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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핌피바이러스 Sep 11. 2022

인연 말고 묘(냥)연.

까물치 입양 보내기 대작전

3-4개월로 추정되는, 제법 그럴듯한 턱시도를 차려입은 아기 고양이의 임보처가 되어주기로 했다. 집에 온 첫날, 녀석은 '까물치'라는 이름을 얻었다.

처음 하는 임시보호는 아니었다. 첫 임보 고양이는 '뭉땡이'라는 이름의 킬트(먼치킨+스코티쉬 폴드 교배종) 아이였고, 이 아이도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지고 있었으나 약 한 달 반 정도의 임보 끝에 좋은 곳으로 입양을 가 현재는 더없이 사랑받으며 잘 지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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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뭉땡이를 잘 보내고 나니 뿌듯함은 잠시, 또다시 허전함이 찾아왔다. 애초에 뭉땡이가 왔던 것도 열아홉 살이었던 내 새끼를 떠나보낸 직후였기 때문이었다. 아직 다른 아이를 입양할 마음의 준비는 되지 않았지만 동물이 주는 따스한 온기 없이는 하루도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포인핸드 어플과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카페를 하루 종일 들여다보다 까물치를 만나게 되었다.


모든 버려진 동물들이 그러하듯 물치 역시 가슴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노량진 어느 상가 앞의 도보에 묶여 있는 모습으로 구조자분께 발견되었던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누군가 버리고 간 것은 아니었고 바로 옆의 상가 사장님이 주인이라 했다.

고양이를 키워 본 적도 없는 구조자 분이지만 평소 길냥이들에게 먹을거리를 챙겨주셨던 모양이다. 아이에게 다가가 사료를 뜯어주자 며칠 굵은 것 마냥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고 한다. 주인분께 슬쩍 다가가 여쭤보니 쥐 때문에 고양이를 키우는데 이전 고양이들은 풀어놓으니 '도망가거나 차에 치여 죽어서' 이번 아이는 묶어 놓은 것이라는 당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연실색한 구조자분은 지역 커뮤니티부터 구청, 경찰서 등 온갖 곳에 도움을 청해 보지만 '주인이 있어 어쩔 수 없다'는 무책임한 대답만 돌아온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상가를 맴돌던 중, 심지어 주인 분이 퇴근할 때는 이렇게 비좁고 더러운 화장실에 아이를 가둬놓고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도 처참한 환경 속에서 간신히 눈을 붙일 작은 고양이가 눈 앞에 아른거렸고, 결국 다시 경찰서에 찾아간 끝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경찰 분이 직접 찾아와 주인 분께 고양이를 이런 환경에서 키우는 것은 동물보호법에 위반되니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강경히 말씀해주신 것이다. 그제야 주인분은 마지못해 고양이를 내주었고 구조자분은 제가 꼭 좋은 집에 입양 보내겠다고, 경찰 분께도 약속을 드리고 아이를 좁은 집으로 데려왔다.

 

두세 문단으로 짧게 축약된 내용이지만 구조자분이 그 며칠간 겪었을 마음고생과 용기는 엄청난 것이었다. 나중에야 내가 직접 여기저기 입양 홍보글을 올리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구조자분이 커뮤니티에 잠시 올렸다 내린 글이 여기저기로 퍼져 나갔었고, 따로 밥을 챙겨주러 직접 찾아갔던 분들까지 계셨다. 그분들도 나름대로 주인 분께 "고양이는 이렇게 키우시면 안 된다"며 설득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댓글로 물치의 현재 소식을 전해드리자 얼마 후에 또 갔었는데 주인 분이 "부잣집에 입양 갔다"라고 하는데 믿을 수가 없어 걱정했다며 무척 반가워하셨다. 거기다가 사료와 주식 캔 후원까지.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은 모두 천사인 것일까. 물치야, 너를 걱정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는 거, 알고는 있니..?  

구조 풀스토리를 들려주신 구조자분은, 몰라서 그렇지 원래 주인 분도 나쁜 분은 아니셨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목숨처럼 소중한 반려동물이 누군가에겐 그저 쥐 잡는 도구일 수도 있고, 고양이가 소음과 주변 환경, 청결에 민감한 동물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지가 모든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되지는 못한다. 그 무지 때문에 고문과도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던 한 생명체가 있기에.




공부하느라 종일 집을 비워야 해서 도저히 고양이를 돌볼 여건이 아니었던 구조자분은 그 와중에도 화장실부터 숨숨집까지 온갖 고양이 용품을 구매했고 종류별로 장난감까지 사두셨다. 그 물건들을 물치와 함께 건네며 녀석이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싫어하는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세세하게 설명 주셨다. 본래 구조자가 입양까지 책임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구조자님의 상황을 알기에, 내가 직접 입양 홍보도 하고 좋은 곳에 보낼 때까지 책임지겠다고 약속드렸다. 구조자님은 이미 자신의 몫을 충분히 다 한 것이다.

첫 만남부터 착 품에 안겨오는 녀석은 링웜이라는 피부병을 앓고 있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으니 오히려 아픈 곳이 하나도 없다면 이상한 일이겠지. 다행히 심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돌보는 사람 모두 피부병이 옮았다. 동글동글한 반점이 팔다리 여기저기 생겼으나 병원 가서 약을 처방받으니 일주일 만에 가라앉았다. 그깟 피부병 따위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물치는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한참 까불 나이, 장난치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놀아줘도 지치지를 않았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물치는 잘 울지 않았고 그나마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만 울었는데 엄청 미약하고 가느다란 목소리를 냈다. 너무 시끄러운 곳에서 자라서일까, 어미 고양이에게 배운 적이 없어서일까. 너무나 밝고 명랑한 아이였지만 그 목소리에 아직 학대의 흔적이 스며들어 있는 듯해 마음이 아팠다.

몇 주가 지나 집에 잘 적응한 듯 보이자 본격적으로 입양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길거리에 묶여 있던 고양이라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함께 분개해 주었지만 정작 입양 문의는 하나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물치보다 더 어리고 예쁜 아이들이 하루에도 수십 마리씩 올라왔고, 품종묘가 아닌데 피부병까지 앓고 있는 터라 관심은 더욱 저조한 듯했다. 품종이 있는 아이들은 비교적 쉽게 입양을 가지만 코리안 숏헤어에 덩치까지 커져버린 아이들은 입양이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입양이 되지 않아 몇 년째 임보처만 떠도는 아이, 혹은 임보처에서 결국 입양을 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다. 아직 물치는 조그마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나이이기에, 조금이라도 더 크기 전에 입양을 보내야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뭉땡이 때는 조회수가 1000을 훌쩍 넘었는데 까물치 글은 200도 되지 않았다. 달리는 댓글도 없었고, 찔러보는 문의조차 없었다. 그야말로 감감무소식... 뭉땡이는 입양 문의가 비교적 많았던 터라 자신만만했는데, 뭉땡이가 품종묘에 유독 귀여운 아이 었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그래도 좋은 곳에 보내고야 말겠다는 심정으로 당근마켓에까지 글을 올려 보았는데, 고맙게도 채팅을 주신 분이 계셨다. 이미 한 마리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는 그분은 까물치에게 한눈에 반해 당장이라도 데려가고 싶다고 하셨다. 그런데 링웜 때문에 키우는 아이에게 옮을까 봐 걱정이 된다며 부정적으로 말씀하시는 듯하더니, 결국엔 아른거려서 안 되겠다며 자기가 데려가겠다고 확답을 주셨다. 그렇다고 덥석 아무 곳에나 보낼 수는 없어 환경이나 조건 등 여러 가지를 여쭤보는데 충분히 좋은 곳인 듯 보였다. 다행히 생각보다 쉽게 입양을 간다며, 설레는 마음으로 구조자분께도 말씀드리고 방문 날짜도 잡았다. 그리고 정식으로 입양신청서를 받기 위해 메일로 파일을 전달드렸는데... 다음 날 아침 채팅창을 보니 엄청난 장문의 글이 와 있었다.

 

요지는 '키우던 아이가 초콜릿을 먹어 새벽에 병원에 와서 위세척을 했다. 이 아이 하나도 감당하기 이렇게 어려운데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정말 죄송하다...'였다. 그리고 심지어 탈퇴까지 한 뒤라 괜찮다, 이해한다는 형식적인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하필 입양신청서를 요청한 그날 밤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니.. 진실 여부는 영영 알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 엄청난 장문에 한줄기 진심이 담겨있으리라 믿는다. 그냥 인연, 아니 묘연이 아니었던 것이리라. 그럼에도 그렇게 한 번 파투가 나고 나니 기운이 쏙 빠졌다. 정말 영영 입양을 못 가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물치와 보내는 하루하루는 행복하지만, 동시에 두렵기도 했다. 난 아직 녀석을 평생 책임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드디어 연락이 왔다. 첫 입양신청서가 메일로 도착한 것이다. 메일로 몇 가지 질문을 더 주고받았고, 확신이 들었다. 이번 기회가 정말이구나. 이 분이 물치의 진짜 주인님이구나..! 구조자 분과도 논의 끝에 입양 확정 전화를 드리는데 로또라도 당첨된 듯 떨리는 목소리로 "진짜요? 정말인가요?"를 몇 번이나 되물으셨다. 링웜 치료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괜찮다며, 주말에 바로 물치를 데리러 오기로 하셨는데 혹여나 그 새 마음이 변하시면 어쩌나 내가 더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당일날, 물치를 처음 만나고 예뻐 어쩔 줄 모르는 입양자 분들을 보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이미 집에는 원목 캣타워를 비롯한 온갖 용품들이 다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사료와 모래까지 좋은 것으로 바뀌고, 이제는 정말 귀한 대접받으며 평생 행복한 일만 남은 물치. 구조자분이 그 날 그냥 그 고양이를 지나쳤더라면, 내가 여기저기 장문의 입양 글을 올리지 않았더라면, 입양자분이 어려운 결정 끝에 신청서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결코 일어날 수 없었을 기적이었다. 우리는 함께 한 생명을, 아니 그 생명의 행복한 삶을 지켜냈다.


녀석은 이제 까물치가 아닌 경다니로 불린다. 가족과 같은 돌림자의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아무도 관심 주지 않던 새카만 작은 고양이에서,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귀한 가족이 된 녀석을 지켜보는 기분은 짜릿하고도 뭉클하다. 

약 한 달, 물치와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을 잊지 않으리라. 대신 녀석은 우리를, 제 집을 찾기 전까지 험난했던 과거를 새카맣게 잊고 영영 행복하기를, 내내 어여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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