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아도 잊지 않을래
우엉조림은 쉽지 않은 반찬이다.
만들어 본 것은 아니고 먹어만 봤다. 하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왜인지 엄마는 슬그머니 다른 반찬 틈에 꼭 넣어주시고는 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들려 보내준 반찬통들 틈에 어김없이 들어있는 녀석.
딴에는 깨소금 얹고 고운 척 있어도 딱히 고와 보이지가 않는다.
우엉조림이 싫어진 계기는 아마 김밥이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밖에서 김밥을 사 먹으면 꼭 우엉이 들어가 있는데, 그 절여진 식감이 맘에 들지 않아서 우엉에 대한 기억이 별로다. 사실 밖에서 파는 김밥은 내가 싫어하는 것들 투성이었다. 맛살도, 김밥햄도, 심지어 단무지조차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는 내 입맛에 맞는 김밥을 고안해서 싸 주시고는 했다. 단무지랑 우엉이랑 맛살이랑 김밥햄 빼고, 소고기 다진 것과 당근 볶음, 버섯볶음으로 채워진 내 전용 김밥. 그래서 나는 밖에서 파는 김밥은 싫어했음에도 김밥이 있어야 할 날에 김밥이 빠진 적은 없는 유년시절을 보냈다.
절인 우엉 특유의 그 식감을 싫어하는 걸 아셔서 엄마의 우엉조림은 흔하지 않은 스타일이다. 단면을 타원형으로 넓고 얇게 썰어 약한 간으로 살짝 조린 우엉. 김밥 우엉 같지 않고 부드럽다. 사실 집에 있을 때도 잘 안 먹긴 했다. 엄마 정성에 못 이겨 한두 점 먹었을 뿐. 우엉만 있으면 엄마는 새로 요리를 해주셨고, 때론 내가 나가서 사 먹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랑 살 때는 먹고 싶은 것만 먹고, 집에 반찬이 뭐가 남든 신경도 안 썼다. 내 살림이 생기고 나니 이제야 알 것 같다. 참 철없는 딸이었다.
상하기 전에 잘 먹어보려고 우엉조림을 꺼내 잘게 다졌다.
그러다 괜스레 반찬통에 남은 녀석들이 신경이 쓰여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천천히 씹으면서 다진 녀석 위에 부침가루를 얹고, 물을 좀 넣고, 잘 섞어서 데운 기름에 구웠다.
역시나 기름에 부친건 맛있었다. 괜찮은 시도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기름지게 부쳐먹어도 그전에 입에 넣었던 그 우엉 한 점의 향이 남는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필연적으로 이 맛을 그리워할 거라는 걸.
이 녀석들은 김밥재료 뺀 김밥을 만들고, 남들이 알려주지 않는 방법으로 우엉조림을 만들어온 마음이었다. 혹여나 딸내미가 반찬 없이 밥을 먹는 날 집밥을 그리워할까 냉장고에 쟁여주는 그런 마음이라는 걸, 혀 끝에서 깨달았다.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나도 엄마도 똑같이 시간을 걷는다. 아마 어느 지점부터는 길 위에 나만 남겠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에게는 함께 걸을 길이 남아있다. 그러니 엄마가 이렇게 반찬을 쟁여줄 때 열심히 잘 먹어야겠다.
아마도 언젠가는 굳이 이렇게 부쳐먹지 않고도 이 반찬을 잘 먹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때의 내가 엄마에게 똑같이 이번 반찬도 맛있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녀석을 반움큼 정도 꺼냈다. 옆에 있던 어묵도 몇 가닥 꺼내 함께 채를 썰었다.
부침가루 한 움큼과 물 약간 넣어 섞고 기름 둘러 부쳐서 완성.
(비주얼은 좀 그렇지만..) 결과는 꽤나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식감도 괜찮고, 양념이 있어서 밥과 함께 먹어도 어울렸다.
앞으로 반찬은 이렇게 먹으면 남길 일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