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맞벌이 부부였다. 남편은 결혼을 한 후에도 시아버지의 생활비를 모두 지원했다. 다른 형제들도 있었지만 늘 혼자 책임을 지고 있었다. 가족과 외식을 할 때도, 나들이를 갈 때에도 어디든 늘 시아버지와 함께였다. 하지만 나의 친정 부모님께는 명절에도 제대로 용돈 조차 드리지 못했다. 생활비는 남편이 가지고 있었고 경제적인 의논은 없었다. 결혼 후 바로 남편이 융자를 얻어 달라고 하여 얻은 그 당시 500만원을 갚느라 월급에서 매월 제외되어 나갔고, 내 월급은 남편이 함께 관리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휴직을 했다. 휴직기간동안 남편이 주는 생활비가 너무도 적어서 먹을 것이 없었다는 일기를 쓸 정도였다. 아들은 문구점에 외상으로 물건을 사야만 하기도 했다. 나에게 돈이 없었고 남편이 나중에 갚아 주는 그런 방식이었다. 남편은 그랬다.
휴직이 끝난 후부터 내 월급은 내가 관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남편은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모든 비용에 눈을 감았다. 단지 남편은 아파트 관리비와 세금 그리고 매월 아파트 잔금을 내는 정도였다.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가정에 쓰는 비용은 모두 합하여도 1개월에 100만 원도 안 되었다. 하지만 아들딸에게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그 이상이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말을 하면 오히려 악을 쓰며 화를 내면서 자신은 힘들다고만 했다.
남편에게서 나오는 말은 늘 동일했다.
"돈이 어디 있니? 너 미쳤니? 정신이 있니?"
아들딸 학원비, 아들딸이 친구들과 함께 활동하는데 드는 문화비, 의복비, 식비, 도서비, 아들이 해외로 수학여행을 갈 때 드는 경비에 대하여 남편은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외면했다. 상의하려 하면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고 악한 말만 나오니 서서히 말도 꺼내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더 성장해 가면서 들어가는 경제적인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아들이 스케이트를 배울 때도, 고등학생이 되어 과외공부를 할 때도, 딸이 과외 공부를 할 때도 남편에게는 전혀 말할 수 없었다.
"너 미쳤니?, 돈이 썩어났구나."
라는 식의 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딸이 스위스에서 2년 동안 공부할 때도, 아들이 스위스에서 몇 개월 동안 공부할 때도 남편에게는 그 경비를 말할 수 없었다. 아들과 딸이 해외여행을 하게 되어도, 아들이 자동차를 사야 할 때도 그 경비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남편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남편은 그렇게 자기방어를 하면서 살아왔다. 외국대학원 준비를 하는 딸에게 최근 들어 남편이 용돈을 주고 있다. 지금 3개월째다. 그런데 한 달에 5만 원이다. 외국대학원에 지원하려면 경비가 들어간다. 그리고 준비하면서 학원도 다녀야 했고, 식비도 들고 의복비도 든다. 하지만 남편은 5만 원을 용돈으로 주고 큰소리한다.
2008년 뇌종양 수술을 하고 1년 휴직했을 때, 그때 처음으로 남편에게 생활비를 부탁했다. 남편은 생활비를 보태주었다. 꿈만 같았다. 하지만 그 기간만이었다. 남편은 흥국쌍용화재 보험회사 차장으로 있었다. 남들은 그랬다.
"거기서 차장이면 월급 엄청 많을 텐데, 어디 따로 돈을 모아 놓는 것 아니야?"
나는 늘 기대하며 살아왔다. 친정에 갈 때도, 아이들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언젠가는 무언가를 해주겠지 하면서 기대를 해왔다. 하지만 남편은 내가 폐암으로 폐 절제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도, 나에게 늘 짓던 부라린 눈빛을 한 채 200여만 원의 병원비를 두고 화를 냈다. 돈도 없는데 병원비를 내게 한다고 말할 때, 나의 가슴이 도려내지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나는 누구와 함께 살아왔는가!
그러고 나서 수술 후 처음으로 떨어져 포항에서 방을 얻을 때도, 다시 강릉에서 살기 위해 방을 구할 때도 남편은 어떻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지 한마디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나는 경제적인 기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 미움도 원망도 없다.
그 기대에서 독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