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같은 증상을 가진 그 분과의 통화 후 우리 가족은 항암이 끝날 때까지 재활을 미루지 말고 바로 시작하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엄마의 의지가 가장 강력했다.
다행히 항암주사를 맞고 난 후 4~5일간 부작용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재활을 할 수 있는 몸 상태는 된다고 판단했다.
정보를 찾아보니 요양병원에서 입원을 하지 않고 외래로 재활을 받을 수 있었다. 엄마 집 근처에 있는 요양병원을 찾고 그 중에서 평이 그나마 괜찮은 곳을 추려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희 엄마가 지금 잘 못 걸으시는 상태라 재활을 받으려고 하는데 입원하지 않고 받을 수 있을까요?"
"아, 네. 어떤 병으로 못 걷게 되신 걸까요?"
"병원에서는 암으로 인한 부종양 증후군 때문이라고 하네요. 지금 워커로는 걸으시는데 재활을 받고 싶어하셔서요."
"아 그럼 예약을 잡아드릴게요. 오실 때 필요한 서류들 문자로 남겨 드릴테니 꼭 가지고 오세요."
"네, 감사합니다."
예약은 어렵지 않게 잡혔고,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해서 병원에 갔다.
안내 데스크에 서류를 제출하고 의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의사가 제출서류를 받고 이 방 저 방을 분주하게 왔다갔다 거린다.
그 사이 다른 어르신들의 운동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의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내 옆에 와서 앉는다.
"죄송한데.... 이 병명으로는 저희 병원에서 재활을 받기 어려우실 것 같아요."
"네? 왜 못 받는거죠?"
"이게 의료법상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이거나 노인성 뇌질환으로 인해 재활이 필요한 분만 받을 수 있게 되어 있어서요. 다른 의사분과도 얘기해 봤는데 어려울 것 같아요."
"어떻게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네.... 저희도 여기서 하셨으면 좋겠는데 방법이 없네요."
"아....... 그럼 저희가 예약 잡았을 때 얘기를 먼저 해주시죠. 환자 모시고 병원 오는게 쉽지 않은데... 제가 예약할 때 엄마 병명에 대해서 말씀드렸었는데 그때 얘기해주셨으면 이런 수고는 안할 수 있었잖아요."
"죄송합니다...."
"그럼 다른 요양병원 가도 마찬가지인 상황인거죠?"
"네.... 아마 그럴 것 같아요. 지금 법이 그래요."
"알겠습니다."
애먼 곳에 화풀이 한 걸까.
분명히 재활이 필요한 사람인데 왜 재활을 받을 수 없는건지.
뭔 법이 이런지. 엄마와 나는 허탈해졌다.
요양병원은 이제 안 될 것 같고 재활병원과 개인 재활치료사를 알아보는 방법이 남았다.
동생은 개인 재활치료사를 알아보고 나는 재활병원을 알아봤다.
그래도 오랜시간 걸리지 않고 밝고 야무진 재활치료사를 만나서 재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한시간씩 엄마는 걷기 위한 의지를 내었다.
엄마의 지금까지 삶이 그러했던 것처럼 발자국 한걸음 한걸음에도 애를 쓰며 최선을 다했다.
나는 규모가 크고 평이 나름 괜찮은 재활병원 두 군데에 전화를 했다.
헛걸음 하기 싫어서 미리 요양병원에서 들었던 얘기를 전했다.
한 군데는 요양병원처럼 안된다고 했고, 한 군데는 엄마의 상태를 보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재활이 필요할 것 같다는 의견서를 내고 통과가 되면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 병원에 전화를 할 때도 안내 데스크에 요양병원에서 있었던 얘기를 먼저 전했었다. 그랬더니 직접 과장님께 전하고 알려드리겠다고 한 후 의사가 직접 나에게 전화를 해 주었다.
재활을 받을 수 있도록 힘써 볼테니 예약을 잡고 엄마를 한 번 보자고.
재활병원은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힘써보겠다'는 의사의 말에 다시 희망이 생겼다.
무엇보다도 나는 엄마가 재활병원에 가서 다른 환자들을 보며 의지를 내길 바랐다. 그렇게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 바깥바람을 좀 쐬면 우울한 마음이 조금 괜찮아지지 않을까 했다.
엄마와 재활병원 가는 날.
통화했던 의사를 만났는데 나보다도 더 젊고 스펙도 훌륭하고 키도 훤칠하고 잘생긴 의사 선생님이 아니던가. 화려한 경력을 보면서 '와....저 의사 엄마는 밥 안 먹어도 배 부르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엄마의 상태를 보고 필요한 재활이 뭔지 얘기해주고 또 다시 '힘써보겠다'며 상담을 마쳤다.
그런데 지금 대기환자가 너무 길어서 당장 시작은 못할 것 같고 안그래도 환자가 너무 많아져서 증축공사를 하는데 그 공사가 끝나고 순번이 오면 받을 수 있단다.
그때까지 엄마는 개인 재활치료사에게 재활을 받으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엄마, 우리 온 김에 재활치료실 한 번 보고 갈까?"
"그래, 그러자."
환자가 정말로 많았던건지 그 시간대에 환자가 많은건지 살짝 정신이 없어 보이기는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저기서 재활받는 거 괜찮을 것 같아?"
"아니, 돗대기 시장이 따로 없더라. 기구 하나 하려면 순서도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고. 그렇게 해서 재활이 될까 싶네."
"어..... 그래? 일단... 기다려보자."
나는 엄마가 전문 재활병원에서 재활을 받을 수도 있다는 희망에 차 있었는데 생각과는 다른 반응에 살짝 김이 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