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거리두기를 시작하다.

by 수수

1985년 5월 15일 그 당시 스승의 날로 불리던 날, 제주도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다. 남편과 나는 대학생이었고, 서로 다른 대학교의 3학년 학생으로 수학여행을 왔다가 과 미팅에서 만나게 된 것이 결혼으로 이어졌다. 폐암 수술 후 헤어져 지내기 시작한 2018년 8월 30일까지 35년이 넘는 날들을 나와는 너무 다른 남편의 생활 습관과 충돌하며 살아왔다. 서로 다른 생활환경 속에서 성장해 온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정을 세워 간다는 것은 너무도 많은 충돌이 일어나는 것 같다. 나는 그랬다. 결혼하기 전에는 남편과 다른 가치관이 나의 삶에 그렇게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저 사랑해서 결혼하니 얼마나 알콩달콩 예쁜 가정을 꾸려갈지 기대하면서 시작한 결혼생활이었다.


밤늦게까지 들어오지 않는 남편을 큰아이를 등에 업고 동네 놀이터까지 나가서 기다리곤 했던 일이 생각난다. 어느 때는 새벽까지 남편을 애타게 기다렸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이사를 하거나 수리를 하는 일 등은 당연히 남편의 일이었고, 집안의 무엇을 결정하든지 남편의 생각과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만 했다. 시댁과 관련된 일은 더욱 그랬다. 주말마다 시댁을 방문하는 일이라든지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준비를 위해 시댁에 가야 하는 일 등에서 내 몸 상태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집안에 어떠한 가구를 놓을지 주방 상태가 어떠해야 하는지 등도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다. 자정이 되어도 세탁기 소리와 설거지 소리, 텔레비전 소리가 들려서 잠을 자는데 괴로움이 있어도 그냥 그렇게 매일 매일 지내야 했다.



이제 나는 독립했다. 나와 너무도 다른 가치관과 생활방식으로 살아가는 남편으로부터 독립했다. 싱크대에 물방울이 있어도 괜찮다. 세탁기는 밤늦게 돌리지 않는다. 방 안 가득 쌓아 논 물건 때문에 답답해하지 않아도 된다. 텔레비전 소리가 시끄럽다고 좀 줄여달라고 밤마다 애타게 부탁하지 않아도 된다. 부탁해도 소리는 그대로 들리기에 1시간여 동안 뒤척이다 잠들곤 했다. 빨래를 반듯하게 정리하지 않았다는 무시당하는 듯한 짜증 섞인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 담배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된다. 담배를 집 밖에서 피워 달라고 애원하지 않아도 된다. 담배를 피운 냄새에 두려움으로 긴장하며 찡그린 얼굴로 있지 않아도 된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마치 없는 듯이 지내는 그런 어색한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된다. 찌개가 아닌 내 건강에 필요한 야채와 닭가슴살로 요리할 수 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집안에서 충분한 잠을 평안히 잘 수 있다. 담배 냄새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 나를 무시하는 듯한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



늘 함께 있었던 남편으로부터의 독립은 처음에는 너무도 힘들었다. 늘 같은 곳에 있던 익숙함으로부터 분리되어 새로운 분위기의 장소에서 갑자기 혼자 생활한다는 것은 나에게 쉽게 않았다. 그래서 돌아가고도 싶은 마음이 2년여 동안 간간이 밀려오기도 했다. 남편을 버리고 혼자 좋아지려고 떨어져 나온 듯한 마음이 들어올 때는 그 마음을 밀어내느라 몹시도 힘들었다.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또 생활하게 되면 어떠한 삶이 펼쳐질지 뻔하게 상상이 되기에 도저히 다시 갈 수가 없었다. 예전의 수수는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건강을 챙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내 건강을 나쁘게 할만한 사람들은 멀리하기로 결심했다.


남편과의 우연한 별거가 시작된 것이다. 나에게는 암 수술이 기회가 되기도 했다. 남편의 간섭없이 새로운 인생을 도전할 기회가 된 것이다.


"그래도 남편이 혼자 밥을 잘 챙겨 먹을 수 있을까? 여자가 있어야지."


어느 분이 이렇게 말씀하실 때 난 화가 났다.


"집에 오면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살맛이 나니?"


남편이 이런 식으로 말할 때 나는 더욱 화가 났다.


'아, 정말 나를 지키기 위해 남편 곁으로 가지 말아야겠구나!'


사람들의 시선과 남편의 조바심과 투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강해져야 했다. 4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남편의 생활 습관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간섭받지 않게 되었다. 온전히 자유롭다.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에 눌리지 않고 당당하다. 이제 나는 나다. 내가 남편으로부터 독립을 한 것처럼 남편도 나로부터 독립하여 자유를 누리고 있을 것이다. 늘 나의 생활 습관이 못마땅하여 짜증 난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싱크대에 물방울도 남아있지 않고 밤늦게 세탁기를 돌려도 잠 못 잔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고, 텔레비전을 크게 틀어도 줄여달라고 귀찮게 하는 사람도 없으니 말이다.


남편과의 우연한 별거가 4년째인 요즘 친구들은 말한다.

"수수처럼 이렇게 남편과 떨어져 생활하는 시간도 정말 필요해. 나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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