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악!”
몸을 일으키려 머리를 살짝 들었더니 몇 시간 전 찝찝한 통증이 있었던 부위에 더욱 심한 통증이 나타났다.
사지가 경직되고 머리에는 쥐가 나는 것 같았다.
꼼짝없이 30초 정도 누워있자 점차 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짜증이 밀려왔다.
1년이면 한 번씩 나타나는 요통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10여 개월 전에도 이 같은 통증으로 119 구차에 실려 응급실로 이송돼 토요일과 일요일을 꼼짝없이 지내야 했었다.
응급실 의사는 다행히 뼈나 디스크에는 이상이 없는 단순 요통이라고 했다.
그리고 처방해 준 약을 며칠 먹으면 허리는 부드러워질 거라 했고 실제로 며칠이 지나자 언제 그랬다는 듯 멀쩡해졌었다.
잠시 누워있으니 통증은 사라졌지만 요의가 심하게 느껴졌다.
팔을 지지삼아 일어나기 위해 아주 조심스럽게 몸을 옆으로 돌리는 찰나 또다시 극심한 통증이 "악"소리를 내뱉게 했다.
왠지 모를 서글픔이 밀려왔다.
”여보! 여보!”, “허리가 너무 아파. 요통이 다시 온 거 같아. 서랍에서 약 좀 가져다줄래?”
아내에게 도움을 청했다.
지난번에 먹고 남은 근육이완제와 진통제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 화장실 가고 싶어. 좀 도와줄래?”
낮은 포복 자세로 기어가다시피 하며 화장실을 어렵게 다녀왔다.
앞으로 적어도 이틀은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여보 괜찮아? 응급실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아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을 했다.
“안 가도 될 거 같아. 지난번 하고 똑같은 증상이야. 며칠 약 먹으면 좋아질 거 같아. 다행히 모레하고 글피는 휴가를 내놓았으니 직원한테 이야기해서 내일만 휴가 내고 3일 쉬면 좋아지겠지. 난 괜찮으니까 당신 가서 좀 쉬어. 도움이 필요하면 당신한테 부탁할게.”
아내가 방을 나가고 혼자 누워있으니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문득 지난번에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에 너무 화가 난다면 지금 당장 해결하려는 마음과 고민은 일단 접 두고 잠을 청하라.]
옳고 그름을 따지려고도 하지 말고 그냥 하룻밤 넘기라는 것이었다.
언뜻 보면 우유부단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판내려고 한다는 것은 그 순간 이후의 모든 관계가 자칫 끝나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잠을 청함으로써 실마리가 남게 되면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가 서서히 회복되기도 하고, 없었던 일처럼 문제가 사라질 수도 있고, 그 순간에는 보이지 않았던 해법이 보이는 등 예상치 못한 긍정적인 상황으로 변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얼마를 잤을까?
잠에서 깨어 고개를 들어 창밖으로 보니 동그란 달이 떠 있었다.
날이 아직 새지 않았나 보다.
허리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다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러나 다리는 고작 십 센티미터를 올리지 못하고 '윽!'이란 소리와 함께 그대로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지고 말았다.
통증도 상태도 전혀 나아진 것 같지 않았다.
휴대폰을 보니 04시 30분이란 숫자가 깜박이고 있었다.
병가를 직원에게 알리려면 적어도 3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다.
생각에 잠겼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인지하지 못한 나의 과오는 무엇이 있을까?
다시 홍보를 할 수 있을까?
내가 그 자리에서 잘 버틸 수 있을까?
창구에 앉아있는 날 본 직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병원을 그만둘까?
가족에게 말해야 할까?
생각을 거듭해도 엉킨 생각의 실타래는 오히려 더 뒤죽박죽 엉켜가는 느낌이었다.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게다가 꿈틀대기 시작한 병원에 대한 서운함과 미움의 감정은 복수심으로 이어졌다.
지금에서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병원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사랑은 어긋나면 손바닥 뒤집듯 배신감으로 변하게 되며, 그 크기는 제곱 이상의 크기로 커져 다가온다는 또 하나의 인생의 쓴맛을 배우는 경험이었다.
이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동안 책장 속에 꽂혀 있는 수첩이 어렴풋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 수첩은 교회를 다니면서 지난 몇 년 동안 주일 예배 설교 내용과 함께 내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정리한 것이다.
아마 2년 전쯤 마지막 페이지를 다 채우고 의미 없이 책장에 꽂았을 것이다.
팔을 길게 뻗어 책장 두 번째 칸에 있는 수첩을 가까스로 빼내 들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니 읽기 어려울 정도로 휘갈겨 쓴 페이지도 있었고, 아주 깔끔하게 정리돼 있는 페이지도 있었다.
대여섯 페이지를 넘기니 눈에 띄는 제목이 있었다.
‘복수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다!’
‘복수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다?’
요약된 내용은 이랬다.
복수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당한 비방과 서러움에 똑같이 응수하여 복수하는 것은 미련한 행위로 오히려 악한 싸움에 휩쓸릴 가능성이 크다.
'복수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해야 할 것은 복수할 대상을 불쌍히 여기며 칭찬하라.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로 매달리면 대신 해결해 주시고 갚아주신다.'
지금 내 상황에 필요한 글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작은 소리로 반복해 읽기 시작했다.
읽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신기하게도 치밀었던 마음속 분노는 새벽안개가 걷히듯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계속>