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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르 왕자 Dec 14. 2023

지방대 블루스 2

평범함의 극치 속에서 탁월함의 맛을 잃어가는 슬픈 존재의 초상  

20대 중반에 미국에 유학 간 대학도 소위 지방대학이었다. 50여 개 주로 이루어진 연합국가인 미국이지만 미국의 중심주들은 단연 뉴욕과 보스턴이 있는 동부와 L.A. 와 샌프란시스코가 있는 서부에 위치한 주들이고 내가 유학 갔던 중부는 midwest, 혹은  great plain이라고 불리는 과거 미국 원주민들인 인디언들의 주된 삶의 터전으로서 농업과 중공업이 발달한 곳이다. 내가 미국의 학회에 가서 발표를 하다 보면 나의 억양이 midwest 억양이라고 이야기를 해주는 미국인들을 만나게 되는 데 나도 모르는 나의 영어식 억양이 나의 몸에 배어 있다는 것도 무척 신기한 일이다. 평평하고 드넓은 대지를 마주하는 느낌이란 처음에는 신기하고 놀랍지만 늘 보다 보면 사실 지루하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들을 쫓아다니는 젊은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이곳 지역에서는 대학스포츠가 매우 인기가 있다. 그중에서도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스포츠는 미식축구와 농구다. 이 두 스포츠의 시즌은 서로 겹치지 않는데 미식축구가 옥외 스포츠이고 농구는 실내 스포츠이기 때문에 미식축구는 주로 가을에 시작해서 눈이 오는 12월 초 시즌을 종료하고 농구는 미식축구가 종료되는 시점부터 그다음 해 3월까지 시즌을 치른다. 봄은 갖가지 축제의 시즌으로 보면 된다.  


필자가 대학원을 다니던 대학도 당연히 미식축구팀과 농구팀이 있었지만 내가 유학시절을 보내는 기간 동안 나는 우승의 영광을 체험하지는 못하였다. 오히려 전설적인 코치가 은퇴하면서 암흑기를 보낸 시기라고 보는 게 마땅할 것이다. 스포츠 세계에서도 점점 더 심해지는 부의 쏠림 현상으로 인해 잘하는 팀은 높은 티켓 파워를 가지면서 막대한 홈경기 판매 수입+ uniform jersey 판매 수입을 얻게 되고 이를 기반으로 더 높은 연봉으로 훌륭한 코치진을 보유하고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제시할 수 있어 더 좋은 스타급 선수들을 데려가면서 선순환의 사이클을 만드는 반면 못 하는 팀은 그 반대의 사이클을 만들면서 반등의 계기를 만들지 못하게 된다. 드래프트제도에서 성적이 나쁜 팀에게 지명권을 할당하는 제도적 보완을 이런 college sports에서는 하지 않는 것도 특이한데 이로 인해 전통적인 명문학교들이 늘 상위권을 차지한다. 즉 학교의 경쟁력을 학생들의 선택에 맡기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인데 이는 못하는 팀을 가진 학교의 학생들로 하여금 4년 내내 절망과 좌절을 맛보게 하면서 늘 이런 푸념을 늘어놓게 만든다. " I am sick of this team's mediocre". 


수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를 묻는 질문을 주고받을 때 나는 모교의 교수님이셨던 K교수의 말을 떠올리곤 한다. "수학이 누구나 공부할 수 있는 학문이었다면 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학문보다도 하기 어렵기에 도전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생각은 사실 공부를 좀 해 본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견해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역설적으로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이고 나면 지방대학에서 수학이란 학문은, 혹은 기초과학은 4-5등급의 낮은 등급의 학생들이 감당할 수 없으니 지원하지 않는 학과로 점점 전락하게 되는 운명이 자연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수학과 교수들도 상대적으로 체감하는 학생들의 수준에 대한 똑같은 우려를 표현하기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지배적인 통념을 바꾸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즉 수학은 원래 똑똑한 사람들만 하는 공부이며 엘리트들의 전유물이라고 하는 생각으로 인해 서카포를 제외한 나머지 수학과는 진학하지 말라는 사람들이  여론을 주도한다. 



Luis A. Caffarelli, a professor of mathematics at 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is this year’s winner of the Abel Prize — his field’s equivalent of the Nobel. Credit. Nolan Zunk/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그렇지만 재미난 할 일들과 볼 것들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서 재능 있는 친구들이 자신들이 누릴 물질적 보상을 마다하면서 고행수련과 같이 자신을 단련시켜야 하는 학문연구에 몸 바치길 기대하기란 마른하늘에 비 한 방울 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적어도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는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렇다면 탁월함이 고사되는 분위기를 걱정하는 모 대학과 달리 평범함으로 가득한 지방대학에서 탁월함이란 빛을 잃어가는 교수의 삶은 무엇으로 위안이 되어야 할지 모르겠다. 지난날 대학에 부임하면서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란 임제 선사의 말을 마음에 새긴 적이 있었다. 내가 어디 있든 학문의 등불을 따라 길을 걸어가면 될 것이란 희망에 찬 다짐이었다. 그러나 세상에 살면서 자기 위안만으로 삶을 지탱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언더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던 신촌 블루스의 유명한 여성 보컬이 대중적 인정을 그리워한 나머지 모 방송 경연 프로그램에 나와한 맺힌 응어리를 풀어내는 방송을 보다 보면 인간은 보편적으로 '인정욕구'를 가진 존재임을 실감한다. 그러니 어쩌다 지방대학에서 취직되면서 이런 푸념을 일삼는 나도 알고 보면 넋두리를 늘어놓는 인정욕구에 목마른 한 명의 인간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희망 없는 삶이 가져다주는 숨 막히는 공포는 사실 현실적인 것이고 지방대학에 드리워진 가혹한 운명의 서곡에 끝을 알고 있는 이가 감당해야 할 번민은 인간을 점점 침체시킨다. 물질적 행복은 사실 최소한의 조건이고 우리 삶을 진정 지탱하는 것은 평범함들로 변화가 없는 일상이기보다는 늘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삶의 확인일 것이다. 조금씩 자라는 화초들과 동물들을 키우다 보면 우리는 내일의 삶을 기대할 수 있다. 아이를 가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아이들이란 사실 희망이란 선물이 될 수 있음을 기회 있을 때마다 하려고 한다. 지방대학에서 보낸 시간과 보낼 시간이 이제 비슷해진 상황에서 나는 더없이 늙었음을 깨닫는다.  그러니 묻는다. 평범함이란 공기에서 탁월함을 만들려는 연금술사의 꿈은 계속 반복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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