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위클래스에서 4년, 현재는 위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상담 관련 일을 하다가 뒤늦게 임용을 쳐서 40대 후반에 늦깎이 상담교사가 되었습니다. 이제 조금 안정적으로 여생을 재미나게 놀아볼까(?) 기대했는데 웬걸...그 때는 너무나 무지했었던 거지요. 학생들을 상담하면서 뉴스에 나오는 심각한 사안들이 실제로 우리 주위에 빈번히 일어나고 있고, 우울하고 또래관계가 어렵고 분노조절이 안 되는 친구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심각한 딜레마 웅덩이 안에서 허우적대기를 5년째... 네, 그러고 있습니다.
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밀보장이라는 굴레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 대해 상담쌤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외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너무 힘들거든요. 그들이 원하는 것은 따로 있는데 그래도 나잇살 먹은 어른들이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마음을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에게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하다가 이렇게 글로 남겨보게 되었습니다. 위클래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 아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파헤쳐 보고하려 합니다. 사례는 모두 합치거나 각색하고 이름도 가명으로 전하려고 합니다. 학교상담실 즉, 위클래스로 오신 여러분을 환영하며 이제 투어 가이드를 시작합니다!
- 위(Wee)클래스를 아세요? -
위(Wee)클래스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나요?
쉽게 얘기하자면 위클래스는 학교 내에 있는 상담실입니다. Wee라는 단어는 We(우리들) + education(교육)과 We(우리들) + emotion(감성)의 합성어로, 보통은 상담(교)사가 근무하는 공간이면서 책상과 내빈용 소파, 도서나 교구, 심리검사지 등이 구비되어 있고, 개인상담실과 집단상담실로 공간이 나뉘어 있습니다. 어떤 학교는 아이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온돌식 방처럼 작은 공간을 마련해 놓은 곳도 있습니다.
위클래스에서는 신학기마다 상담주간 행사나 애플데이 행사, 생명존중예방 활동, 또래상담 동아리 등을 운영하는데 학생 상담이 주된 업무(학교마다 업무분장은 다를 수 있습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마음이 힘들고 어려울 때 상담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받고 힘을 얻습니다. 위클래스에서 이벤트를 개최(생명존중 4행시 짓기, 친구와 함께 방문해서 폴라로이드 사진 찍기, 내가 듣고 싶은 말에 투표하기 등)하면 친구와 참여해서 작은 선물을 받아가기도 하고,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들러 가끔 간식을 먹거나 쉬었다가 가기도 합니다.
학교라는 조직과 상담(교)사의 개인적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도 있지만 저는 위클래스가 아이들이 편하게 들러 속마음을 내비칠 수 있는 학교 내 몇 안 되는 공간(어쩌면 유일한?)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 말 안 하고 소파에 드러누워 있다가 가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덕분에 소파가 늘 푹 꺼져 있었지요) 다짜고짜 배고프다며 맡겨 놓은 듯 간식을 요청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무심하게 몇 마디 툭툭 던져보면 애들은 이 사람이 자기를 궁금해한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열며 우리는 금방 친해집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가족이나 친구 이외에도 관심을 주고받는 대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위클래스가 징검다리가 되어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우리가 그 시절 그랬듯 아이들도 마음을 둘 데가 마땅치 않고 외롭고 허전하고 무언가 늘 고픕니다.
몇 년 전부터 TV에서 유명한 정신과 의사가 부모나 부부를 대상으로 육아 문제에 솔루션을 제시해 주는 방송이 인기를 끌면서 이전보다는 상담이 많이 대중화가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상담이라는 것은 비밀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어 정신적 문제가 심각한 사람만 받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진 분들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상담을 받아본 적 있으신가요? 혹은 상담을 받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요즘은 상담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었다 해도 막상 내 자녀가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학교에서 연락이 오거나, 이미 상담을 받고 있다고 한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무슨 일이 있었나 궁금도 하고 우리 애가 많이 힘들었나 걱정되겠지만 무엇 때문에 상담까지 받는 건지 아이들 말로 ‘에바’라고 생각하실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상담을 받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부분의 내담자에게 좋은 경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상담교사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단순하게 생각해서 ‘안전한 대상에게 내 속마음을 드러내고, 억눌렸던 감정을 누군가가 알아준다는 경험’은 그것으로도 좋지 않을까요? 따뜻한 눈빛 하나로도 온전한 내 편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아주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답니다.
물론 상담을 받는다고 해서 단기간에 문제가 해결되고 비행 청소년이 상담 몇 회기만에 모범생으로 둔갑할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우리가 영어를 잘하고 싶어서 인터넷 강의를 듣고 단어를 암기해도 몇 달 만에 회화의 달인이 되지는 않지요.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의 뿌리는 상당히 깊은 데다가 여러 가지 요인들로 얽혀있어 장기간의 프로젝트처럼 학교와 가정, 내담자 이 세 박자가 긴밀하게 협력해야만 아주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상담은 기본적으로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켜 내담자가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도록 힘을 실어주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대체로 원하는 누구라도 받으면 좋은 경험입니다. 그러니 상담을 받는 이유에 대해 부디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50대 초반인 제가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학교에 상담실은커녕 교무실에서 담임선생님과 면담이라도 하게 되면(그나마 1년에 한 번 정도 형식적인 면담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공개적으로 오픈할 수밖에 없었던 때였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가면성 우울을 갖고 있었던 저는 힘든 일이 있으면 친구에게 털어놓거나 일기장에 몇 글자 끄적이며 마음을 달랬었지요.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이 세상이 너무 싫어서 어떨 때는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중 2 때는 커터칼로 손목을 살짝 그어보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했지만, 다음 날 옆자리 짝꿍이 손목의 상처를 발견하고는 걱정하는 표정으로 저를 나무라며 하지 마라고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친구의 관심이 고맙게 여겨졌습니다. 그때는 사는 것이 참으로 공허하고 우울하다는 느낌을 간직한 채 겉으로는 웃고 떠들며 청소년기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너무 비약적 일지 모르지만) 지금 이렇게 초중등 학교에 위클래스가 있다는 것은 다행인 것 같습니다. 비록 모든 아이들을 다 만나고 상담하며 챙겨볼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래도 상담선생님은 학생들을 위해 존재합니다.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것이 예방적 차원에서도 훨씬 좋습니다. 아무도 믿지 못하고, 말해도 소용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면 다시 소통을 시작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상담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이제 위클래스에서 상담이 이루어지는 절차에 대해 말씀드려 보려고 해요. 그전에 한 가지 알려드릴 것은 사전 동의에 대한 것입니다. 미성년자들은 상담 시작 전 보호자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보통은 학교에서 학기 초에 부모님 동의를 일괄받거나 상담 시작 전에 개별적으로 동의를 받고 상담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후 별도로 보호자의 요청이나 담임선생님들의 의뢰로 아이들을 만나게 되는데 결석이나 지각이 잦아지고 학교적응에 어려움을 겪게 되어 만나는 사례도 있고, 갑작스레 친구나 교과 선생님과 힘겨루기 감정싸움을 해서 담임선생님이 직접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는 선생님들이 보시기에 아이의 표정이 어둡고, 물어보면 별 말은 안 하는데 뭔가 염려되는 마음이 들어 의뢰가 들어오기도 합니다.
어떤 초등학교에서는 교실에서 난폭한 행동을 하는 등 통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 상담선생님을 호출해서 말썽꾸러기 아이를 데려가도록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사전에 합의가 필요합니다.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학생이 가는 곳이 위클래스라는 인식을 학교 구성원에게 심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클래스에 가는 것이 처벌의 대안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가끔은 학교에 억지로 오기는 했으나 교실에 앉아 있기 힘들다고 하면 위클래스에서 한두 시간 있도록 서로 합의(?)하에 상담 겸 돌봄을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해서 상담이 필요한 경우, 학교를 그만두고 싶은데 위클래스에서 주 2회 상담을 받으면 회의를 통해서 정해진 기간 동안 출석을 인정해 주는 학업중단숙려제 등으로 방문하게 됩니다. 학교폭력이나 학업중단과 관련해서는 뒷부분에서 다음에 좀 더 자세히 다루려고 합니다.
또 어떨 때는 저의 촉수가 발동하여 아이들에게 노골적으로 들이대기도 합니다. 누가 봐도 얼굴에 먹구름이 끼어있는 애들, 앞머리가 얼굴의 절반 이상을 덮고 있는 아이들, 육안상 심하게 과체중이거나 저체중으로 보이는 아이들, 점심시간에도 급식을 안 먹고 혼자 있는 아이들, 계절에 맞지 않는 옷차림을 하거나 잘 씻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아이들, 우리의 고객님과 자주 다니는 친구인데 뭔가 숙명적인 느낌(?)을 주는 아이들 등등. 이들을 눈여겨보았다가 마주치게 되면 장난스레 말을 걸면서 위클래스로 언제 한번 놀러 오라고 상담 제안을 하는 방식입니다.
“오~ 못 보던 얼굴인데 너 이름이 뭐니? 쌤은 상담샘인데 4층 위클래스로 한번 놀러 와, 얼마 전에 음료수를 많이 사뒀거든, 너 *티 좋아해? 완전 맛있게 태워줄게, 알았지?” 괜스레 아이들이 잘 쓰는 말로 친근한 척 우연을 가장하여 접근해 봅니다. 일단 만나야 뭐라도 해볼 수 있으니까요. 제가 좀 촌스럽게 들이대어도 아이들이 기분 나빠하는 것 같지는 않으니 작전은 이만하면 성공이지요?
-라포 형성하기-
여하튼 자발적이든 아니든 우리 고객님들이 어렵게 방문했는데 이 중요한 첫 만남에서 일명 라포(Rapport)를 잘 맺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실 뭐 그리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너무 과하지 않으면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다가가야 한다는 것 외에는.
이전에 근무하던 고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료수를 종류별로 준비해 두었다가 학생들이 오면 냉장고에서 마시고 싶은 것을 하나 고르도록 했습니다. 그 짧은 장면에서도 냉장고 문에서 삐 소리가 나도록 한참을 서성이며 차마 못 고르는 아이, 이거 말고 다른 맛은 없냐며 자기 취향이 확고한 아이, 두 개 먹으면 안 되냐고 하는 아이, 아무것도 안 먹겠다고 하는 아이 등 다양한 양상을 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처음 방문하면 간단한 제 소개를 하고 초기면접을 하게 됩니다. 이때 상담동의서와 상담신청서 등을 작성하면서 상담이 무엇인지 비밀보장의 예외사항을 알려줍니다. 가족관계에서는 친밀도를 점수로 표시하도록 해서 누구와 친한지 관계의 정도를 파악합니다. 보통 가족은 많은 단서를 제공해 주지요. 그리고 이전에 상담이나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지, 있다면 어땠는지, 몸은 건강한지 등을 질문하며 한 사람의 발달 역사에 대해 조금씩 정보를 수집합니다.
간혹 갑자기 찾아와서 상담을 해야 한다고 떼를 쓰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는 미리 예약해서 신청하도록 알려줍니다. 그리고 시급한 경우라면 짧게라도 무슨 일인지 들어보고 조율을 합니다. 저도 정해놓은 시간(상담은 평균 일 3~4 사례를 하려고 합니다. 긴급사안의 경우는 예외) 이외에 행정업무나 다른 일들도 해야 하니까요. 임용된 첫해에는 멋모르고 1교시부터 7교시까지 상담을 연달아한 적이 있었는데 결국 그런 방식이 학생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상담이라는 시공간에서는 속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도 많이 하지만, 본인이 원하는 상담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위해 구체적인 계획과 작은 실천을 통해 노력하는 과정이 제일 중요한 핵심이라고 부연설명을 합니다. 상담신청서에는 학생의 기본 인적사항, 가족관계, 도움받고 싶은 문제 등을 체크하고, 이러한 내용을 잘 이해했고 앞으로 참여하는 데 동의한다면 학생에게 서명하게 하고 저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로 같이 서명합니다.
첫 회기를 마무리하며 “오늘 상담해 보니 어땠어?” 물어보면, “좋았어요”, “후련해요” 등의 반응을 많이 보입니다. 자신을 판단하고 평가하지 않으면서 존중해 주는 상담선생님이 그래도 자기편이라는 느낌을 받은 모양이더군요.
어떤 아이들은 지금 이렇게 멀쩡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대단하다’ 싶은 저보다 더 어른인 친구들도 있고, 줄곧 눈물만 뚝뚝 흘리는 아이도 있습니다(그 슬픔과 외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저도 곧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종종 이들도 10대의 중후반을 넘기며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구나, 나랑 같구나... 여겨집니다. 그래서 누가 누구를 가르치고 ‘너는 이래야만 해, 저래야만 해, 좀 더 노력해야지’라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냥 같은 사람끼리 서로의 내면에 좀 더 귀 기울여보는 것입니다. 너무 별거 아닌 거 같나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우리가 제일 잘하는 게 아는 척하고 내 말만 하는 것, 상대방 비난하고 내가 가진 잣대로 상대를 요리조리 가늠하는 게 아닐까요?
위클래스 첫 방문은 이렇게 마무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