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엄마 그동안 저를 낳고 키워주셔서 참 감사합니다만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만일 내가 둘째가 아니었다면 혹은 잘났다면, '저를 다르게 대하셨을까' 하는 생각요.
어릴 적, 남들이 인사치레로 건넨 “둘째가 참 예뻐요”라는 말에,
"근데 애가 키가 작아서…“ 라며 받아주지 않으셨나요?
작은 키 콤플렉스가 그때 생겼거든요.
언니와 동생은 백화점 3층에서 옷사주면서,
왜 저는 지하 1층 세일 코너로 데려가셨어요?
나도 좋은 옷 사줘 하면 “그럼 너도 언니처럼 축제 사회를 맡던가”하시던 당신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사춘기 때, 마음이 힘들어서 나 좀 알아봐 달라고 용기 내 말 걸었는데 왜 티브이만 보셨어요?
그 뒤로 진심을 털어놓지 않게 되었네요.
대망의 고삼 여름방학.
뒷바라지까지 바라진 않았는데, 왜 저 빼고 온 가족 유럽여행 가신 거예요?
새벽까지 공부하다 돌아온 정전된 집이 어찌나 무섭던지. 씻지도 못한 채 잠이 들었거든요.
둘째 낳으면 산후조리 다 해줄 테니 빨리 낳으라고 해놓고, 왜 일주일 만에 도망치듯 가셨나요?
그러고는 “언니랑 동생한텐 하나만 낳으라고 해야겠다” 하시던 말에 헛웃음이 나왔네요.
그리고 비교는 나쁜 거 압니다만, 어머님은 딸 힘들까 봐 미국까지 가서 아이들 봐주신다던데,
용인에서 시흥까지의 거리가 그렇게 멀었을까요?
‘엄마 나 힘들어’ 용기 내 한 전화에도 바쁘셨던 엄마…, 덕분에 이제는 굉장히 독립적인 딸이 되었네요.
아이를 키우면 키울수록 엄마의 역할이 참 많다고 느껴요. 나는 정말 독립적으로 자랐구나 싶어 서글퍼질 때도 있고요. 아이의 알림장을 확인하고, 그림책을 읽어주고, 함께 눈 맞추어 조잘조잘 일상의 기쁘고 속상한 일을 들어주는 등의 케어를 받지 못해 저는 어른아이로 자라 버렸네요.
물론 엄마! 평생 일하시며 딸 셋 키우신 거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러워요. 저의 묵묵한 성격과 믿음직한 행동이 손을 덜 가게 했다는 거 알아요. 저를 사랑하시고 아끼는 마음도 너무 잘 알고요. 그저 우선순위에서 밀렸을 뿐이겠죠. 사실 엄마한테 감사한 기억이 더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많이 섭섭했어요. 그래서 한 번쯤 섭섭함을 전해보고 싶었네요. 직접 전하지는 못하기에 이렇게나마 편지를 남깁니다.
PS. 마지막으로 묻고 싶어요.
저 빼고 간 유럽여행에서 대체 왜? 그 흔한 초콜릿 하나, 저를 위해 사 오지 않았을까요?
엄마가 돼 보면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나는 하루라도 자리를 비우면, 애들한테 미안하고 신경 쓰여서, 뭐라도 사 와야겠다고 아이 마음을 헤어리게 되던데…
앞에 보인 당신의 모습에 어린 저는 눈물을 삼켰거든요.
선글라스 두 개를 사 와 언니와 하나씩 껴보던 두 모녀, 신나게 둘이 번갈아 끼자던 모습이었어요.
내 선물에 대한 질문은 들리지도 않는 듯.
과연.
저는 그래도 괜찮은 딸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