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수필
문득 내 집 한번은 지어본 건축가로
살고 싶어서 집을 지었고 5년째 살고 있다.
학교 졸업하고 설계 실무 시작한지 대략 17년쯤 되던 시기였으니
건축가로 살수 있는 인생의 절반이 넘어갈 무렵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지어진 집이 보통의 일반인들은 엄두도 못낼
비싼 하이 퀄리티 집이거나 호불호가 갈릴 특별한
디자인의 집이거나, 아니면 그런 집을 흉내낸 어설픈 집은
아니었길 바랬는데 막상 집짓기를 시작하자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슴을 알았다. 돈이 없었으므로..
일단 돈이 많지 않으니 자연스레 돈 많이 안들어가는
경제적 설계, 가성비있는 건축에 대해 고민 해야 했는데..
어차피 나 혼자 집이 아니었으니 내 집임에도 식구들 의견 하나 하나 반영하면서
까다로운 건축주 여럿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쉽지 않은 설계가 되었다.
그 덕에 건축주의 입장을 알게 된건 값진 경험이었고.
7년 살던 아파트에서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 오던 날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 빚던 아랫집 할머니를 짐 나르던 엘리베이터에서 만났을때 나도 모르게
' 안녕히 계세요. 저희 이제 떠납니다 단독주택으로요. ' 큰 소리로 활찍 웃으며 인사했던 기억이 난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단독을 짓자 마음 먹었던 이유 중 하나도 층간소음갈등이었다.
부모님 모시고 아이둘과 사는 대가족이다 보니..
아무리 조심하고 바닥매트 깔고, 뛰지말라는 말을 달고 살아도
민감한 분들이라면 불편할 소음이 있긴 했을 것이다.
층간 두께가 넉넉하거나 흡음재 시공이 안되어있는한
어느 아파트나 마찬가지 상황일테니.
그런데 문제는 아랫층 식구들도 대가족이었고
집에서 프리랜서로 밤낮 바꿔 일하는 그 집 아들 덕분에
새벽까지 티비 소리, 음악 소리가 들리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아울러 스물스물 올라오는 담배 연기도.
그럼에도 본인들은 그런적 없다며 증거를 대라니 별 수 없었고
우리집 애들이 자주 뛰어 미안하다며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
슬슬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며 지쳐가고 있었다.
그땐 층간소음으로 이웃간 큰 사건이 난 뉴스를 봐도 그게
남의 일처럼 안 느껴질 정도였으니 다소 심각한 상황이었지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즈음, 평소 마음에 들어 아주 가끔
둘러보던 같은 동네 조용한 타운하우스 지역을 산책하다
적당한 주택용 필지를 만나게 된건 뜻밖에 행운이었던것 같다.
뭔가 안좋은 방향으로 흘러 가던 불행을 멈추고
새로운 미래를 시작하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단독으로 새 집 짓고 이사 온 이후
식구들끼리 입에 달고 살던 뛰지마~ 조용조용~ 은 사라졌고
티비 틀때마다 심지어 목욕 할때마다 티비소리, 물소리 신경쓰느라
노이로제 수준이던 식구들에게도 마음의 평화가 왔다.
밤 늦게 새벽까지 티비를 크게 틀던
음악을 크게 듣던 노래 부르며 목욕을 하던
남의 집 식구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삶으로의 대전환..
그때 산책하다가 이 땅을 못 봤다면
지금 우리 식구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지긋지긋한 층간소음에서는 과연 해방이 되었을지
아랫집 그분들과 더 안좋은 일은 없었을지
막막한 상상을 해보곤 한다.
아울러 아랫집은 여전히 그 집에서 잘 살고 계시는지
우리가 떠나고 조용한 이웃을 만나 삶이 조금은 편해지셨는지도
아주 가끔... 궁금하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