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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pmage Jul 03. 2021

잊어서는 안될 2008 금융위기 이야기

열 일곱 번째 책 / 『위기의 징조들』 - 벤 버냉키 외

1.

나는 2008년 금융위기가 미국 주택시장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화 때문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위기의 징조들』이란 책을 통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화가 주택담보대출 유동화증권(Mortgage Backed Securities: MBS)의 기초자산으로 쓰이지 않았다면, 모기지 부실채권만 시장의 힘으로 정리되어 퇴출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화가 금융위기의 '트리거’가 된 것은 맞지만, 핵심 원인은 아니었다. 오히려 금융위기는 여러 다양한 근본적인 문제들이 서로 상호작용하여 복잡하게 얽힌 탓이었다. 이 책에서 언급한 원인들을 요약하면 이렇다.  


1) 만기 전환 (Maturity Transformation)

금융기관은 단기자금을 낮은 금리로 조달하여 사람들에게 높은 금리로 장기대출을 해준다. 여기서 발생한 금리차와 수수료가 금융기관의 이익이다. 금융기관은 채권자가 빌려준 단기자금의 대부분을 대출해주기 때문에 채권자의 대규모 상환조건을 즉시 요구할 경우 바로 대응할 수 없다. 따라서, 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공포가 생기면 대규모 환매 사태가 벌어진다.


2) 과도한 자신감과 과도한 레버리지(부채, 빚, 유동성)

오랜 호황으로 일부가 자산시장에서 돈을 벌면, 더 많은 사람들이 과도한 빚을 일으켜 투자에 나선다. 경기 호황의 장기화가 기존 투자자와 새로운 투자자들에게 과도한 자신감과 레버리지(빚)를 유도한 셈이다. 문제는 투자자가 충분한 완충자본(현금)을 보유하지 못한 상황에서 채권자가 즉시 부채 상환을 요구하는 경우에 이를 대응하기 위해 보유자산을 매각했을 때 벌어진다. 만약, 비슷한 처지에 사람들이 많다면 해당 자산의 투매가 일어나 자산 가격은 급격한 하락을 맞는다. 이때, 신용으로 자산을 매입한 투자자가 추가 증거금을 확보(마진콜) 하지 못하면 강제 매매를 당해 자기 자본마저 손실을 본다.


3) 금융감독 권한의 분산과 한계

미국은 은행에 대한 전반적이고 일원화된 관리감독 체계가 없었다. 또한 금융기관 종류별로 감독기관이 분산되어 있었다. 따라서, 전체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금융 위기와 위험을 사전에 식별, 분석, 대응할 수 없었다. 일부 은행은 이런 틈새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법적 지위를 바꾸어 자신들 입맛에 맞는 감독기관을 선택했다. 게다가 비은행 금융기관(그림자 금융)은 감독기관의 감독대상이 아예 아니었기에 대규모 환매사태가 발생했을 때 보호받을 수 없었다.


4) 주택시장 상승 통념과 그림자 금융

주택담보대출을 활용해 부동산 구입하고 높은 가격에 되팔아 차익을 얻은 방식이 수년간 이어지자, 신용이 부족한 사람들도 별다른 심사 없이 손쉽게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매수했다. 상환능력이 부족하면 집을 되팔거나 추가 대출을 받으면 된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대출기관들도 부동산 가격이 지속 상승할 거라고 믿었다. 또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전국적인 급락은 없을 거라고 믿었다. 여기에 주택담보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고수익 파생 금융상품에 대한 외국의 중앙은행과 기관의 수요가 점점 커지자 비은행권 금융기관은 더욱더 주택담보채권의 부실화를 따지지 않고 매수에 나섰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은 전국 평균 30% 이상 폭락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채무 불이행도 30% 이상으로 치솟았다. (한국의 현재 주택시장 상황과 많이 겹쳐보이는 것은 무리한 생각인가?)


이러한 내용을 보더라도 금융위기의 원인과 책임이 감독기관, 금융기관, 대출기관, 신용평가사, 투자자 등 모두에게 있었다. 하지만 언론과 대중은 생각이 달랐다. 책임의 지분을 정확히 따지기보다는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을 부도덕하고 방만하게 운영한 금융기관에게 돌렸으며, 응당한 징벌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2.

그러나 저자들은 좀 더 확장된 다른 시각을 가졌다.   책은 한계기업 또는 부실 금융기관의 부도가 건강한 시장 조정이라면 연준이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건강한 조정인지 아니면 금융위기인지 구별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사실 정책입안자가 복잡한 금융시스템과 이에 상호작용하는 군중심리를 파악하여 금융위기를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저자들은 정책입안자가 금융위기 초기에 과민 대응하여 연준이 손실을 보장해줄 거라는 잘못된 믿음을 시장에 주게 되어 무책임한 투자를 조장하는 ‘도덕적 해이'를 야기시킬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금융위기의 소극적 대응에 따른 금융시스템 붕괴보다는 낫다는 입장이다. 만약,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되면 기업의 돈줄이 말라가면서 한계기업뿐만 아니라 건실한 기업들도 유동성 부족으로 (흑자) 부도를 낼 수 있다. 대출로 주택, 자동차, 학자금을 충당한 사람들이 실직하거나 소득이 줄면 빚을 줄이기 위해 소비를 줄이거나 보유 자산을 서둘러 매각하려 한다. 빚을 갚지 못하면 채권이 부실해지고 해당 대출기관도 부실해진다. 이런 식으로 자기 강화적으로 금융과 실물의 침체가 이어진다. 따라서,  저자들은 해당 금융기관에 징벌적 책임을 지우기보다는 공적자금을 통한 빠른 구제를 통해 금융시스템을 지키는 것이 금융시스템 붕괴에 따른 재건 비용보다 싸게 먹힌다고 역설한다. 즉, 월가를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중산층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3.

회고록에 가까웠던 이 책을 통해 최고 정책 입안자들의 덕목과 고통을 알게 되었다. 정책입안자는 지식이 많고 경험이 풍부해야 하며, 정치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 또한 문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면서 시장의 언어를 주관적으로 읽어내는 직관과 통찰을 요구한다. 뿐만 아니라 언론과 대중의 갖은 비난과 비판에도 흔들리지 않는 뚝심을 보이면서도 시장을 혼란에 빠트려서는 안 된다. 그래서 연준은 연준의 의사를 우회적으로 돌려 두리뭉실하게 표현하거나 또는 때로는 명료하게 표현했다. 아울러 지나친 수사 표현은 지양함으로써 겸손함을 겸비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언론과 대중은 저자들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수조 달러의 국민 혈세를 낭비하여 종국에는 하이퍼인플레이션, 경기침체, 재정파탄을 안겨줄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AIG에게 구조조정을 취하지 않고 공적자금을 투입할 때도 일부 비평가는 분노하여 비난했다. 반대로 AIG 채권자들은 연준의 자발적인 채무 삭감안을 거부하고 나중에는 저자들을 상대로 자기들의 이익을 대변하여 보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송까지 걸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당시 AIG를 구제하지 않았다면 AIG로부터 퇴직연금, 생명보험, 건강보험, 자동차보험, 동산보험 등을 가입한 18만 개 기업과 7600만 명의 개인들에게 재앙이 되었을 것이다.

위기의 징조들에서 일부 인용

결과론적으로 보면 저자들이 옳았다. AIG로부터 구제자금을 상환받았을 뿐만 아니라 수익을 내어 고스란히 납세자의 이익으로 되돌아갔다. 2012년부터는 미국 경제는 양적 성장으로 돌아왔지만 유럽은 디플레이션과 경기침체와 싸워야 했다. 세 차례 양적완화를 통해 유동성을 공급했던 미국과 달리 긴축(금리인상)과 부실기업 국유화를 단행했던 유럽의 결과였다.  


4.

미국은 민주주의 가치를 지켜내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소프트 파워를 가졌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치열한 당파싸움을 멈추고 초당파적으로 적극 공조하여 해결 모색에 나섰다. 또는 퇴임을 앞둔 부시 대통령(공화당)은 오바마 행정부(민주당)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자동차 산업 구조조정', '주택소유자 손실 구제 방안' 등의 어려운 의사결정을 이임하기 전에 미리 내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부시 행정부의 정책기조와 분명한 선을 그으려고 했지만 금융위기 해결을 위한 정책이 올바르면 선을 긋지 않고 지속 신임했다. 최근 바이든 정부과 민주당이 경기 부양을 위한 인프라 투자 정책안을 의석수로 밀어붙이지 않고 공화당과 합의를 이룰 때까지 기다린 것을 보면 이런 소프트 파워는 미국 민주주의 속의 유전자처럼 지속되는 것 같다. 한국의 양당의 정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5.

저자들은 말한다. 금융위기는 반복되지만 언제 어떻게 올진 아무도 모른다고. 과거의 금융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금융시스템과 관련 규제를 강화하였다고 한들 다가올 위기를 완벽하게 막을 수 없다. 시장의 과신에서 온 금융위험이 온갖 규제를 피해 다니면서 위기로 확장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위한 금융개혁을 실행하거나, 감독권한을 집중 강화하거나, 사전 예방에 나서는 규제는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까지는 실행하기 어렵다.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금융과 시장은 매우 건전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들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전 예방도 중요하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 대응할 정책과 권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 금융위기에 대한  연준의 대응은 어떻게 보면 사후적 대응이 많았다. 그러나 미중 무역전쟁과 팬데믹 발 금융위기에 대한 연준의 선제적 대응이 주을 이뤘다. 아마도 2008이년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대응한 그들의 경험이 통화정책의 패러다임의 일부를 바꾼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무조건 일독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이 내게는 저자들의 회고록 같으면서 징비록 같았다. 특히 벤 버냉키가 본인에 대한 오해와 비판을 담담히 소회하듯 소명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에 대한 평가가 다시금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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