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아티스트 #일본편 ⑥ 무라카미 다카시
다카시 무라카미가 제시하는 '슈퍼플랫(Superflat)'은 사회, 문화, 권력 등 수직적인 위계와 질서가 있는 것들을 납작하고 평평한 곳에 두어 '평등함'을 말한다. 예술성과 상업성, 고전과 현대, 동양과 서양. 아이러니하게도 그 경계를 무너뜨렸기에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독특한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레인보우, 스마일, 꽃이 있는 카이카이 키키 플라워 말고도 다카시에 관해 알아두면 유용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좌) 현대인의 보편적인 감정을 작품에 담은 요시토모 나라, 'Harmless Kitty'(1994), ⓒSemi Hiatus
(우) 다카시 무라카미가 설립한 카이카이 키키 갤러리에 소속된 매드사키,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는 눈은 지금 세대의 공허함을 나타낸다, 'Mona Lisa(3P)'(2019), ⓒArtsy
네오팝은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는 '네오(Neo)'와 대중 예술을 의미하는 '팝 아트(Poplular Art)'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한 마디로 하위 문화를 고급 예술로 끌어올렸던 기존 '팝 아트'의 가장 최신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일본의 네오팝은 1970~1980년대 영화, 게임, 음악, 패션 등 대중문화의 영향 속에서 자란 아티스트들이 등장하면서 그 윤곽을 드러냈다. '카와이, 오타쿠, 그로테스크' 등 소위 음지에서만 쓰던 용어들이 지금처럼 일상에서도 흔히 쓰일 수 있었던 것도 네오팝에 해당 개념을 접목시켰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본의 전후 세대가 지닌 전통관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당시 서구 문화에 대한 무분별한 수용에도 반대했다. 국가, 사회 등 거대 담론보다 만화, 애니메이션 등처럼 아티스트 개인이 보고 느낀 것이 더 우선시 되던 때다. 평론가들 사이에서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오히려 '대중성'을 잡았기 때문에 기존 예술의 영역을 더 넓힐 수 있었던 것도 같다.
다카시가 네오팝 아티스트의 대표주자로 언급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요 요소만 남기고 과감하게 선을 단순화한 캐릭터로 대중에게 친근한 이미지로 각인시킵니다. 광고나 유명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소비시장을 적극적으로 넓히기도 한다.
그래서 이 캐릭터는 단순히 일회성 작업물에서 그치지 않는다.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어 액세서리, 잡화, 소품 등 여러 상품군에 등장한다. 귀엽게, 천진난만하게, 또 어떤 때는 분노에 가득찬 기이한 모습과 시선을 이끄는 화려한 색을 입고 우리의 일상 생활에 천천히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MC 유재석이 '놀면 뭐하니'라는 방송을 통해 부캐를 만들었던 것처럼, 다카시에게도 예술적 부캐가 있다. 바로 1993년 전시회를 통해 처음 선보인 '미스터 도브(Mr. DOB)'. '도브'라는 이름은 70년대 만화 속 명대사와 코미디언의 유행어를 합성한 '도보지테 도보지테 오샤만베'에서 앞글자만 따서 만들어졌다.
'도보지테 도보지테'는 1970년대 일본에서 방영되었던 '시골뜨기 대장'이라는 TV만화에 자주 나왔던 대사로, '어째서 어째서'라는 의미를 지녔다. '오샤만베'는 일본 유명 코미디언인 유리 토루(1921~1999)가 유행시켰던 성적 의미가 내포된 말장난이었다. 물론, 대중문화를 반영했다는 사실 외에는 큰 의미가 있는 이름은 아니다.
도라에몽과 미키마우스가 섞인 것 같기도 하다. 도라에몽은 영특함을, 미키마우스는 순수함을 상징하는 반면에, 미스터 도브는 시니컬한 조롱을 지녔다. 언뜻 보면 동글동글한 귀여움이 있지만, 날카로운 이빨과 기형적인 눈은 무섭고 해괴하다. 귀여움과 그로테스크라는,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가지가 모두 있는 이 캐릭터는 기존 질서에 순응하며 사는 누군가에게는 일탈과 저항이라는 짜릿한 관점을 선사한다.
'미스터 도브'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던 것은 1999년 바드대학에서 개최됐던 '무라카미 다카시: 의미의 무의미의 의미' 전시를 통해서였다. 이때 공개했던 '주자자자자자(ZuZaZaZaZaZa)'(1994) 작품에 도브가 등장했다. 연관성 없어 보일 만큼 의성어와 의태어로만 점철된 제목을 단 작품 속 도브가 캐릭터로써 발돋움했던 순간이다.
공중으로 떠오른 듯한 도브는 목에 나비넥타이를 달고 양쪽 귀에 'D'와 'B'를 새긴 모습이었다. 동그란 얼굴은 'O'모양이라 그 자체로 '도브(DOB)'였죠. 다카시는 일본에서 벌어진 사회적 이슈, 문화 등을 반영한 시의성 있는 미스터 도브를 만들어졌다. 자연재해 등 비극적인 일이 있을 때는 도브의 얼굴도 같이 일그러지곤 했다. 예술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을 수 없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다카시는 미스터 도브를 '귀엽지만 아무 의미도 없으며 삶과 현실을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원숭이'라고 묘사했다. 당대 일본 예술계에 난무되었던 유식한 척하는 표현이 탐탁치 않았던 것. 하나의 아이콘을 제시함으로써 무분별하게 서구 문화를 모방하는 흐름을 비판했다. 그 후로 무한하게 변주되며 반복해 나타났던 미스터 도브는 다카시의 상징이 된다.
*표지 : 다카시 무라카미, 'Homage To Monogold D'(2012), ©Takashi Murakami
글 | 원윤지
※ 누적 회원 13만 명을 보유한 아트테크 플랫폼 T사 앱 매거진과 블로그에 연재했던 글입니다. 게재본과 일부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