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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영 Oct 10. 2022

아이들의 세상은

현덕 동화집 『너하고 안 놀아』를 읽고

『너하고 안 놀아』 는 꼬마 친구들이 한 동네에서 매일 같이 놀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을 수수하게 그려낸 동화집이다. 동생을 돌보며 멀리 행상 나가신 엄마를 기다리는 영이, 삵 바느질 하는 엄마와 가난하게 사는 노마, 부유한 가정에서 유복하게 자라기에 이따금씩 친구들에게 으스대는 기동이, 키 크는 게 소원인 똘똘이까지, 제각각의 환경에서 서로 다른 소망을 가진 아이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은 어쩌면 우리들이 바라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동화가 발표되었던 때가 1930년대 말, 일제 강점기의 폭압이 절정에 치달았던 시기였다. 칼날 같이 서슬 퍼렇던 그 시기에 오히려 담담하게 아이들의 순수한 세계를 그려낼 수 있었던 작가의 정서가 숭고하게 느껴진다. 치열함의 근본을 이루는 것은 순수성일까, 바깥으로 힘들수록 안으로 응고되는 힘이 더 단단해지는 것일까. 폭압적인 시대에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안간힘이 필요했을까를 어렴풋이 짐작 해 볼 뿐이다.  


축대 앞 응달에 쪼그리고 앉아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각자의 소망을 떠올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어서 빨리 밤이 익었으면...’하고 바라는 영이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햇빛과 바람에 시간이 보태어져야 비로소 맛있는 밤을 먹을 수 있다. 그렇기에 밤 한 알 한 알은 더욱 소중하고, 소중한 시간동안 기다릴 수 있는 마음들은 따뜻하다. 지금은 밤이 먹고 싶으면 마트로 달려가면 그만이다. 고기를 잡으러 멀리 강까지 걸어가는 동안 아이들이 꿈꾸며 걷는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고기가 얼마나 있을까, 무얼 잡을까, 잡아서 뭘 해야지 라고 상상하며 함께 걸어가는 시간마저 그들에겐 소중하다. 소중하기에 아름답다. 지금은 차를 타고 잠시만 달리면 금세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 밤을 먹으려면 기다림을 감내해야 하고 고기를 잡으려면 멀리 가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기다림 자체가 낯설어진 우리들이 잃어가고 있는 게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 기다릴 수 있는 마음과 기다리는 시간의 소중함을 아는 것, 순리대로 사는 삶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리라. 성취하고 쟁취하는 능력이 중요하기에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대비된다. 욕망이 순응을 덮어버릴 때 인간은 불행해진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기동이와 강아지를 사랑하는 노마의 모습에서 이 책을 관통하는 작가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기동이도 처음에 선물 받았을 때는 강아지를 매우 애지중지했지만 자전거가 생기자 금방 싫증내 버린다. 기동이에게 강아지는 그저 무수한 장난감 중 하나일 뿐이다. 노마에게 강아지는 친구이다. 처음 강아지와 함께 놀아본 후 강아지를 갖고 싶어 종이로도 만들고 헝겊으로도 만들어 보고 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기동이의 관심이 시들해진 후에야 강아지는 노마의 차지가 될 수 있었지만, 노마에게 그런 것은 아무런 상관없다. 영문도 모른 채 하루아침에 주인에게서 버림받은 강아지가 노마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친구가 된다.


아이들이 사는 동네는 곧 하나의 세상이다. 그 속에는 자연이 있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엄마를 기다리는 영이를 진심으로 동정하는 점순이와 숙정이가 있고, 나물 캐러 가는 영이를 지켜주는 노마와 똘똘이의 우정이 있다. 나물을 캘 수 있는 산이 있고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강도 있다. 아이들과 함께 껑충거리는 동물 친구도 있다. 요즘 아이들의 세상에는 무엇이 있을까. 가족도 친구도 당연히 있지만 이 책 속의 꼬마 주인공들처럼 사는 공간속에서 밀착감을 갖긴 어렵다. 네트웍으로 접할 수 있는 시공간은 더 넓어졌지만 편안하게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은 오히려 부족하다. 그러기에 어쩌면 우리 아이들이 영상속의 세상에서 즐거움과 함께 안도감을 함께 느끼는 건 아닐까?  



 2022.6.29  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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