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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겸 Mar 25. 2023

읍내 통닭

여름이었고 시골집 평상이었다. 시골집 대문 앞에는 정승처럼 집을 지켜주는 아름드리 밤나무가 있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밤꽃의 진한 향이 6월 여름을 사방에 알리고 있었다. 당시 여섯 일곱 살 정도였던 나는 곧잘 시골집 대문 밖 평상에 앉아 읍내로 향하는 비포장 도로를 바라보곤 했었다. 그렇게 바라보고 있으면 서울로 돈 벌러 간 부모님이 양손에 맛있는 과자와 장난감을 잔뜩 들고 오실 것 만 같았다. 물론 그런 날도 있었지만 손에 꼽힐 정도였고 대부분은 그렇지 않은 실망스러운 날이 많았다. 그날도 평상에 앉아 비포장 도로 끝을 보는데 힘겨운 굉음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왔다. 세간살림을 가득 실은 용달차가 힘에 부치는 엔진 소리를 내며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용달차는 시골집 대문 앞을 지나 아래 옆집 뒷마당으로 들어갔다. 옆 집에 세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용달차는 힘겨운 소리를 내며 돌아갔고 젊은 아줌마와 내 또래의 남자아이가 분주히 짐을 정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며칠 후, 나는 코흘리개 동네 형들과 함께 공터에서 '비석치기'를 하고 있는데 이사 온 남자아이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나이를 묻는 것으로 인사를 하더니 짐짓 으스댔다. 자기가 두세 살 많으니 대장을 하겠단다. 양계장에서 일하는 김 씨 아저씨의 아들이 그 꼴을 그냥 두지 않았다. 김씨 아저씨는 힘센 장사였다. 마을 잔치가 있을 때면 아저씨의 철망치 같은 주먹에 닭들은 부들부들 떨어야 했다. 닭모가지를 잡고 냅다 주먹으로 닭가슴을 휘둘러 치면 닭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비명횡사를 했었다. 그런 김씨 아저씨의 아들도 힘이 셌었다. 비석치기도 멀리 치고 오징어 놀이를 하면 잡아채는 힘이 억셌다. 곧, 두 동갑내기가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너희 집에 이거 없지. 우린 있다’ 등의 시답잖은 말싸움으로 시작하더니 결국 둘은 땅바닥에 뒤엉켜버렸다. 뜨거운 한낮에 마른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서 숨을 쉬기 어려웠다. 나와 나머지 애들은 말리는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동네 어른이 달려와서 뜯어말렸다. 김씨 아저씨 아들의 코에 시뻘건 피가 콧물과 뒤범벅되어 인중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김씨 아들은 울기 시작했다. 녀석은 한 손으로 꼬질꼬질한 얼굴을 타고 내려오는 그렁그렁한 눈물을 훔치면서 다른 한 손으로 코를 잡은 채 코 맹맹한 소리로 말했다.


“집에 가서 아빠에게 다 이를 거야!”


그리고는 집으로 울면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본 옆집 형이 나지막하게 말하는 게 들렸다.


‘좋겠다. 너는 일러바칠 아빠가 있어서’


그날 저녁, 김씨 아저씨가 아래 옆집을 찾아왔다. 대문 앞 전봇대에 매달린 노오란 백열등 아래로 우락부락한 대머리 얼굴과 팔뚝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아저씨는 백열등 불빛 가장자리에 서있는 아줌마를 두고 허공에 삿대질을 하며 언성을 높였다. 아줌마는 죄송하다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아저씨의 거친 입에서 ‘애비 없는 자식이라 쌈박질만 했냐’라는 말이 나오자 옆집 셋방 창문이 벌컥 열리면서 울부짖는 소리가 나왔다.


“우리 엄마 괴롭히지 마요!”


형의 한 손에는 밀대를 움켜쥐고 있었지만 백열등의 역광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내가 밤나무 아래에서 바닥에 떨어진 밤꽃을 벌레라며 장난을 치며 놀고 있는데 그 형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나랑 놀래?”
 

나를 내려다보는 형 모습 뒤로 밤나무 가지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나는 눈을 찡그렸다.


“왜? 싫어?”  


실망한 눈치였다. 나는 아무 말하지 않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형이 싫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나도 그 형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시골에 나를 두고 서울로 돈 벌러 간 부모님을 평상에 앉아 하릴없이 기다리는 나의 모습이나 엄마와 같이 살면서 아빠 없는 빈자리를 그리워하는 그 형 모습에서 동질감이 생겼던 것 같다. 그 후로 우리 둘은 옆집 뒷마당에서 이것저것을 하고 놀았다. 대장과 부하가 된 셈이었다. 대장이 된 형은 내게 고마워하라고 했다. 자기 집에 남자가 자기 혼자라서 엄마를 지키느라 바쁜데 나랑 놀아주는 거라고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 형이 엄마를 보러 읍내에 가겠다고 집을 나섰다. 굳은 결심을 한 것처럼 보였다. 나도 읍내는 할머니 손을 잡고 두어 번 가본 것이 전부라 옆집 형을 쫓아나섰다. 비포장 언덕을 내려와 사과나무 밭을 끼고 구불구불한 진창길을 지나면 읍내 교회 첨탑에 꼿꼿이 서있는 십자가가 보였다. 빨간 십자가를 등지고 반대편 다리를 향해 쭈욱 내려가면 읍내 가게들이 보였다. 다리를 건너 읍내의 어느 식당 가게로 가니 옆집 아줌마가 분주하게 일하고 계셨다. 식당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새마을마크가 달린 진녹색 또는 흰색 농모자를 걸쳐 쓴 아저씨들이 앉은 테이블 뒤에서 옆집 형이 아줌마를 불렀다. 아줌마는 당황한 기색에 놀란 눈으로 형과 나의 손을 잡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아줌마는 우리 둘을 혼내며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지만 옆집 형은 들은 체도 안 했다. 오히려 오늘은 일찍 오라고 저녁에 혼자 있기 무섭다고 투정을 부렸다. 우리 뒤에서 주문을 하려고 아줌마를 부르는 손님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줌마는 갑자기 식당 옆의 통닭 가게로 급히 들어가더니 통닭 한 마리를 시키고 형한테 말했다.


“통닭 나오면 이거 들고 집에 가서 먹어. 엄마 오늘 바빠서 일찍 못가. 문 잠그고 엄마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염지를 한 닭이 전열 튀김기계에 빠져 한참을 튀겨지는 동안 형과 나는 가게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당시 나는 한 번도 통닭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전열 튀김기 주변에 덕지덕지 붙어있거나 떨어져 있는 튀김 부스러기를 보고 눈을 뗄 수 없었다. 튀김기에 알람 소리가 나오자 통닭 가게 아저씨는 힘껏 뚜껑을 돌려 열고는 다 튀겨진 통닭을 힘껏 들어냈다. 차르르르르~ 하는 기름 소리가 맛있게 들렸다. 가게 아저씨는 통닭을 기름종이에 포장을 하고 옆집 형에게 건넸다. 형은 그것을 양손으로 포옹하듯이 꼭 끌어안아 들었다. 고소한 닭튀김 냄새가 나를 불안하게 했다. 형이 나를 좀 줄까?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나는 옆집 형에게 졸랐다. 통닭 튀김 부스러기라도 좋으니 조금만 달라고. 하지만 형은 들은 체 하지 않았다. 내게 눈길 한 번도 주지 않았다. 결국 나는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밤나무 밑에서 울며 애원했다. 하지만 형은 이렇게 말하고는 집으로 곧장 뛰어들어갔다.


“안돼. 줄 수 없어. 나도 안 먹을 거야.
이건 엄마 꺼야.
내가 우리 집의 남자니까 내가 엄마를 챙겨야 해.
미안해”
 


이미 땅거미가 땅으로 숨어버린 지 오래였다. 어둑한 저녁이었고 배가 고팠다. 시골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할머니가 마루에 앉아 기다리고 계셨다. 안방에는 군청에서 퇴근하신 할아버지가 텔레비전을 튼채 신문을 보고 계셨다. 할머니는 이 시간이 되도록 어디를 그렇게 싸돌아 다녔냐며 나를 크게 혼내셨다. 나는 대문 밖으로 쫓겨났다. 나는 두 손으로 두 눈을 번갈아 훔치며 시골집 평상에 앉아 밤나무 너머 비포장 언덕을 바라봤다.


옛날 생각하면서 집에서 만들어본 가정식 치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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