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겸 Jul 23. 2023

덩그러니 혼자, 막막한 휴가

일단 분위기 좋은 카페부터

휴가는 다가오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머리는 멍하고 한숨만 계속 나온다. 항상 휴가는 가족과 함께였는데 이번만큼은 혼자 보내야 한다. 며칠 전, 아내에게 나도 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얻은 3일 휴가인데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아 답답했다. 이런 내 넋두리에 친한 친구는 복에 겨운 답답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핀잔을 주었다. 아내는 무(無) 계획도 계획이라며 생각나는 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뭘 하고 싶은지 조차 나는 모르겠다’라며 푸념했다. 아내는 한심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하지만 나도 내 나름의 변명이 있다. 대학 시절에는 등록금을 충당하기 위해 방학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취업해서는 남들과 부족한 차이를 메우려 일만 해야 했고,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서는 가족이 먼저이다 보니 홀로 여행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십여 년 전에 아침마당 TV에서 나온 제주 올레길에 홀려서 간 제주가 첫 여행이었다. 제주의 풍광(風光)과 녹음(綠陰)을 따라 늘어선 올레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강한 욕망 덕분이었다.

그러나 나는 잘 즐기지 못했다. 내게 쓰는 돈이 너무 아까워서였다. 지금도 나를 위해 돈을 쓰는 것에는 항상 주저한다. ‘이 돈 이면 우리 아이에게… 이 돈이면 우리 아내랑 같이…’라는 생각이 항상 나를 훌쩍 제치고 들어선다. 최근에도 ‘이북 리더기’를 사려고 몇 날 며칠을 고민했지만 결국 못 샀는데 아내 선물로는 ‘자급제 아이폰’을 덜컥 사주었다. 이상하게도 내게 쓰는 돈은 너무 아깝지만 아내와 아이를 위해 쓰는 돈은 전혀 아깝지 않다.(물론 마냥 비싼 것을 사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휴가에 이렇게 지질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나만을 위해 돈 쓰는 것이 아깝다는 무의식 때문인 것 같다. 아니 나를 위한 보상을, 나를 위한 시간을, 나를 위한 뭔가를 한다는 것에 '응당 누려도 괜찮을 걸까'라는 의심 때문인 것 같다. 역시 놀아본 녀석이 놀 줄 알고, 잘 챙기는 녀석이 스스로를 잘 챙기는 것 같다. 아무튼 이번만큼은 내가 해보고 싶었지만 그동안 못해본 것을 시작으로 휴가를 보낼 참이다. 분위기 좋은 작은 카페에 가서 먹고 싶은 음료와 샌드위치를 거리낌 없이 시키면서 책을 읽거나 멍을 때릴 생각이다. 그다음은 그때 가서 생각할 거다. 아내 말대로 무계획도 계획이니 그때그때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리라.



-끝-


※ 글과 사진은 동의를 받지 않고 상업적인 용도 사용 및 무단 게시/편집하는 경우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저작권법 제28조(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에 따라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 안에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절망에 빠진 교사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