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빗방울 Nov 17. 2022

19 내일이 없다는 듯이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내가 광고회사에 다니던 시절, 내 친구 J를 처음 만났다. 그는 내가 일하던 팀에 경력직 카피라이터로 들어왔다. 나이가 나보다 한 살 위인 J는 결혼을 했고 돌 지난 아들이 있었다. 한 살 위였지만 생일이 겨우 몇 달 차이였기 때문에 ‘우리 그냥 친구 먹자’고 그가 먼저 말했다. 같이 입사했던 여자 동기 셋이 모두 일찌감치 결혼하면서 회사를 그만두는 바람에 혼자 남았던 나는 당연히 신이 났다. 우리는 처음 만난 날부터 단짝처럼 붙어 다녔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는 확신 말고는 그 어떤 확신도 없었던 나와는 달리 J는 모든 면에서 안정되어 보였고 단단해 보였다. 어느 주말 남편이 출장 갔다며  J가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내가 집을 구경하는 동안 J는 내게 후딱 점심을 차려주었는데,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나에게, 마술처럼 밥상을 차려내는 그의 모습이 경이로웠다. J는 미역을 참기름에 볶으면서, 미역을 먼저 달달 볶은 다음에 물을 부어야 더 맛있다고 했다. 내가 참기름을 얼마나 넣냐고 물었더니, “걱정하지 말고 그냥 넣어. 미역국에 참기름이 좀 많이 들어가도 괜찮으니까.”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말이 얼마나 어른스럽게 느껴졌던지. 내가 모르는 삶의 비밀들을 J는 이미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회식 자리에서 건배할 때 J는 늘 “내일이 없다는 듯이!”라는 근사한 건배사를 외쳤고, 내일에 대한 걱정이 전부였던 내게 그 말도 그렇게 멋지게 들릴 수가 없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겨울이 되면 겹겹이 싸매고 솜이불을 뒤집어쓴 몰골로 다녔건만 J는 한 겨울에 미니스커트에 롱부츠를 신고 출근했다. J는 모든 면에서 여유로웠고 당당했으며 멋졌다. J와 나는 사내에서 나름 잘 나가는 듀오로 활약했다. 남자 광고주 셋을 술로 이겨먹었다고 새벽에 어깨동무를 하고 광화문 거리를 걷던 기억이 선명하다. 물론 멋짐은 주로 J가 담당했고 나는 그 나머지를 담당했지만. 우리는 늘 서로를 도왔고 서로에게 의지했다.      


살림도 잘하고 일도 잘하고 아기도 잘 키우는 슈퍼우먼처럼 보였던 J가 어느 날 이혼을 했다. 사나흘 쉬고 회사에 나온 그는 최대한 짧고 가볍게, 사건이 있었고, 이혼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돌을 갓 넘긴 아들을 두고 집을 나와 혼자 살기 시작했다. 아이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그 집에서 잘 키울 거라고 했다. 아들 얘기를 하며 몇 번 울긴 했지만 그 얘기를 길게 하지는 않았다.       


번역 일을 시작하면서 내가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을 때, J는 마침내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찾은 나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그는 내 사진을 넣어 조그만 동판에 이런 글을 써주었다.      


당신의 가슴은 봄

당신의 정열은 여름

당신의 지혜는 가을

당신의 빈자리는 거울

언제나 그리움으로 남을 당신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어떤 인간관계든 초기의 ‘설정’ 단계가 그 이후 관계를 규정한다.  우리의 관계는 주로 J가 나의 얘기를 차분하게 들어주고 조언해 주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그리고 그 설정은 이후 삼십여 년 간 바뀌지 않았다. 여건으로 보면 내가 훨씬 편안하게 살았던 시절에도, 심지어 내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어야 할 때조차도, 나는 주로 말했고 J는 주로 들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얼마 후 그 역시 회사를 옮겼지만 우리는 그 뒤로도 계속 친구로 남았다.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들 키우며 번역가로,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살며, 밥이 입에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한 시절을 뭉텅이로 흘려보내는 동안, J는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해서 어엿한 중소기업의 사장이 되었다. 그 모든 게 J에게 멋지게 어울렸고 어쩌다 만나는 그의 모습은 찬란했다.    

   

3년 전 어느 날이었다. 한동안 연락이 닿지 않아 걱정하고 있던 차에 J의 연락이 와서 반갑게 받았다. 첫마디가 “연락 못해 미안. 실은 내가 많이 아파.”였다. 엄살이라곤 없는 그가 한 말이라 온 몸이 서늘해져서 말을 잃고 있는데, 그가 말했다. 말기 암 진단을 받았고 6개월 이상은 힘들 거라는 말을 들었다고. 이미 전이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고. 그래도 치료는 받아볼 생각이라고. 그러면서 또 하나의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사귀던 사람과 내년쯤에 결혼할 생각이었는데,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나서 그 얘길 했더니 남자 친구가 결혼을 앞당겨서 올해 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무남독녀 외동딸이었던 J는 연로한 어머니에게 병 수발을 부탁할 수가 없어서 남은 삶은 그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거절해야 하는데, 그냥 결혼하자고 했어. 알잖아. 나 원래 이기적인 거.”      

여전히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괜찮아. 죽기밖에 더하겠냐.”      

J가 덧붙였다. 마치 그 말이 마치 위로가 된다는 듯이.      


그 당시 나의 엄마도 항암치료를 받던 중이라 나는 엄마를 모시고 자주 병원에 갔는데, 한 번은 항암주사실에서 정말 우연히 J를 만났다. 근사하게 차려입은 여자가 항암주사를 꽂고 통화를 하며 컴퓨터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J였다. 내가 반가워서 손을 흔들며 달려갔고, 우리는 J가 준비해온 과일을 먹으며 한 동안 수다를 떨었다. 먼저 치료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J가 나의 엄마에게 인사를 하러 들렀다. 엄마는 내 친구 J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너한테 저렇게 멋진 친구가 있었니?”     


그다음 번에 만났을 때, 우리는 즐겨 가던 식당에서 딤섬을 먹었고 통창으로 햇빛이 샤워 물줄기처럼 쏟아지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J는 다행히 통증이 없다고, 남편과 골프 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체력이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항암치료를 받느라 가발을 썼어도 J는 여전히 내가 아는 가장 멋진 여자였다. 대화중에 J가  말했다.      


“안 믿겠지만, 나 지금 이대로 행복하다.”     


J는 자신이 살아온 삶에 하나도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사랑도 했고 이혼도 했고 다시없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다시 사랑을 했다고. 가고 싶은 곳은 다 가보았고, 먹고 싶은 곳은 다 먹어보았다고. 원 없이 일했고 원 없이 놀았다고.


“그러니까 너도 그렇게 살아. 이 상황 되어 보니 그렇게 사는 게 맞더라.”


그날 J와 헤어지고 나는 친정에 가는 길이었는데, J가 엄마에게 가져다 드리라며 고급 과자를 포장해 주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나의 엄마가 먼 길을 떠나셨고, J는 문상 못 가서 미안하다며 화환을 보냈다. 알고 보니 J는 상태가 많이 악화되어 입원 중이었다. 내가 병문안 가겠다고 했더니 그가 짧은 톡을 남겼다.  


“우리 안 멋진 모습은 서로 안 보여주는 걸로.”   


그렇게 멋진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느냐고? 내가 알기론 꼭 한 명뿐이지만, J는 실존 인물이고 나는 그를 긴 세월 알고 지내는 행운을 누렸다. 때로는 나 자신도 믿기지 않지만 내게 그렇게 멋진 친구가 있다. 아니 있었다.      

J는 내가 멀리 여행을 떠났을 때 세상을 떠났다. 덕분에 나는 자신의 마지막을 보지 말아 달라는 J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었고 여행지 바닷가에서 혼자 마음껏 울 수 있었다. 겨우 울음을 멈추고 답을 받을 수 없는 긴 편지를 그에게 보내고 나서 그간 그와 내가 주고받은 대화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몇 시간을 더 울었다. 그와 수시로 주고받은 대화 속에서 그는 단 한 번도 불평불만을 한 적이 없었다. 나는 자식을 두고 이혼한 그에게 내 아이들 걱정을 했고, 대학시절 아버지를 잃은 그에게 내 아버지 걱정을 했다. 그런데도 그는 나를 견디어 주었고, 심지어 좋아해 주었다.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J는 내게 이런 말도 했다.      


“만약 내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나 너랑 결혼했다.”     


물론 회사 다니던 시절, 결혼하기 전 내가 나름 빛나던 시절의 얘기다. 그가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마시던 음료수를 뿜으며 이렇게 말했다.      


“야! 내 의견은 안 중요하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말은 태어나서 내가 들은 말 중 가장 기분 좋은 칭찬이었다.      

후회스럽다. 그때 “나도!”라고 대답해주지 못했던 것이. 진심으로 J는 남녀 통틀어 내가 만난 가장 멋진 인간이었다.   


나는 우리가 같이 늙을 줄 알았다. 나의 아이들이 다 크면 둘이 같이 여행도 다닐 줄 알았다. 항상 나보다 조금 더 지혜로웠던 그에게 앞으로도 많은 얘기를 하고 또 들을 줄 알았다. J와 함께 나도 덩달아 멋지게 늙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시간은 오지 않았다. “내일이 없다는 듯이!”를 외치던 J에게 이제 정말로 내일이 없다. 혼자 남은 나는 J를 보낸 뒤에도 수많은 내일들을 그럭저럭 살았고, 모르긴 해도 아직은 꽤 많은 내일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J를 보내고 나서 나는 알았다. 내일이 없다는 듯이 사는 일조차도 내일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걸.      


J.

너의 모든 계절이 지나갔다.

그리고 너는 나에게 그리움 그 이상으로 남았다.      

하고 싶은 말이, 아니 듣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아.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면, 그땐 네 얘기만 들을게. 약속해.      


나는 지금도 미역국을 끓일 때 미역에 참기름을 넣고 먼저 볶는다.   

참기름을 너무 많이 넣을까 봐 걱정하지 않아.   

미역국에 참기름이 좀 많이 들어가도 나쁘진 않으니까.      


소중한 널 떠나보내고도 나는 그럭저럭 산다.

널 생각할 때마다 이 슬픔이 너무 커질까 봐 걱정하지 않아.   

슬픔이 좀 있는 삶도 괜찮으니까.        


슬픔보다 더 힘든 게 뭔지 알아?

보고 싶은 거야.


보고 싶고, 보고 싶고, 보고 싶다. 내 친구야.


작가의 이전글 18 그런 사랑이 대체 어디 숨어 있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