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에 25,600원
아가씨, 내가 다리도 아프고 힘이 들어서 그러는데
버스 탈 때 내 짐 좀 들어줘요.
예고에 없던 비가 내리는 덕분에 우산이 없는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 끝자락에 걸쳐진 전철역 입구 천정 밑에 여러 명이 모여있었다. 십 미터 거리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지만 정류장 천정 밑에도 비를 피해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버스를 발견하고 뛰어가면 혹시라도 늦을까 봐 분주하게 버스 시간을 체크하는 사람들 사이로 백발의 할머니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다가가 뭐라고 말을 걸었다. 들릴락 말릴락 하는 거리에서 있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사람들은 할머니의 말에 난색을 표하거나 당황하면서 거절하는 눈치이다.
몇 대의 버스들이 정류장 서고 가기를 반복하니 곧 비도 잦아들었고 버스 정류장 가림막 안에 자리들이 생겼다. 17번 버스가 도착하기 5분밖에 남지 않았음을 체크하고 정류정 부스로 뛰어 들어갔다. 많이 젖진 않았지만 빗방울 들에 젖은 가방과 옷을 털고 있을 때 아까 그 백발의 할머니가 내게 와서 속삭였다.
"아가씨, 내가 늙어서 다리도 아프고 무거워서 힘이 들어서 그런데 버스 탈 때 내 집 좀 들고 타줘요."
사람들이 당황해하거나 난색을 표했던 이유를 드디어 듣게 된 것이다. 할머니 손에는 할머니 핸드백 말고도 묵직한 짐꾸러미 한 개가 보였다. 단단히 지퍼까지 잠근 짙은 면가방을 할머니는 내게 내미셨다. 그때 기다리던 17번이 왔고 할머니도 그 버스를 마침 타려고 하시는 참이라 나는 얼떨결에 할머니 짐을 받아 들었다. 젊은 사람들이 다 타고 다리가 아픈 할머니는 절뚝거리는 다리로 아주 천천히 버스의 계단에 올랐다. 나는 할머니의 짐을 들고 뒤따라 탔다. 버스카드를 찍는데 할머니는 뭐가 급한지 얼른 자리를 잡고 내 손에 있는 짐꾸러미를 낚아채듯 가져가셨다. 처음에는 할머니가 미안해서 얼른 가져가신 것이라 생각했다.
"할머니, 전 괜찮으니 일단 카드를 핸드백에 넣으시고 앞 좌석 손잡이를 잡으세요."
"응.. 고마워. 아가씨."
아줌마가 된 지 오래인데 오랜만에 듣는 아가씨 소리가 영 나쁘지만은 않았다. 할머니가 좌석에 앉아서 다 정리하시고 안정이 되신 것 같아서 할머니 앞에 짐가방을 내려 드리고 나는 더 뒤쪽 좌석에 앉았다.
아침과 저녁 사이 한적한 시간이어서 그런지 버스 안은 한산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아. 이게 뭔지 알아요? 이게 간장게장이야. 이 집이 유명한 집인데 덥다고 상할까 봐 배송을 안 한데... 내가 몇십 년 단골인데 너무 먹고 싶어서 이 더위에 버스 타고 전철 타고 그 식당까지 갔다니까..."
한산한데 조금 떨어져 앉은 내가 들리게 할머니는 제법 큰소리로 그 짐가방 안에 뭐가 들었는지 말씀해 주셨다.
"아가씨, 무거웠죠? 날이 이렇게 덥고 그러니까 거기서 아이스 팩까지 챙겨준다고 해서 이렇게 더 무거우니 이 늙은이가 어떻게 들어?"
몇몇 승객들이 할머니와 내가 같이 온 사이는 아닌지 할머니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상체를 아예 돌려서 나를 보고 계속 말씀을 이어가셨다.
"이게 한 마리에 24,600원이야. 엄청 비싸지? 그래도 이 집 간장게장이 최고라니까?"
듣고 보니 그랬다. 간장게장 한 마리에 24,600원이라니 비쌌다. 그 비싼 간장게장을 몇 개를 샀는지 까지 이야기하기도 전에 할머니가 내려야 할 역이 다가오자 할머니는 내게 손짓했다.
"아가씨, 나 이번에 내려요. 내가 먼저 차에서 내려갈 테니까 내가 내려가면 버스 위에서 짐 좀 다시 내게 건네줘요. 아이고 큰일이네 비까지 오네. 정류장에서 앉았다가 집으로 걸어가야 하나보다. 이렇게 무거운 것을 어떻게 들고 간담..."
나는 다시 일어나서 할머니의 짐가방을 다시 들었다. 버스에 탈 때는 별생각 없이 얼떨결에 탔는데 짐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게 되니 더 무거운 것 같았다. 왠지 아이스팩이 족히 두 개는 들고 간장게장의 국물까지 가득 들어있을 것만 같은 무거였다. 돌덩이 같은 짐가방을 할머니가 내리신 정류장에서 할머니께 전달했다. 버스 운전사 아저씨도 내가 할머니 일행인 줄 알았는지 백미러로 왜 안 내리고 엉거주춤 내리는 문에 서있는지 눈치를 줬다. 그렇게 할머니는 내리고 나는 다시 내 자리에 앉았다.
간장게장을 자랑하시던 할머니가 내리시고 덜컹 거리는 버스에 앉았노라니 갑자기 돌아가신 친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는 우리 아빠가 초등학생이 되기 전에 할아버지와 사별하셔서 남매 셋을 혼자 키우셨다. 토큰 장사부터 생선솔질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원조 고등엄빠였던 부모님 대신 나를 어렸을 때 몇 년 키워주셨다.
사실 나는 할머니의 직업이 뭔지 잘 모를 정도로 어렸었다. 석양이 질 때쯤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오시면 할머니는 꼭 목욕을 하셨다. 목욕을 하셔도 코끝을 찌를 듯한 생선 비린내들은 쉽사리 가시지 않고 그냥 할머니 체체취의 일부인 것 마냥 알고 살았다. 할머니의 손은 늘 비린내로 가득하고 씻어도 냄새가 가시질 않아서 할머니가 나를 쓰담을 때면 만지지 말라고 할머니 냄새난다고 투정을 부렸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초등학생이 되어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자 할머니는 쉬시는 날에는 큰 아들과 맞 며느리가 있는 우리 집에 종종 오시곤 했다. 버스에서 만났던 백발의 할머니처럼 허리도 굽고 다리도 아픈데 양손 가득 음식을 해오셨다. 주로 김치나 오래 저장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었다. 그중에는 간장게장도 있었다.
4~5월이 봄이 되면 게들이 알이 통통하게 배었을 때는 큰 유리병 한가득 간장게장을 들고 오셨다. 플라스틱 통이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기에 술을 담그는 두껍고 큰 유리병에 간장게장을 담아 오 시곤 했다. 그때 내가 직접 들어보신 않았지만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할머니의 간장게장보다는 훨씬 무거웠을 것이다. 어린 마음에 할머니 몸에서 나는 냄새는 싫었지만 간장게장을 포함해서 할머니가 가져오시는 새우나 갈치등은 맛이 좋았다. 나중에 성인이 되고 나서야 할머니가 생선 머리를 따거나 새우 손질 등을 하는 작업장에서 일을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벌써 20년이 다되어간다. 하지만 간장게장을 보면 할머니가 키워주셨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 물론 그 추억 속에는 마냥 좋았던 기억보다는 외로웠던 기억이 많다. 하루종일 집에 있다가 할머니가 돌아오시면 집안은 온통 생선냄새로 진동했고 그 냄새가 싫어서 투덜거리던 철부지 내가 생각이 난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할머니만큼 나도 나이가 먹어서도 잊지 못할 음식이 있다면 우리 할머니가 해주셨던 간장게장일 것이다. 맛있는 간장게장 전문점도 있고 유명한 음식점도 많지만 할머니가 해주시던 그 맛은 다르다. 데코레이션도 없지만 투박하지만 그 재료의 본연의 맛을 품은 간장게장은 잊을 수 없다. 다시는 할머니가 해주는 간장게장을 먹을 수 없지만 간장게장만 보면 그때 그 시절로 나는 돌아간다. 하루 종일 생선들 손질하고 오는 줄 미리 알았다면 할머니가 내 얼굴을 이쁘다고 쓰다듬어 주었을 때 나는 가만히 있었을까? 실경질 부르고 마구 투정 부리던 내 모습이 선명하다.
아가씨도 아닌데 아가씨라고 불려 기분 좋 던 날 우연히 마주친 버스정류장 할머니의 요청이 나를 추억 속을 거닐게 했다. 할머니도, 할머니가 만든 게장도 이젠 이 세상에 없지만 여전히 미안함과 할머니 냄새의 그 아련함은 오랫동안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종종 간장게장을 보면 우리 할머니의 몸에 밴 생선 냄새만큼이나 진하게 할머니가 그리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