 하늘이 파랗고 예뻐서였는지도 모른다. 서울은 이곳저곳에 사람들과 자동차 그리고 건물들이 많아 복잡하여 마음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 강릉에서는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주변 사람들도 걷는 모습이 늘 여유가 있어 보였다.


강릉에서 가을이 시작된 9월 한 달을 보내고 10월에 제주도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다. 제주도에서는 4개월 동안 생활했다. 열방대학 기숙사에서 3개월을 보내고 1개월은 선흘 동네에서 한 달 살기를 했다. 열방대학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성경말씀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고, 또 세계 여러 나라에 다니며 예수님 사랑으로 섬기며 예수님을 전할 수 있는 훈련을 하는 대학이다. YWAM 사역의 일환으로 DTS(예수제자훈련학교)를 기초로 한 다양한 학과과정을 통해 열방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을 훈련하는 국제 기독교 대학이다. 자연으로 둘러싸인 제주도의 공기는 강릉보다도 더 맑고 깨끗했다. 가을의 아름다운 자연을 제주도에서 만끽하며 지냈다. 추운 겨울에도 제주도의 날씨는 따뜻했다. 기숙사에서는 다른 분들과 함께 지냈지만 3개월 동안의 기숙사 생활이 끝나고 한 달 살기를 할 때는 오롯이 혼자 지냈다. 나의 완전한 첫 독립이었다. 그 한 달 동안 열방대학에서 함께 보냈던 몇몇 분들도 찾아 와 주었고, 광명에 사는 언니도 찾아왔다. 딸도 며칠 동안 나와 함께 제주도를 여행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제주도에서의 생활이 끝나고 다음 해인 2019년 2월에 다시 아들이 있는 강릉으로 갔다. 강릉에서 7월 중순까지 생활하다가 딸이 있는 포항으로 갔다. 포항에는 1개월 일주일 정도 잠깐 머물다가 다시 강릉으로 갈 생각이었다. 대학에 다니던 딸이 여름방학 동안 해외로 교육봉사를 하러 가 있는 동안 같은 대학 학생이 머물던 원룸에서 한 달 동안 지내며 딸이 소개해 준 상담센터에서 상담받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중 해외 봉사를 마치고 돌아온 딸이 며칠 동안 나와 함께 생활하면서 학교 기숙사에 다음 학기에 들어가기 싫다고 말했다. 이러한 계기로 포항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딸과 함께 원룸에서 생활했다. 양덕동 원룸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정말 너무도 좁은 원룸이었다. 작은 방에 침대 하나 놓여 있고 문을 열면 아주 작은 부엌이 현관과 연결되어 있었다. 딸이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불이 켜져 있을 때가 많았지만 나는 그 상황에서도 잠을 잘 잤다. 신기했다. 그곳 주변도 산이 많았고 또 공원도 있었다. 10분 정도 걸어가면 바다가 보였다. 바닷가로 산책길이 잘 만들어져 있었다. 원룸에서 6개월을 생활한 후에 2020년 2월 방 두 개와 거실과 부엌이 따로 있는 곳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여전히 바다와 산이 가까이에 있었고 산책할 수 있는 공원도 집 근처에 있어서 산책하기에 참 좋았다. 대학에 다니던 딸이 졸업하면서 2021년 12월까지 2년 반 동안의 포항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강릉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나는 포항에서 계속 지내기를 원했지만, 아들과 딸은 혼자 너무 멀리 떨어져 있게 되어 걱정된다고 강릉에서 지내기를 원했다. 지금 나는 강릉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주변에는 산이 많고 바다도 가깝고 넓은 하천이 흐른다. 산책로들도 아름답게 잘 가꾸어져 있다.


서울 한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살아왔기에 거주지를 옮겨 다닐 때마다 긴장과 두려움이 밀려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익숙하지 않은 주변 환경에 적응하려고 걷고 또 걸었다. 주거지 지역 주변을 매일 매일 걸어 다니며 탐색했다. 강릉, 제주도, 포항, 다시 강릉으로 옮겨 다니는 동안 주변을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과 걸을 수 있는 두 다리가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했다. 걸어갈 수 있는 곳,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산들과 바다. 그리고 계곡, 좋은 크고 작은 공원들을 샅샅이 탐색하며 찾아 다녔다. 새로운 장소를 찾아다닐 수 있는 용기와 도전의 힘을 조금씩 자연스럽게 키워 오게 되었다.


늘 똑같은 정착된 삶의 공간을 떠나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적응해 가는 힘이 강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 두려움과 긴장이 기대와 도전으로 변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