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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돌스토리 Jan 26. 2023

설렘에 묻은 추억

하와이 story.2 - 그들도 우리를 기억할까요?

"하와이"하면 떠오르는 설렘과 낭만.
나의 하와이에 그런 반짝이는 것들은 없었다.
나는 수십 명의 어른들과 하와이를 다녀왔다.


* 하와이 여행기 이전 편 보러 가기






 얼마 전 ‘유랑쓰’라는 유튜버를 추천하는 글*에서 어디로 여행을 떠나는가 보다 누구와 여행을 떠나는가가 더 중요한 것 같다는 말을 전한 적이 있다. 나에게 하와이는 언제 또 할 수 있을지 모를 엄마와의 소중한 추억이다.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있자면 여행의 순간들이 떠올라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5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피자보다 큰 팬케이크를 먹으며 놀랐던 기억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하와이는 엄마를 포함한 수십 명의 어른들과 함께한 여행이었다. 그래서인지 내 첫 하와이의 기억은 아쉽게도 로맨틱과 거리가 멀다.



* 유랑쓰라는 여행 유튜버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글



 함께 여행하는 사람 

 - 같은 시공간에서 다른 것을 느끼는 신혼부부와 아들의 이야기


많은 한국 어른들의 여행이 그렇듯 우리는 여행사와 함께했다. 덕분에 자유여행으로 왔다면 쉽게 가볼 수 없는 먼 곳까지 버스를 타고 구경해 볼 수 있었다. 제법 시간이 흘러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하와이 원주민들의 터전을 꾸며놓은 곳도 가볼 수 있었고, 유람선 투어, 뮤지컬, 쇼핑까지 다양한 여행을 경험했다. 


기억은 강렬함의 정도가 크거나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 머릿속에 더 오래 남는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낯선 해외여행이라 할지라도 금방 잊힌다. 나에게는 Dole Plantation에서의 기억이 그러했다. Dole Plantation은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파인애플 통조림에 크게 새겨진 Dole의 농장이다. 관광수익을 위해 농장과 함께 구경거리를 꾸며놓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느 관광지 혹은 기념품샵과 다를 바 없었다.


당연하게도 특별하지 않은 관광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Dole Plantation은 사실 기억 속에 남지 않은 관광지다. 하지만 단 하나의 기억이 내가 이곳을 방문했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만든다. 호텔이 모여있는 바닷가로부터 최소 1시간은 넘게 걸려야 올 수 있는 이곳에서 길 잃은 신혼부부를 만난 것이 그 기억이다. 특별한 만남이라는 이벤트가 특별할 게 없던 관광지를 기억에 남게 만들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Dole이다. 귀여운 파인애플들이 많았다.



그들은 신혼여행 중 관광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외진 곳에는 호텔로 돌아갈 수 있는 택시가 없었다. 어떻게 왔는지, 얼마나 먼지도 모르는 곳에서 그들은 고립되었고, 바다 건너 타지에서 길 잃은 어린양들을 발견한 대한민국의 아저씨/아줌마들은 이들을 그냥 두고 갈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고’, ‘저런’ 등의 추임새를 들어야 했던 그들은 어느새 우리의 버스에 앉아있었다.


운이 좋게도 우리를 만난 신혼부부는 숙소로 안전히 돌아올 수 있었다. 다만 한국인의 정은 무료가 아니었다. 탑승료를 지불하는 대신 그들은 오는 내내 K-관광버스 속 주연이어야만 했다. 버스에 오르는 순간부터 모든 어른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구체적인 대화와 질문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들을 보며 '나라면 정말 싫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게 했을 정도이니 그 관심은 대단했던 게 틀림없다.


신혼부부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 때쯤 그들에게도 좋은 기억을 남겨주고 싶었는지 가이드는 모자를 벗고 그 안에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신혼부부의 출발을 축복해 주고 즐거운 여행을 바란다는 의미의 용돈을 모금했다. 신이 난 어른들의 지갑은 쉽게 열렸고 신혼부부는 하와이 관광버스 속 주연의 대가로 출연료를 받을 수 있었다. 흥이 많은 K-관광버스가 시끄럽고 한국인의 정이라는 관심이 다소 부담스러웠겠지만 평화로운 신혼여행에 기억에 남을 만한 특별한 이벤트가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때의 그들은 지금의 나보다 어렸을 것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들도 우리를 기억할까? 기억한다면 좋은 기억일까 나쁜 기억일까? 외국에서 한국인과의 만남은 특별하다. 게다가 제법 긴 시간을 함께 했으니 그들도 우리를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어쩌면 그 기억은 나에게만 특별할 뿐, 더 강렬하고 즐거웠을 신혼부부의 2015년 하와이에서는 그저 흘러가는 잊힌 순간일 수도 있겠다.


누구랑 여행을 함께하는지는 그 여행의 추억이 만들어지는 형태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하와이 여행기는 내 머릿속에 그려진 하와이다. 신혼여행과 같은 로맨틱한 그림은 아니다. 엄마의 아들로, 그리고 수십 명의 아들이 되어 떠났던 하와이 여행기다. 하와이 여행기 속 막내 에피소드들이 과거 tvn의 여행프로그램인 꽃보다 할배처럼 재미있게 들리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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