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솔매 May 29. 2024

외투라는 행복

니콜라이 고골 『외투』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만년 구등관이며 머리도 벗겨지고 성격도 소심하다. 아까끼는 그저 남이 쓴 문서를 자신의 정한 필체로 옮겨 쓰는 정서 작업을 맡은 관리이며 다른 일은 잘하지 못한다. 직장 동료들은 그를 따돌리는 것은 아니나 재미 삼아 그를 놀리고, 수위들조차 아까끼가 지나갈 때는 인사를 하지 않는다. 아까끼는 태생적으로 답답하고 온순한 인물로, 자신에 대한 주변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만을 열심히 한다.


 ‘겉저고리’라고 놀림을 받는 아까끼의 헌 외투가 더 이상 옷으로서 기능하지 못하게 되자 아까끼는 새 외투를 한 벌 장만하게 된다. 소심하고 가난한 아까끼는 당연히 처음엔 헌 외투를 수선해서 다시 입으려고 했지만, 실력 좋은 재봉사인 뻬드로비치조차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소생 불가능이란 판정을 내린다. 하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새 외투를 장만할 결심을 하게 된 것이지만, 아까끼는 점점 새 외투에 대한 기대와 애착을 느끼고 배를 곯으며 새 외투에 지불할 돈을 모은다. 그렇게 해서 품에 안게 된 새 외투는 아까끼에게 처음 맛보는 행복을 안겨준다.


 아까끼의 외투는 부자 관리들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특출난 건 아니지만, 따뜻하고 질도 좋은 완벽한 외투였다. 대단한 인물이 아닌 그저 ‘작은 인간’에 불과한 아까끼를 조금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여느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까끼도 자기 자신을 대접한 적이 없었는데 그 외투는 아까끼의 마음에 서린 그간의 설움을 눈 녹듯이 녹여주는 선물이었다. 진심은 아닐지 몰라도 직장 동료들은 그 구린 겉저고리를 버리고 번듯한 새 외투를 장만한 아까끼를 축하해주고, 아까끼는 난생처음으로 축하 파티에 초대받는다. 그러나 행복은 너무 짧았다! 아까끼는 축하 파티에서 돌아오는 길에 연인처럼 사랑하고 자식처럼 아낀 외투를 강도들에게 너무도 허무하게 도둑맞는다.


 아까끼는 절망에 빠진다. 그 절망의 깊이는 한 걸음 물러나 있는 독자들이 차마 다 헤아릴 수 없는 깊이였을 것이다. 아무튼 아까끼는 그를 동정한 동료의 조언에 따라, 자신의 잃어버린 외투를 되찾아줄 힘이 있는 고관을 찾아가지만, 자신이 얼마나 위엄 있는 사람인지 사람들에게 과시하길 좋아하는 고관은 가엾은 아까끼를 몇 마디로 압도하고, 위축된 아까끼의 모습에 흡족함을 느낀다. 고관은 함께 있는 친우에게 자신의 위엄과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더 위압적으로 아까끼를 대한 것인데, 아까끼는 그 때문에 순간적으로 정신적 한계에 몰려 다리에 힘이 풀린다. 아까끼는 세상에 홀로 선 듯한 비참함과 고독 속에서 휘청거리다가 결국 열병에 걸려서 죽고 만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마음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을 텐데,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작가는 여기서 이야기를 끝맺지 않는다. 아까끼는 유령이 되어, 늦은 밤 마차를 타고 가는 고관의 외투를 빼앗는다. 고관은 유령이 된 아까끼를 보고 혼비백산한다. 짧은 리뷰 속에서 이 고관이라는 인물은 평면적인 악인으로 내비칠 수 있지만, 그도 어떤 상황에서는 사람에게 인정과 동정심을 베풀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순간의 과시 욕구와 속물적 근성이 그를 악마로 변하게 했고, 근본적으로는 그가 있는 자리, 고관이라는 권력직이 그의 내면을 더럽힌 것이다. 고관은 아까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렸으며 도무지 밤에 편히 잠을 잘 수 없었다. 고관은 유령이 된 아까끼를 만나고 그에게 외투를 빼앗김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죄책감을 덜 수 있었을까?


 불행한 아까끼가 자신의 몸에 맞는 외투, 비록 자신의 외투는 아니지만 복수로 빼앗은 고관의 외투를 몸에 걸치고 홀연히 저승으로 떠났는지, 아니면 아직도 풀지 못한 한이 남아 어디선가 밤의 길거리를 배회하는지 분명히 알 수는 없다. 아까끼 유령은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다. 남들 눈에는 사소하게 보일지라도 자신의 삶을 기댈 수 있는, 하나의 절대적 희망이 아까끼에게는 외투였던 것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아까끼가 고작 외투 하나 잃어버려서 죽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 모두에겐 자신만의 외투가 있고 그것이 없어지는 날엔 누구나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아까끼가 젊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면 많은 독자는 그를 사랑하며 그리워했을 것이다. 나도 그랬을 것 같다. 그러나 아까끼는 젊고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볼품없는 ‘작은 인간’이기에,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평소에 잠들어 있던 내면의 천사가 깨어나는 독자들에게도 특별한 감정을 불러내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가 어떤 면에서는 반드시 아까끼처럼 ‘작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은 모르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의 선량하지만 동시에 결함이 많은 ‘인간’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주었던 작품이기에 여기에 짧은 리뷰를 남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