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내가 먼저 가서 보여줄게. 좋아 보이면 따라와.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따라하고 싶게 하는 것
올해 초 알고리즘을 타고 우연히 83부부라는 유튜브 채널을 보게 되었다. 83년생 동갑내기 초등학교 동창 부부가 운영하는 채널로 제주도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목과 썸네일에서는 “결혼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영상에서는 “결혼하면 이런 게 좋아”라는 정반대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재미있어 새로운 영상이 업로드될 때마다 챙겨보았는데 보면 볼수록 화목한 가족의 모습이 부러워졌다. 정확히는 행복한 결혼생활이 부러웠고 결혼이 하고 싶어졌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는지 채널은 빠르게 성장했다.* 구독자가 늘면서 자연스럽게 광고들이 생겨났고 제주도에서 구독자를 초대해 민박을 운영하는 컨텐츠를 업로드하며 과거에 내가 좋아했던 영상의 비중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나는 이 채널을 안 보기 시작했다. 영상의 재미보다는 행복한 결혼생활 자체가 보고 싶었던 나에게 변화된 채널은 더 이상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은 채널이 아니었다. 그렇게 83부부는 나에게서 잊혀졌다.
* 11월 22일 기준 53만 명에 달한다.
83부부의 존재를 잊고 산지 1년쯤 되던 때 다른 채널을 통해 그와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최근에 추천받은 유랑쓰라는 유튜브 채널이었다. 딩크 부부가 운영하는데 이름에 걸맞게 어딘가에 정착하기보다는 전 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살아간다. 처음에는 여행 브이로그라고 생각하고 접했고, 실제로 그들이 전해주는 해외의 일상은 코로나로 인해 강제로 억눌려있던 여행욕구를 폭발시켜주었다. 하지만 더 많은 영상을 보게 되면서 이 채널을 보는 마음은 ‘여행을 가고 싶다’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가고 싶다’로 변해갔다.
딩크 부부의 해외 유랑기와 아이 둘 가정의 제주도 살림 이야기로 보이는 두 채널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결혼장려 채널이라고 느껴졌던 것이다. 유랑쓰는 최근 영상에서 결혼 전 혼자 왔었던 여행지를 다시 둘러보며 ‘그때는 재미없었는데 여행은 누구랑 오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들도 여행 자체가 아닌 둘만의 여행의 특별함을 느끼고 전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부부의 여행을 보고 있자면 여행보다도 행복한 결혼이 더 하고 싶어 진다.
이렇게 나는 부부와 가족의 이야기를 보며 그들처럼 결혼이 하고 싶어졌다.
우리나라의 결혼 비율과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출산율은 0.75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평균 수명은 늘어나는데 아이들은 적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고령화 시대이다. 이에 정부는 저출산 대응을 위해 수백조의 예산을 사용하며 정책들을 내놓고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주변에 결혼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조건의 사람들이 혼자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정책과 지원의 문제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실패한 것 같다.
[노컷뉴스]'결혼·출산 고민' 청년 증가…2030 목소리는?
[아시아 경제] '인구쇼크' 골든타임, 얼마 안 남았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결혼/출산 관련 기사 혹은 정책을 보면서는 단 한 번도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두 유튜브 채널을 통해 결혼 후 일상의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결혼을 하라고 설득하고 있지도 않은데 말이다. 결혼 후의 좋은 점들만 집약한 영상이겠지만 그를 통해 그들처럼 하고 싶다고 느낀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본인은 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강요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솔선수범과 유사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직접 행하고 있는 사람만이 남들에게도 권유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영향력의 측면에서도 말로만 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것이 효과가 더 강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야만 나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곤 했다. 그리고 이번에 느낀 바가 그런 나의 생각을 정확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럴싸한 수치를 가지고 결혼과 출산율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이 글은 결혼의 가치나 낮은 출산율의 심각성을 전하려는 목적의 글이 아니다. 어느 부부와 가족의 영상을 보며 ’행복한 일상을 보니 결혼이 하고 싶다‘를 느끼고 그 경험과 감상에 대한 글을 쓰려니 예시가 결혼이 되었을 뿐이다. 핵심은 내가 경험하고 느낀 바와 같이 직접 보여주고 따라 하고 싶게 만드는 것의 효과이다.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하고 싶을 때 먼저 보여주고 따라 하고 싶게 만드는 것의 힘을 기억하려 한다.
분석이 업인 사람의 직업병인지 컨텐츠를 볼 때 분석을 하게 된다. 반복 시청으로 의도적인 분석을 한다기보다는 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차별화된 포인트가 이거구나.’ ‘이런 방식은 어떤 효과를 만드는구나.’ ‘이건 왜 이렇게 했을까?’ 등을 생각하게 된다.
유랑쓰 채널은 소소한 재미를 주는 채널이다. 여행을 가고 싶게 만들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거기에는 그들의 케미가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밝고 통통 튀는 여자분과 모든 것을 다 받아주겠다는 듯한 너그러운 미소로 영상에 사랑스럽게 담아주는 남자분을 보고 있자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영상의 몰입도 또한 높다. 어릴 적 PD를 꿈꿨다는 남자분의(학피디) 편집과 노래 선곡이 영상의 퀄리티를 몇 배는 향상시킨다. 자칫하면 비슷한 내용이 반복될 수 있는 브이로그를 그들의 가치관과 함께 정보를 녹여내는 구성과 다채로운 편집으로 채워 20~30분이라는 긴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준다.
잔잔한 재미를 느끼고 싶은 사람
간접 여행 체험이 필요한 사람
부부의 케미가 궁금한 사람
신선한 편집을 경험해보고 싶은 사람
보고 싶은 유튜브 채널이 떨어진 사람에게 추천한다.
+ 개인적으로 태국 시리즈부터 영상이 더 재미있고 퀄리티가 높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