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들에게 주어진 결혼 준비 기간 400일
ENFJ와 ENTJ의 결혼준비기 Ep.0 - 정신없이 지나간 6개월
지난 3월 19일 저녁.
집으로 가기 위해 차에 올라타 운전대를 잡으려던 순간 한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저장되어있지 않은 번호로부터 수신된 문자라 발신자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낼 수는 없었다. 이미 시동을 켠 상태에서 받았기에 간단히 확인만 하고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문자를 열었다. 문자는 5글자로 시작되었다.
OOO 아빠
여자친구의 아버님이었다. 다시 자동차의 시동을 끈 채 자세를 고쳐 앉아 아버님께서 보내주신 문자를 정독했다. 그리고 그 문자를 시작으로 우리의 결혼 준비는 시작되었다.
두둥...!사실 양가 부모님들께 말씀드리고 결혼 준비 이륙 허가를 받은 것은 그보다 하루이틀 정도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 우리의 준비 시작의 신호는 그날 그 한통의 문자메시지다. 그래서일까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버린 지금은 언제 처음 허락을 받았는지 정확히 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우리는 문자를 받은 이후부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의 MBTI는 ENFJ이다. 그중에서 가장 강한 성향을 보이는 것은 93%를 나타내는 J이다. 즉, 계획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파워 J이다.
3년 전만 해도 ESFJ였는데, 30대가 되고 글을 쓰면서 변화했다. [출처 | 16personalities]여자친구의 MBTI는 ENTJ이다. (안타깝게도 72%밖에 되지 않는) 같은 J이지만 우리의 계획 성향은 결이 조금 다르다. 나는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엑셀을 켜고 계획을 세우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그에 비해 여자친구는 준비되지 않은 것에 불안함을 느끼며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리서치를 하는 스타일이다.
체계적으로 계획적인 남자와 쉬지 않고 조사하는 여자에게 주어진 결혼 준비 기간은 약 1년 2개월로 400일이 넘는 시간이었다. 6개월 만에 결혼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는 충분히 넉넉한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파워 J 커플이었고, 거기에 더해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들은 우리로 하여금 바쁘게 움직이게 만들었다.
"요즘은 1년 전부터 준비해도 결혼식장에 자리가 없데"
"결혼 준비하면 예약할 게 얼마나 많은데, 요즘은 다 일찍 마감돼서 빨리빨리 움직여야 해"
뉴스를 보면 출산율과 더불어 혼인율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는데 현실 속 상황은 그 반대였다. 1년이 넘게 남아있었음에도 괜찮은 식장들은 이미 예약이 되어있는 경우도 있었고, 스드메부터 그에 따라오는 수많은 부가적인 예약들은 수강신청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 성공적으로 예약할 수 있었다. 예약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커플들이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데 도대체 왜 뉴스에서는 혼인율이 계속 감소하고 있다고 말하는 걸까?
물론 적당히 남아있는 것들로 결혼을 한다고 생각하면 6개월 만에 준비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매주 바쁘게 보내야 하겠지만.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10월이 된 지금 우리는 거의 모든 결혼 준비를 끝냈다. 휴대폰 바탕화면은 이미 보정까지 마치고 수령한 웨딩 촬영 사진이다. 하지만 휴대폰 속 D-day 위젯은 아직도 결혼식까지 200일이 넘게 남아있다고 보여주고 있다. 많이도 남았다... 이미 대부분을 준비한 우리는 올 겨울은 가만히 앉아서 빨리 다음의 봄이 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언젠가 글을 쓰겠다며 방 한구석에 모아둔 수십개의 계약서와 견적서지난 6개월 정도는 한주도 빼놓지 않고 바쁜 주말을 보냈다. 식장, 신혼여행, 스드메, 예물, 신혼집, 가전가구부터 여자친구와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까지 결혼 준비의 대부분은 인생에서 처음 하는 것들이었다. 당연히 잘 모르는 것들이 많았고 순간순간마다 새롭게 배우고 느끼면서 생각이 커졌다. 소중한 생각과 경험들을 글로써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이제야 여유가 생겨 글을 적어보고 있다.
이 글은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써 내려갈 "결혼준비기" 예고편이다. 어느새 시간이 제법 지나 생생했던 일들이 기억 속에 묻혀있다. 당시에 비해 먼지가 쌓여 조금은 흐릿해져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의 경험과 감정이 재미있게 써지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