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이: 내담자가 과거 경험에서 중요한 인물에게 느꼈던 감정이나 태도를 상담자에게 투사하는 현상
* 역전이: 상담자가 내담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내담자에게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을 투사하는 현상.
- 사랑,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대하여 1-
지영이는 학교생활이 너무 힘듭니다.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 사이가 틀어지면서 그 친구를 마주치게 될까 봐 두렵고, 교실에 들어가려고 하면 숨이 가쁘고 심장이 두근, 곧 쓰러질 것만 같아 아침마다 학교에 오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영이를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지영이의 남자친구였습니다.
첫 상담 때 힘든 학교생활을 토로하며 그래도 결석은 하지 않는다는 이 뚝심 있는 내담자가 가진 내면의 힘을 칭찬하며 “그럴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거니?”라고 물었는데, 곧바로 “남자 친구이요.”라고 하는 것이지요. 부모님이 맞벌이로 바쁘셔서 혼자 외롭게 자란 지영이에게 남친은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 친구가 네게 큰 힘이 되는구나. 멋진데! 이쁘게 만나렴!” 응원해 주며 훈훈하게 상담을 마무리했지요.
웬걸. 다음 주에 쪼르르 달려와서 이번엔 진짜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며 또 호소를 하는 게 아닙니까. “그렇게 등불이 되어주던 남친은 어쩌고?” 전날 헤어졌다는 겁니다. “얼마나 사귄 거니?” “2주 정도”라고...
‘흠. 그 2주 동안 그렇게나 열정적으로 좋아했는데 그 정도로 쉽게 헤어질 사이라니, 그런 게 사랑인 거냐?!’라며 마음속으로 생각했지만, 표현은 못하고 어색한 미소만 지어봅니다. 남자 하나에 목숨을 걸고, 자신의 인생이 폭망 해버린 것처럼 좌절하는 어리석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애 같으니. 심지어 한심하게까지 보였지요.
- 사랑,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대하여 2-
태균이가 매우 낙심한 표정으로 찾아와 갑자기 상담을 요청합니다.
보기에는 피죽 한 그릇 못 먹은 사람처럼 기운도 없고 상태가 메롱인 것 같아 제일 빠른 시간으로 상담을 잡고 사건의 전말을 들어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를 보내고, 공감적 자세로 어깨가 뻐근해진다 싶을 때, 마침 반가운 종소리가 울립니다. 순간 뜬금없이, 다른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며 어떻게 다가갈지 그 친구가 자신을 받아줄지 고민이라는 겁니다. 엥? 이 대목에서는 눈을 껌뻑이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출 수가 없네요. 좀 전에 그렇게 슬픈 표정으로 이별의 고통을 호소하던 너는 어디에.
‘이래도 되는 거니? 모름지기 전 애인에 대한 예의라는 것이 있지. 적어도 6개월 정도는 지나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사람에 대한 도리이고 매너라는 것이다. 이눔아!’라고 하고 싶은데... 자애로운 상담쌤은 직접적으로 표현은 못하고 갑갑한 마음만 풀풀 새어 역시 애매한 미소만 지어봅니다.
“좀 전에 그렇게 슬퍼하다가 다시 새로운 사랑을 꿈꾸고 있다니 놀랍다야, 다음 시간에 다시 이야기 나눠보자.”하고 입을 닫습니다. 네, 보신대로 저는 위선이 가득한 상담쌤 맞습니다. 하... 이 정도면 상담자도 극한직업에 속하는 거 아닐까요?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지영이와 태균이에게 이렇게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얘들아, 제발 애인 따위에 그렇게 목숨 걸지 말어~!!. 만나보면 다 거기서 거기야.
세상은 넓고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지금은 사랑 때문에 괴롭고 죽을 거 같아도 그런 거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야.
뭐 하러 그런데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냐. 참말로 답답하다!!!”
- 사랑,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대하여 3 -
저는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다)입니다. 주로 짝사랑을 많이 했는데, 중학교 때는 눈이 작고 어깨는 넓은 노래를 잘하던 반장을 좋아했었고(어느 날 단짝 친구가 이 친구를 좋아한다고 해서 아무도 모르게 제가 양보를 했지만요), 고등학교 때는 역사 선생님(선생님을 좋아했지만 역사는 지지리도 못했던 불가사의 1인/수업시간에 졸기도 많이 졸았습니다)을 흠모했었지요.
대학교 1학년 때는 복학생 선배를 좋아했는데 어느 행사 뒤풀이에서 주사를 부리던 그를 보고 정나미가 떨어져 저 혼자 마음을 접기도 했었고, 한 해 위 ROTC 선배와는 베프처럼 잘 지내는 척(역시나 짝사랑)만 하다가 그가 다른 여선배와 CC가 되며 결국 또 혼자 마음을 접었지요. 이후에도 짝사랑은 to be continued.
친구들이 크리스마스이브 때 데이트를 하러 나가면 부럽기도 하고, 나는 언제 연애를 해보나, 나는 어디가 모자란 건가 자괴감과 외로움에 몸서리치기도 했었네요. 그럼에도 인위적인 만남은 싫어해서 소개팅 같은 만남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저를 좋아하지 않고, 아주 가끔 저를 좋다고 하는 사람들은 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사랑에 목매달았던 과거의 저를 돌아보면 자존심도 없었나 싶고, 한심하기가 그지없이 아주 지대로 못마땅합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지영이나 태균이처럼 외로움을 못 견디고 끊임없이 사랑할 대상을 찾고, 또 상처받았다고 여기며 슬퍼했습니다. 갑자기 짜증이 북받쳐 오르는군요. 제게는 아이들의 사랑을 폄하할 자격이 없네요. 누구든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20대 중반에 이 남자 없는 세상은 견딜 수 없다는 콩깍지를 낀 채 28세에 결혼한 이후, ‘나는 왜 결혼했을까?’, ‘나는 왜 이 남자를 만나고 사랑하게 되었을까?’ 백만 번도 넘게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습니다. 오죽하면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자문화기술지(질적 연구방법 중의 하나로 자서전적인 성격을 띠는 문화기술지를 일컬음)로 석사 학위 논문을 마쳤다니, 웃프다 못해 제게는 결혼생활이 일생일대의 고민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결혼에 대한 후회. 많이 했었지요(잔소리 대마왕이라는 별칭을 보유한, 좋은 말로 조선시대 이후 최고의 근검절약하는 한 남자와 살고 있습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뿌리내리고 살아온 제게 결혼은 무덤이거나 구속이 맞습니다(미친 짓까지는 아님/ 수많은 사람을 병리적으로 몰아가면 곤란하지요). 특히나 여자에게는 여전히 이득 없이 손해만 넘친다고 생각해 온 지난 24년여의 결혼 생활에 대한 후회, 분노, 자책 등이 의식과 무의식에 깊이 깔려있어 제 마음이 내담자들에게 투사가 된 것이 역전이의 경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랑에 목매달고 사랑 없이는 못 살 것 같았던 상담자가 이와 유사한 반응을 보이는 내담자에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제발 사랑일랑 그만 개나 줘버리라고 뜯어말리고 싶었으니.
저처럼 남자에 매어 "나"를 떠나살지 말고, 드넓은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가라고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상담장면에서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갖는 전이는 매우 중요한 대목이고 이를 잘 활용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야 내담자가 자신의 경험과 대상 속에서 갇혀 있던 범주에서 벗어나 스스로 균형 있는 시각을 갖게 되지요.
상담자의 역전이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상담자는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고, 그것이 상담 과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저는 학기마다 주 1회 소그룹 슈퍼비전(사례에 대해 자문과 유사한 방식으로 배우고 토론하는 시간)을 받고 있는데, 이에 대해 저의 슈퍼바이저는 역전이를 상담자가 알아차리고 인식하고 있다면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상담을 하면서 내담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도 그 순간에 제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도 쉽지 않아서 민감하게 깨어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잘 인식하는 것이 출발점인데 그 이후로 자신을 수용하고 돌보는 것도 끊임없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삶을 살아가는 자체가 끊임없는 훈련의 연속 같습니다. 오늘의 행군은 이렇게 마무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