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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와너 Aug 27. 2023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2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고 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비슷하다. 여러 가지 형태의 여러 가지 크기의 구름. 그것들은 왔다가 사라져간다. 그렇지만 하늘은 어디까지나 하늘 그대로 있다. 구름은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에 불과하다. 그것은 스쳐 지나서 사라져갈 뿐이다. 그리고 하늘만이 남는다. 하늘이란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실체인 동시에 실체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넓고 아득한 그릇이 존재하는 모습을 그저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일상생활에 있어서나 직업적인 영역 에 있어서나, 타인과 우열을 겨루고 승패를 다투는 것은 내가 추 구하는 삶의 방식이 아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말을 하는 것 같지 만,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있고 그것으로 세계는 성립되어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의 가치관이 있고, 그에 따른 삶의 방 식이 있다. 나에게는 나의 가치관이 있고, 그에 따른 삶의 방식이 있다. 그와 같은 차이는 일상적으로 조그마한 엇갈림을 낳고, 몇 가지인가의 엇갈림이 모이고 쌓여 커다란 오해로 발전해갈 수도 있다. 그 결과 까닭 없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오해를 받거나 비난을 받거나 하는 일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 때문에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그건  괴로운 체험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와 같은 괴로움이나 상처는 인생에 있어 어느 정도는 필요한 것이다. 라는 점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타인과 얼마간이나마 차이가 있는 것이 야말로, 사람의 자아란 것을 형성하게 되고, 자립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유지해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내 경우를 말한다 면, 소설을 계속 써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풍경 속에 타인과 다른 모습을 파악하고, 타인과 다른 것을 느끼며, 타인과 다 른 말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님으로써, 나만의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코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내가 쓴 것을 손에 들고 읽어준다는 드문 상황도 생겨난다.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 하나의 소중한 자 산인 것이다. 마음이 받게 되는 아픈 상처는 그와 같은 인간의 자립성이 세계에 대해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될 당연한 대가인 것이다.나는 기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와 같은 생각에 따라 인생을 살아왔다.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결과적이긴 하지만, 자진해서 고립과 단절을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특히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정도의 차는 있을지언정 피할 수 없는 여정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타인으로부터의 고립과 단절은 병에서 새어나온 산처럼 알지 못하 는 사이에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고 녹여버린다. 그것은 예리한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보호하는 동시에, 그 내벽을 끊임없이 자잘하게 상처 내기도 한다. 그와 같은 위험성을 나 나름대로 (아마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말인데, 나는 신체를 끊임없이 물리적으로 움직여 나감으로써, 어떤 경우에는 극한으로까지 몰아감으로써, 내면에 안고 있는 고립과 단절의 느낌을 치유하고 객관화해 나가야 했던 것이 다.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직감적으로.구체적으로 말해보자.누군가로부터 까닭 없이(라고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비난을 받았을 때, 또는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고 기대하고 있던 누군가로부터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때, 나는 언제나 여느 때보다 조금 더 긴 거리를 달리기로 작정하고 있다. 여느 때보다 더 긴 거리 를 달림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만큼 자신을 육체적으로 소모시킨다. 그리고 나자신이 능력에 한계가 있는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인식한다. 가장 밑바닥 부분에서 몸을 통해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여느 때보다 긴 거리를 달린 만큼, 결과적으로 는 나 자신의 육체를 아주 근소하게나마 강화한 결과를 낳는다. 화가 나면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분풀이를 하면 된다. 분한 일을 당하면 그만큼 자기 자신을 단련하면 된다. 나는 그렇게 생 각하며 살아왔다. 말없이 수긍할 수 있는 일은 몽땅 그대로 자신의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되도록이면 그 모습이나 형태를 크게 변화시켜) 소설이라고 하는 그릇 속에 이야기의 일부로 쏟아붓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루키의 문장에서 위로를 얻는다. 타인과 다른 나로 인해 타인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질 때, 타인과의 차이를 상대방이 알아차렸음을 인지하게 되었을 때, 의외의 순간에 예상치 못하게 배제되었을 때,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인해 인정받지 못해 스스로 상처받고 위축될 때 하루키의 ‘다름‘에 대한 인식과 몸을 사용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의지력이 나에게도 생기기를! 타인이 생각하는 ’나’에 매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나‘ 그대로를 스스로 사랑하도록 그냥 받아들이고 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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