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교육대학원 재학 당시 학교폭력 예방 및 학생의 이해 수업에서 소개받았던 김종기 님의 『아버지의 이름으로』와 수 클리볼드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전자는 학교폭력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학교폭력예방 푸른나무재단 설립자)가 아들의 자살 이후 맥락을 되짚어가며 학교폭력의 실태를 드러내고 문제를 공론화하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후자는 평탄한 중산층 가정의 자녀가 총기 난사 가해자로 자살하게 된 후 그 엄마가 느꼈던 고통의 흐름이 잘 나타나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학교폭력에 대한 이슈가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는데요, 올해부터는 학교폭력 업무 부담을 경감시키고 사안 처리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교사가 아닌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퇴직 경찰, 퇴직 교사, 청소년 전문가 등으로 구성)이 학교폭력을 조사하게 되었는데 제도 초반이라 시행착오도 있고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학교폭력”이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폭력 등에 의하여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합니다(「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호).
몇 년 전에는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제작한 성 착취물로 떠들썩하면서 사이버폭력의 상승 기세가 사그라들 줄 모릅니다. SNS에 저격 글을 올리거나, 카카오톡 단톡방에 해당 친구를 퇴장하지 못하게 자꾸 초대하거나(카톡감옥), 욕설을 퍼붓는 일명 ‘떼카’라고 불리는 사이버 폭력 행위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단체 채팅방에서 피해학생 사진을 올리는 방식으로 조롱하는 ‘카따’, 따돌림 대상만 남겨두고 대화방을 나가는 ‘방폭’ 같은 괴롭힘도 흔히 일어나는 경우입니다.
요즘은 특히 딥페이크 피해 영상으로 전국이 시끄럽습니다.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영상과 음란물을 만들어 돌려보고 퍼뜨리는 사람들을 제재할 수 있는 법적인 정비도 꼭 필요하지만, 우리 학생들과 어른들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태도를 기를 수 있도록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더 깊이 고민하고 토의해야 할 것입니다.
학교폭력 피·가해 학생들을 만나면서 놀란 점 중 한 가지는 가해 학생들의 잔인함이 도를 넘어 날로 포악해지고 있는 것에 비해, 자신이 저지른 잘못으로 상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제대로 인지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반성에 대한 진정성은 너무 얕다는 것입니다. 피해 학생들의 상처 회복에는 실상 별 관심이 없으며 나름 억울한 표정들을 짓고 사안이 빨리 일단락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지요. 학교폭력 담당자가 서면사과를 하도록 권해서 편지를 썼다고는 하는데, 정작 당사자는 진심으로 사과하는 경우가 드물고, 부모님이 불러주는 대로 썼다고 하는 경우도 몇 차례 접했습니다. 물론 가해 학생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어요.”
“그냥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장난으로 한 거예요.”
“그냥 단체방에 초대해서 몇 마디 한 건데 그게 왜 폭력이에요?”
(장난이라는 단어는, 친구 외모를 비하하는 발언이나 친구 물건을 숨기는 것, 심부름을 시키거나 돈을 빌려서 갚지 않고, 체육 시간에 일부러 공을 던져 맞게 하거나, 모둠에 끼워주지 않는 등 수십 가지의 광범위한 표적 행동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형식적인 반성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으로 인한 불안과 초조로 대치될 뿐입니다. 이들을 상담해야 하는 상담쌤은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양측을 만나야 하는 다중관계 속에서 중립까지 지켜야 하니 이것은 뭐 탈출하지 못하는 방 탈출 게임을 하는 심정이랄까요.
학교폭력 피·가해 학생들을 만나면서 놀란 점 두 번째는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이 이런 일을 처음 겪는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부터 여러 차례 괴롭힘을 당해왔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로부터 ‘무시’ 받아본 적 있으세요?
누군가 내 물건에 수시로 낙서를 해놓는다면 어떨 것 같나요?
내가 말을 걸어도 답을 하지 않거나, 친구들이 나와 같은 모둠이 되지 않기 위해 눈빛들을 교환한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분명 나에 대해서 떠드는 소리 같은데 대놓고 따지지 못할 때의 찜찜한 기분을 아세요?
그런 날카로운 촉들이 나를 향해 반복적으로 꽂히게 되면 당연히 트라우마로 남아 대인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활동반경이 좁아지기 마련이지요. 학교생활도 어렵고 친구 사귀기도 어렵고 밖에 나가기도 싫은데 게임이나 너튜브만 보게 되고, 앞으로 무언가 잘 해낼 수 있겠다는 자기효능감도 갖추기 어렵습니다. 마음에는 분노와 원망, 억울함 등이 차곡차곡 쌓이게 되어, 또 다른 학교폭력 피·가해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중복적으로 피해당한 학생들을 보며 여러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들이 마음의 상처를 제때 잘 치유하지 못하면 학업에 집중하기 어렵고, 군대에 가서도 관심병사가 될 수 있고, 대학 생활도 위축될 것만 같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적응이 어려울 것 같은 예기불안이 또 시동을 겁니다. 아무래도 제가 과도한 불안과 걱정을 하고 있어 저부터 집중 치료가 필요한 듯 보입니다.
학교폭력을 당했다면(제일 좋은 것은 안 일어나는 것이겠지만), 우리 어른들이 허투루 넘기지 않고 이들의 회복을 위해 잘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난 학교폭력 담당 선생님 한 분은 사안이 발생하면 학생들을 불러서 두말하지 않고 바로 진술서를 쓰게 하고 절차대로 진행했습니다. 또 다른 담당 선생님 한 분은 사안이 발생하면 학생들을 만나고 어르고 달래어 가능한 심의위원회로 넘어가지 않도록 학부모님과 학생들을 설득하여 원만히 합의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 양극단의 태도를 보며 저는 고개를 갸웃하게 되었는데요. 업무의 한 카테고리로만 대하는 자세나 학교장 자체 해결로 마무리되는 루틴만을 고집하는 태도는, 피해 학생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소홀히 여기게 되는 맹점을 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에게 고합니다.
‘이런 일로 심의위원회까지 가봤자 큰 처벌은 안 나올 테니, 여기서 사과 확실하게 받고 잘 마무리하자’고 회유하지 마세요. 어른의 관점에서 사안의 정도가 가볍다고 해서 아이의 상처를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적당히 타협하고 축소하려고 하지 마세요. 심의위원회로 넘어가는 것이 부모에게 번거롭고 같이 애 키우는 처지에 상대에게도 괜히 못 할 짓이다 싶은가요? 그렇게 넘어가 주는 좋은 타인이 되는 것보다 내 아이의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제대로 사안이 처리되도록 도와주세요.
푸른나무재단(2022)의 2022 전국 학교폭력·사이버폭력 실태조사 연구를 토대로 작성해 본 바로 학교폭력 사안 처리 이후 피해 학생의 속마음은 이렇습니다.
“확실한 사과를 받지 못한 것 같아요.”
가해 학생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조치와 처벌을 받았으니 대가를 치른 것 같아요.”
그야말로 동상이몽입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피해 학생 10명 중 2명은 “학교폭력을 당해도 도움을 구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의 1위(29.8%)는 ‘요청해도 잘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 2위(17.8%)는 ‘나 하나 때문에 여러 사람이 피곤해질 것 같아서’입니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이 자주 하는 얘기 중에 ‘부모님이나 학교, 담임선생님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일이 터졌을 때 아무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충 덮으려고 하거나 ‘이런 사소한 일로 일을 크게 만들지 마라’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네가 평소에 애들한테 만만하게 보였으니 그렇지!’라며 비난받았습니다. 이들은 신뢰할 수 없는 어른들의 태도로 이미 많이 아팠습니다. 아이들에게 불신과 실망을 안겨주지 않기 바랍니다.
무조건 사건을 절차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말씀도 아니고 아이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아이의 마음에 귀 기울여주고, 지금 원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들여 사안 처리가 진행될 수 있게끔 도울 필요는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조력해야 할 의무가 있는 어른들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힘이 들 때, 나를 이해해 주고 내 편이 되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으로 나라는 사람의 가치감을 느끼게 됩니다. 반복된 폭력으로 자존감이 바닥까지 내려갔지만 내 편이 있고 나를 소중히 대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로 인해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의 온도가 상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눈에 위클래스의 고객님인 것 같은 인상을 받아서 상담을 하고 보면, 절반 이상은 이미 학교폭력 피해 경력자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맞아온 풍파에도 쓰러지지 않고, 지금 여기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로 충분히 박수받을 만한 아이들입니다. 상담을 통해 격려하고 또 격려하기 위해 이들을 만납니다.
푸른나무재단(2022)의 보고서에서 학생들이 말하는 정의로운 학교는 ‘사소한 장난 같은 폭력도 모른 척하지 않는 학교’, ‘폭력의 원인을 피해 학생의 잘못이나 예민함으로 치부하지 않는 학교’, ‘폭력을 목격했다면 선생님도 증언해주는 학교’입니다. 우리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피를 토하며 열변을 토합니다. 과연 다음 세대 아이들의 마음에는 얼마나 관심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