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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늘보 Nov 14. 2022

당신은 구체적인 꿈이 있나요?

나는 딸만 셋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동네에서 딸바보로 유명했던 우리 아빠는 주말마다 가족회의를 여셨다. 우리 집은 민주적인 가정이라 각자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취지로 생겨난 회의였다. 매 회의의 안건과 의견은 다양했다. 다음 주말에 놀러 갈 장소나 저녁 외식메뉴와 같은 가벼운 주제부터 가족들에게 바라는 점이나 자신의 꿈처럼 생각이 필요한 주제까지. 주체자인 아빠는 다양한 주제를 제시했으나 그의 마지막 멘트는 늘 동일했다.


“Have a Big Dream”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말이다. 아마 남성주의 시절을 살았던 아빠는 딸들이 꿈을 크게 갖고 당당하게 살아가길 원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아빠를 생각하면 사랑스럽게 웃는 반달 모양 눈과 호탕한 목소리, 꿈을 크게 갖으라는 메시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빠의 말에 세뇌를 당한 걸까. 누가 꿈에 대해 물으면 꿈도 없었으면서, 꿈이란 일단 크게 잡아야 하기에 거창한 꿈을 말하곤 했다. 어차피 꿈이 백 퍼센트 이루어진다는 보장이 없기에 크게 가져야 그 근처라도 간다고 생각했으니까.


몇 년 전 신랑과의 저녁식사 자리었다.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창업을 막 시작한 그를 응원하며 각자의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신랑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나의 최종 목표는 학교를 짓는 거야, 지금 하는 사업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고”

“그래서 난 계획을 월 단위인 단기계획과 년 단위 장기계획, 최종 계획으로 구체적으로 세워, 너도 그렇게 해봐”


나는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꿈을 브리핑하는 모습에 존경심을 표했다. 출산 이후 꿈에 대해 고민하는 나를 위해, 나의 목표를 대신 세워주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그는 대학시절부터 내 에세이 과제의 아웃라인을 기똥차게 잘 짜주었다. 현재 그 능력을 개발해 “대표님”으로 불리며, 스타트업계에서 살아남았지.

기질을 잘 고려한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나는 그가 조언해준 대로 구체적인 꿈을 안고 하루를 꽉 채워 보내기 시작했다. 근 일 년을 대학원에선 학생으로, 가정에선 두 아이의 엄마로 쉼 없이 달려왔다. 처음엔 To do list를 작성해서 하나씩 지워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분 단위로 계획을 짜고 열심히 사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빈속에 커피를 부어 넣고, 잠을 줄여가며 폭주기관차처럼 달렸지만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좋은 엄마와 좋은 학생’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균형을 유지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하루하루가 늘 아슬아슬했다. 마치 외줄 타기 하는 곡예사처럼 말이다.


번아웃이 왔다.  


번아웃 증후군이란 한 가지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극도의 피로를 느끼고 이로 인해 무기력증, 자기혐오, 직무 거부 등에 빠지는 증상을 말한다.

나의 증상과 정확히 일치했다.

연구실 내 업무를 하나 끝내면 파도가 밀려오듯 다음 할 일이 쌓였다. 끝내는 업무보다 쌓이는 업무의 속도가 더 빨랐다. 당시 매주 발표가 두 개 이상 쌓여 아이들 등원과 함께 발표 준비를 했고 육퇴 후 다시 책상 앞에 앉곤 했다.

오늘과 내일의 할 일, 졸업논문, 병원 시험, 3년의 병원 수련, 전문가 시험, 박사과정 등등. 끝이 보이지 않는 단기 및 장기 계획에 처참히 압도당했다. 열심히 하면 이루어지긴 하는 걸까? 매너리즘에 빠져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초초했고 식이와 수면이 어려웠다. 사소한 자극에도 눈물이 났지만 감정을 느끼는 것 마저 사치라고 생각해 꾹꾹 참고 외면했다. 건강의 적신호를 느낀 나는 고민 끝에 학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선택이다.


개인이 가진 꿈의 크기와 꿈의 유무는 다양하다.


구체적으로 계획했던 거창한 꿈을 접었으니 남들 기준에서 나는 꿈이 없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 달리 거창하고 구체적인 꿈을 계획하는 것이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꿈은 나를 압도시키고 지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마다 기질과 성격이 다르듯이 꿈을 대하는 크기나 형태도 달라야 함을 몸소 체험하며 깨달았다.


이제 내 꿈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구체적이고 큰 꿈은 필요 없다. 소득이 없는 일이든 고소득 일이든 간에.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을 찾다 보니 글을 쓰게 되었고, 글을 쓰다 보니 행복해졌다. 글을 쓰면서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해 주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내 삶에 이야기가 생겨나고 정리되는 과정이 즐거웠다. 나는 이 즐거움을 끊임없이 느끼고자 꾸준히 글을 쓸 것이다. 그냥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지 ‘글을 잘 써서 책을 출판하고 작가로 등단을 하겠다’와 같은 구체적인 목표는 없다. 그저 행복하게 살기 위해 글을 쓸 뿐이다. 고로 나는 다시 꿈을 꾼다. 나를 압도시키는 크고 구체적인 꿈이 아닌 행복해지는 꿈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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