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왜 내 시험지 보는데?”
“내가 언제?”
“조금 전에 내 시험지 훔쳐봤잖아.”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2교시 수학 진단평가 시간에 영환이와 은찬이의 말다툼 소리가 들렸다.
“쉿! 조용히 해. 지금 시험 시간이잖아.”
내가 다가가서 화난 표정으로 주의를 주었다.
“선생님 영환이가 제 시험지를 컨닝했어요.”
영환이와 은찬이의 얼굴이 불그락 푸르락 했다.
“쉿!”
진단평가를 치르는 날이다. 3학년의 학습능력을 진단하고 진급한 4학년에서 참고하기 위해 국어와 수학 두 과목 시험을 치르는 것이다. 시험지를 받자마자 아이들은 시험지를 지키기 위하여 책상 위에 벽을 쌓았다. 그냥 공책이나 책받침 등으로 시험지를 가리고 문제를 푸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가방을 책상 가운데에 세워 경계를 만들었다. 수학 교과서를 제외한 나머지 교과서 세 권을 교묘하게 세워서 삼면의 벽을 만드는 아이들도 있었다. 시험 칠 때 심하게 경계를 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교과 성적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공부를 꽤 잘하는 영환이와 공부를 좀 못하는 은찬이는 책가방으로 책상의 경계를 만들었다.
30분 동안 쉴 수 있는 중간놀이 시간에 아이들은 운동장에 놀러 나갔다. 영환이와 은찬이를 칠판 앞으로 불렀다. 은찬이는 영환이가 자기의 시험지를 컨닝한다고 했고 영환이는 은찬이를 째려보면서 가방이 중간에 있어 시험지의 답을 본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내가 보기에도 은찬이가 억지를 부리는 것 같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쉬는 시간이 지날 때까지 시시비비는 가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터질 것이 터졌다.
“야 너 솔직히 지금까지 수학 시험 40점 이상 맞은 적 있어?”
영환이가 은찬이를 향해 매몰차게 소리친다. 두 사람은 1학년 때부터 계속 같은 반이었기 때문에 은찬이의 약점을 폭로함으로써 강하게 펀치를 날린 것이다. 은찬이의 입꼬리가 내려가며 숨이 거칠어졌다.
“너 나보다 달리기 잘할 수 있어?”
은찬이도 만만치 않게 대꾸한다.
영환이는 퍼즐 맞추기 등 머리 쓰는 일을 무기로 삼아 공격을 했고 은찬이는 운동 능력을 무기로 삼아 공격을 해댔다. 은찬이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인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자신의 자랑이 될 만한 것은 다 나온다. 시험지 이야기에서 이제는 서로 무엇을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자랑질로 변질되었다. 예전에 코미디 프로에서 한창 인기를 끌었던 ‘사돈 남 말하고 있네’라는 것이 떠올랐다.
중간놀이 시간에 놀러 나갔던 아이들이 하나 둘 교실에 들어오며 한 마디씩 한다.
“우와 너희들 지금까지 이러고 있어?”
“무슨 싸움을 이렇게 오래 해?”
‘사돈 남 말하기’는 계속된다. 그런데 은찬이가 점점 유리해졌다. 영환이는 공부는 잘하는데 입담은 좀 모자라는 편이 원인인 것 같았다. 친구들의 응원을 받은 은찬이는 아주 신이 났다.
“선생님 우리도 저 게임시켜주세요.”
옆에서 박수까지 쳐가며 재미있게 구경하던 재호가 한 마디 한다.
“게임? 저거 싸움 아니었어?”
“선생님 저거 재미있네요. 저도 시켜 주세요.”
너도 나도 하고 싶다고 난리다. 이러는 사이 영환이와 은찬이의 밑천도 바닥이 났고 둘은 자기 자리로 들어가서 털썩 주저앉는다.
“자 그럼, 여자 대 남자 대결하면 어떨까?”
“좋아요.”
셋째 시간은 사돈 남 말하기 게임으로 떠들썩하게 지나간다. 얼마나 시끌벅적했는지 옆 반 선생님의 얼굴이 뒤쪽 출입문 쪽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점심시간에 영환이가 은찬이에게 새우 튀김 하나를 양보하는 모습이 내 눈에 포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