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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과학자 Dec 29. 2022

[일상] 대학원생이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

화학 이론만 알았던 컴맹의 AI, 로봇 접선 스토리, 그리고 깨달음

“소년이 잘못하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잘못하면 대학원에 간다."

한국의 대학원생은 언제나 바쁩니다. 교수님 눈치보랴, 행정 처리하랴, 연구하랴, 후배들 챙기랴...대학원을 진학하면 멀티를 못하는 사람들도 멀티를 할 수 있게끔 되는 것 같네요 ㅎㅎ... 그래서 제가 제목을 대학원생이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로 적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학원생은 엄청 바쁜데, 브런치로 글을 쓸 시간이 있느냐라고 물어볼 것 같은 대학원생의 불쌍한 자격지심이랄까요... 저도 처음엔 주변을 돌아보기는 커녕 제 자신도 돌아보지 못할 정도로 바쁘고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바쁜 대학원생이 왜 브런치를 시작했을까요?




저는 효율적인 활동을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떤 곳을 가더라도 항상 편하고 빠르게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며, 밥을 먹더라도 어떤 음식을 먹어야 배도 부르고 가성비 있게 음식값을 지출할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형적인 공대생이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향을 아무것도 모르고 찾아보려 하지도 않았던, 그저 술만 먹고 학점 쌓기 급급했던 대학교 학부 시절, 화학을 그저 이론적으로만 배웠지 해당 이론들이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고민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배웠던 이론적인 화학 배경지식들을 어떻게 활용을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저는 제가 알고 있던 지식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른 분야와 융합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존에 내가 배우던 화학과 좀 더 다른 분야를 공부해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바로 코딩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코딩을 생각하면 검은 화면에 해커들이 막 여러 명령어들을 화려하게 치는 것을 상상합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코딩을 시작하기에 너무 두려웠습니다. 컴퓨터공학과가 아닌 이상, 검은 화면에서 명령어를 입력하면서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으니깐요. 그렇기에 제가 코딩을 시작한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난 우연이었습니다. 마침 이 무렵에 댄스동아리에 있던 컴퓨터공학과 친구 한 명이 프로그래밍 언어 중 당시 가장 뜨거운 감자였던 Python을 과동기에게 과외하는 것을 보고 그저 신기하게만 보다가, 문뜩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학은 실험을 하면 짧으면 3-4시간, 길면 하루 이틀도 걸리기 때문에 결과물을 보기에는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코딩은 명령어들을 구글에서 검색, 내가 쓸 부분의 스크립트만 복사 및 수정해서 실행하면, 바로 1초도 안돼서 결과물이 바로 보였거든요. 지금까지 화학의 이론 공부를 하던 화학쟁이에게는 코딩이라는 것은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고, 그저 제가 만든 완성물의 결과를 그 자리에서 바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저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하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무작정 youtube를 보면서 독학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원하는 결과물이 있을 때, 혼자서 코딩을 해서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로 알고리즘 공부 및 컴퓨터공학과 수업, Python 뿐만 아니라, C, C++, Java 같은 언어를 공부하고, 자발적으로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습니다. 코딩을 하면서 "학부에서 배웠던 지식과 지금 재밌게 배우고 있는 코딩을 접목해서 조금 더 공부해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원래부터 지적탐구심이 많던 저는 대학원을 진학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KIST 계산과학연구센터를 찾게 되었고, 현재 대학교와 연구소 대학원생 과정으로 학생연구원 신분으로 입학을 하였습니다. 




제가 입학하던 2020년 3월 시기에, 영국 glasgow, 캐나다 toronto, 미국 MIT에서 AI와 로봇을 활용하여 실제로 연구자의 부재에도 실험을 진행하는 스마트연구실 구축 (AI 스마트연구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어떤 연구를 진행할지 저의 PI (Principal Investigator) 박사님과 논의하다 보니, AI와 로봇을 결합한 실험실에 관련된 기술이 소재개발 기술이 부족한 우리나라에 필수적으로 연구되어야 할 기술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 글에서 AI 스마트연구실에 대해 전반적인 설명을 할 때 다룰 예정입니다). 따라서 2020년부터 해당 연구를 시작하였고, 현재까지 AI, 로봇을 활용하여 신소재 개발을 하는 AI-로봇 실험실을 계속해서 연구 중입니다. 


이렇게 과거부터 현재까지 돌이켜보면서 많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많은 깨달음이 필요한 나이지만, 그래도 지금 나이에서 생각했던 것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그중, 2가지만 정리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먼저, 뿌옇게만 보였던 무섭고 막연한 생각들을 단순한 문제로 변환하고, 이를 매일 작은 행동들을 통해 구체화시키며 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학부 시절, 저는 미래에 대해 막연하게만 생각하는 일반 학생이었지만, 학부 과정을 충실하게 따르면 언젠가는 내가 화학을 잘 알고 성장해 있겠지?라고 그저 단순하게 생각했었습니다. 막연한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큰 문제를 여러 가지 작은 문제로 단순하게 정의하면서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실제로 학점도 제가 만족할 정도로 받았고 기초 지식도 탄탄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코딩을 시작할 때도 새로운 분야를 공부한다는 것이 무서웠지만 도전했고, 그 당시 큰 목표를 정하기보다는 하루에 알고리즘 문제 몇 개 풀어보자! 혹은 프로젝트에서 이 부분을 언제까지 끝내보자! 하는 단기 목표를 잡으면서 코딩을 했었습니다. 때론 결과적으로 코딩하면서 디버깅하느라 하루를 날린 적도 있었고, "하루동안 뭐 했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 비생산적이라고 생각이 들었던 과정들이 쌓여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단단한 발판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두 번째로, 기회가 찾아오기 전에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한다는 것입니다. 학부 시절, 저는 그 당시에 정말 충실하게 화학과 수업을 듣고 공부하였습니다. 하지만, 학부와 연관성이 떨어지는 AI, 로봇을 활용하는 AI-로봇 실험실 연구를 하니, AI, 로봇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한 저에게는 후회가 됬었고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전과라도 할 걸...", "화학과 괜히 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구축한 시스템으로 실제 소재를 설계할 때, 학부 시절 배웠던 화학 배경지식들을 아직까지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남들은 AI, 로봇에 대해서 잘 알지, 소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양날의 검을 준비하고 있었던 듯 합니다. 또한 4학년 막바지에 컴공과 친구와 함께 프로젝트를 실행하며, 기한을 맞추기 위해 학업과 병행하면서 밤샘코딩을 밥먹듯이 했었습니다. 그리고 수업도 제가 듣고 싶었던 수업이 마감되어, 컴퓨터네트워크라는 정말 컴퓨터공학과 스러운(?) 수업을 의지와 상관없이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공부하면서 정말 많은 후회를 했지만, 이 때 배웠던 컴퓨터 네트워크 수업 배경지식으로 시스템을 수월하게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다들 기회는 정말 우연적으로 찾아온다고 다들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우연적으로 찾아오는 기회를 필연적으로 바꾸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우연히 찾아오는 여러 가지 기회를 필연적으로 바꾸기 위해 지금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렇게 돌이켜보니, 지금 생각해도 정말 역동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화학 밖에 모르는 컴맹이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면서 컴퓨터를 배우고 활용하기 시작하였고, 대학원을 진학해서 AI와 로봇을 활용해서 연구자 없이도 스스로 소재를 개발하는 시스템을 연구하며 많이 공부하였고, 앞으로도 많이 배울 것이지만 그 사이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물론, 저랑 비슷한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들과 토론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연구적인 부분을 많이 배웁니다. 하지만, 저는 항상 비슷한 연구를 하고 있는 연구계 사람들이 아닌, "일반" 사람들과 대화에 매번 갈증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전 알쓸신잡, 알쓸인잡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하나의 공간에서 여러 가지 주제를 두고 펼치는 토론을 정말 좋아합니다. (술자리에서 대응하기 정말 힘든 사람이기는 하죠...ㅎㅎ). 그래서 제가 대학원을 다니면서 배웠던 지식들을 소개하고, 그 사이에서 느꼈던 여러가지 인문학적이고 과학적인 가치들을 일반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이것이 제가 바로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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