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슬픔에 공감하며
사람들은 수능문제의 킬러문제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말들을 쏟아내지만 필자가 보기에 교과서나 시험에 나오는 문제는 정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풀 수 있는 문제들이고 이러한 문제들은 아무리 어려운 문제를 만들어낸다 할지라도 출제자와 동기화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풀리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풀 수 없는 문제들에 도전하는 대단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데 필자가 생각하는 풀 수 없는 문제들이란 바로 '범죄, 가난, 질병, 전쟁, 불평등'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얽혀 있는 문제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의 문제로 취급해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도 있다. 그럼 도대체 이런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고대사회에서 통치자란 하늘, 신, 혹은 절대자(야훼)가 그 권한을 위임한 대리인을 지명하는 방식으로 어떤 특정한 권위를 상징하는 사건들을 통해 등장하였다. 물론 이런 이야기의 이면에는 민족이나 부족, 국가를 이끌기 위해서 그의 탁월한 지식과 판단력 이외에 사람들의 동의를 얻기 위한 권위가 필요했고 고대사회에서 그러한 권위를 획득하는 유력한 수단은 신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음은 여러 고고학적 성과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부족이나, 민족, 혹은 국가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신의 도움만 바래서야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고 위기에 봉착하게 된 문제를 해결하는 탁월한 정치가가 등장하여 위기가 해소되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 해결 방식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기대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를 살고 있는 20세기에 태어난 사람들은 '철인'을 기대한다. 윈스턴 처칠, 마오쩌뚱, 루스벨트, 마가렛 대처, 박정희 등등... 문제를 푸는 데 단순화 전략이 통하는 경우도 있다.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고 심리적 부담을 덜기 위해 문제를 보다 단순화해서 보는 전략은 문제를 풀기 위한 첫 실마리를 찾기 위해 우리가 주로 쓰는 전략이며 문제 풀이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기억하기 위한 우리의 기억법이다. 그러나 실제로 문제를 푸는 과정은 비록 간단한 아이디어의 반복일지라도 매우 주의를 요하며 모든 경우를 빠트리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쉽다고 자만하는 순간 정답을 맞히지 못하던 기억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는 여러 가지 사회현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지난 글에서도 다루었지만 수능의 킬러문항 문제만 해도 그 연원의 복잡함과 단순한 튜닝의 결과- 수능에서 킬러문항 배제-가 미치는 사회적 파장은 비록 그것이 교육이란 영역에서 발생한 것일지라도 여러 층위에 전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아마도 수험생들은 이번 수능의 학습효과를 통해 의, 치, 한, 약대를 가려고 하는 N 수생의 비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불수능은 반복될 것이고 2024년도에 출제될 수능시험 역시 이번 의대정원 확대로 인해 23년보다 더욱 거세질 N수생 열풍에 따라 중고난도 문항들의 전쟁터가 될 것임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입시에서 자사고와 일반고와의 격차는 더욱더 부각되고 빈부의 격차와 거의 동기화되고 있는 지역격차 또한 더욱더 부각되어 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심한 경고음이 터져 나올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총선에 도전장을 던지는 사람들 중 우리 사회가 가진 난제- 저출산 고령화, 수도권 집중화, 소득 불평등의 문제, 저성장과 경기침체, 북한의 핵무장과 긴장고조-들에 대한 실질적 해결책을 들고 나오거나 최소한 이러한 어려운 문제에 집중해서 4년의 기간 동안 노력해 보겠다고 나오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용감한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다. 용기만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우선 사람들은 과연 본인 스스로가 이러한 문제들을 얼마나 오랫동안 고민하고 해결하려 노력했는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소크라테스는 우선 ''자기 자신을 알라''고 했다. 공자 역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고 하였으며 디즈레일리는 ''무지를 깨닫는 것이 지식을 향한 첫걸음''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