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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옹지마 Sep 23. 2022

인터넷 소설 등기우편으로 배달된 1999년 -마지막-

게시판의 부고는 광수형의 부고가 맞았다.


한동안 전기 가오리에 뇌를 쏘인 것처럼 내 모든 감각세포가 멈춰버리며 손가락 하나도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광수형은 지난해 간암을 진단받고 투병 중이었다는 위원장의 말만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풍족할 만큼의 넉넉한 경제적 여유와 화목한 가정을 꾸리며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왔던 광수형에게 찾아온 이 인생의 위기를 이겨내기는 버거워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광수형은 늘 술에 취해 있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외로웠을 형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렸고, 아무런 힘이 돼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마음이 먹먹해졌다. 

지난 1999년 강의실에서 처음 만난 야구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거구의 광수형의 모습,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며 파이팅을 외치던 모습, 서로의 결혼식을 축하해 주던 그런 수많은 기억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광수형과의 인연은 이렇게 끝이 났으며, 시간이 지나 해가 바뀌면서 광수형과의 추억도, 빌려준 돈에 대한 기억도 점점 잊혀갔다. 


“여보, 11월에 우리 아파트 분양받은 거 마지막 중도금 내는 거 알고 있지?”


2년 전 우리 부부는 생애 처음으로 신청한 아파트 분양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당첨되는 경사를 맞았다. 


아내의 번뜩이는 기지와 운이 함께 해 찾아온 행운이었다.


계약금을 치르고, 몇 번의 중도금은 시행사와 연계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해결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우리는 아파트를 분양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9년 전,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홀로되신 어머니의 적적함을 달래드리기 위해 4층의 상가 건물에 살고 계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집을 짓는데 우리가 모아놓은 돈을 모두 보탰을 뿐만 아니라, 딸아이의 유학 비용을 감당하느라 돈을 모으기란 녹록지 않았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몇 년 전 세상을 시끄럽고 뒤숭숭하게 만든 코로나 팬데믹이 청약을 부추긴 것 같았다.


시간마다 사망자와 확진자의 수를 속보로 내보내는 방송뿐만 아니라 정부는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모든 상점의 영업시간을 단축하고 모임 인원을 제한했다.


여행 업계를 비롯해 많은 상점들은 눈물을 머금고 문을 닫아야 했으며, 많은 수의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정부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국민들의 삶을 위로하고 지원한다며 전 국민에게 돈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우려와는 달리 경제는 호황을 누리는 듯했으며, 유례없는 유동성을 양산했다. 

이때를 틈타 방송과 라디오 그리고 유튜브에서는 연일 주식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대거 등장해 하나같이 주식 투자를 부추겼다.


이뿐만 아니라 가상자산은 전대미문의 폭등을 기록했으며, 이 뒤숭숭한 분위기에 뒤섞여 부동산 값도 덩달아 치솟았다.


수억 원은 기본이고 십억 원 이상 집값이 오른 아파트도 속출했다.


아파트를 보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너 나 할 것 없이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듯 신축 아파트 청약 시장으로 몰렸다.


때마침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 근처에도 그린벨트가 해제가 되면서 아파트 공사 계획이 승인되고 순식간에 분양이 시작됐다.

어머님 집과도 가깝고 둘째 아이의 학교도 그대로 다닐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은 위치였다.

실거주가 아니더라도 청약만 되면 2, 3억은 족히 오르는 분위기니 훗날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경제적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재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신청한 청약에 당첨이 된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중도금을 내야 하는 기일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 팬데믹은 유동성이 풍부했던 경제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주식 및 가상자산 시장은 연일 급락세를 돌아섰으며, 이와는 반대로 인플레이션을 잡는다면 전 세계는 고물가, 고금리의 악재가 시작됐다.

수천만 원의 마지막 중도금을 내기 위해서는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두 배 이상 오른 이자는 우리 부부에게 두 배 이상의 적잖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우리에게 도착한 ‘재개발에 따른 보상에 관한 협의 요청’ 이란 등기는 우리 부부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해법이 돼 주었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하니 광수형 소유의 땅을 포함한 인근 지역은 49층의 대단지 주상복합아파트 개발 사업 승인을 마쳤으며, 이미 시행사가 선정돼 본격적인 토지보상이 시작되고 있다는 내용의 각종 언론 기사가 도배돼 있었다.

16년 전 광수형의 요청으로 가압류한 쓸모없었던 맹지가 재개발 구역에 포함이 된 것이다. 

조합과 시행사는 분양과 공사 착수를 위해서 광수형의 토지에 설정해 놓은 나의 가압류를 풀어야 하기 때문에 이 같은 보상 협의에 대한 공문을 보낸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개발 조합 측 대리인이라며 연락을 해왔다.

조합 측 대리인은 가압류를 설정한 금액을 비롯해, 채무불이행 소송 판결에 따른 지난 16년간의 법적 이자율까지 산정해 보상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광수형은 23년 전의 오래된 추억과 함께 내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윤광수. 

'광수형! 형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어.'

' 나의 젊은 시절을 형과 함께 해서 행복했어. 그리고 고마웠어.'


<끝>


P.S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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