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열두 마리가 소풍을 갑니다. 냇물을 건너자 대장 돼지가 숫자를 셉니다. 그런데 돼지가 열한 마리뿐입니다. 다시 세어도 열한 마리입니다.
“대장을 안 세었으니까 그렇지.”
“아휴, 멍청이. 너를 빼놓고 세었잖아.”
조금 똑똑한 돼지와 아주 똑똑한 돼지가 세어도 열한 마리입니다. 서로 멍청하다고 비웃으며 나머지 돼지들도 돌아가며 세어봅니다. 그래도 돼지는 열한 마리뿐입니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돼지들의 소풍은 거기에서 끝이 납니다. 수영장 체험학습을 갈 때면 늘 떠오르는 이솝 우화 ‘돼지들의 소풍’입니다.
3학년들이 수영장 체험학습을 하는 날입니다. 한바탕 소란을 피우며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이 탈의실과 샤워장에서 불 구덩이를 탈출하듯 물속으로 허겁지겁 뛰어듭니다. 강사 선생님의 이론 강의가 시작됩니다. 선생님의 말소리 중 ‘말’은 안 들리고 ‘소리’만 들립니다. 엄청나게 큰 수영장의 물소리는 사람의 말은 다 집어삼키고 호루라기 소리나 아이들의 외침 등의 소리만 남겨 놓습니다. 강사 선생님은 만국의 공통어인 손짓 발짓 등으로 강의를 끝내고 아이들을 실전에 투입합니다. 신이 나서 난리가 납니다.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습니다. 나도 실전에 투입된 전사처럼 나만의 작전에 돌입합니다. 물속에 들어가지 않고 아이들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에 서서 본격적인 임무를 수행합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 하나, 열 둘..........스물 셋.”
물이 제일 얕은 풀장에 우리 반 스물세 명이 전부 다 모였습니다. 물이 좀 더 깊은 풀장으로 이동합니다. 아이들이 다 나오자 수영장 밑바닥까지 한 번 쭉 훑어보고 나도 무리를 따라 이동합니다.
선생님의 신호에 따라 조별로 출발하여 물에 뜨는 연습을 합니다. 조별 연습을 한 후에는 개별 연습을 하는데 이때에는 수를 세기가 어렵습니다. 스물세 명의 아이들이 계속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자칫하다가는 수를 중복으로 셀 수도 있습니다. 나는 나만의 방법을 고안해 냅니다.
“하나둘셋넷다섯, 하나둘셋넷다섯, 하나둘셋넷다섯, 하나둘셋넷다섯, 하나 둘.”
스물둘입니다. 하나가 모자랍니다. 순간 아찔해집니다. 다시 수를 세 보아도 스물둘입니다. 그때 번개처럼 시영이가 떠오릅니다.
‘아 맞다, 시영이’
저쪽 한 켠에 앉아 물속에 발을 담그고 물장구를 치고 있는 시영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어르고 달랬지만 물을 너무나 무서워해서 물이 좀 더 깊은 두 번째 풀장부터는 들어가지 못한 시영이 입니다.
“하나둘셋넷다섯, 하나둘셋넷다섯, 하나둘셋넷다섯, 하나둘셋넷다섯, 하나 둘, 시영이.”
완벽한 스물 세 명입니다. 오늘도 나는 영락없는 돼지 대장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수를 세다가 세 시간이 다 지나가버렸습니다.
체험학습 중에 제일 신경 쓰이고 어려운 것이 수영장 체험학습입니다. 초긴장 상태로 물 밖과 물속까지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체험학습이 끝나고 나면 몸이 천근만근 후줄근해집니다. 그러나 교사가 힘든 만큼 아이들은 행복하다는 진리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아! 오늘도 참 보람찬 날이었어'라고 주문을 걸어봅니다. 오늘 밤엔 꿈속에서도 하나 둘 셋 하고 숫자 놀이 하는 꿈을 꿀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